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외과의사 호빵맨 Aug 03. 2021

영화 [욕창]

"욕창은 겉에서 봐서는 몰라요. 속이 얼마나 깊은지가 문제거든요."


욕창 A Bedsore

2019 한국, 드라마, 상영시간 : 99분

감독 : 심혜정


"노인을 돌보는 일에 대해서는, 낭만적 사랑이나 아이를 낳는 일 같은 다른 종류의 헌신에 비해, 조언이나 독려가 될 만한 분량의 글이 없다. 그 일은 마치 예전에 없던 어떤 일처럼 슬그머니, 마치 한 번도 경고를 받지 못했고 지도에도 없던 암반으로 가득한 해변처럼, 갑자기 당신 앞에 닥친다.”

 -.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평온한 일상이 유지되던 어떤 날, 수옥은 길순의 엉덩이에서 욕창을 발견하게 된다. 놀란 창식은 눈살을 찌푸리고, 욕창을 잠깐 보고는 물러서서 휴대폰을 꺼내 막내딸 지수에게 전화를 한다. 그는 아내의 문제를 직접 마주하고 해결해야 하는 의무가 면제되어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데, 이를 가부장의 특권으로 여기는 듯하다.  길순에게 생긴 욕창은 침대에서 누워 지내는 환자에게 드물지 않게 생기는 문제이다. 뼈의 돌출부에 흔히 생길 수 있고, 공통적인 원인이 압박인 탓에 보다 의학적인 용어로는 ‘압박궤양’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 


 욕창은 길순처럼 뇌신경이나 척수신경 손상이 있는 환자, 노인 환자에서도 잘 생긴다. 이런 환자들은 장시간 동일한 체위로 있어도 압력을 받는 곳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느낀다 해도 환자 자신이 체위를 바꿀 기력이 없기 때문에 압력에 의한 손상을 입기 쉽다. 욕창은 몸이 누르는 내부의 힘과 고정된 형태의 외부의 압박이 충돌하여 생긴다. 죽은 피부의 괴사 된 조직이 떨어져 나가면 그 자리가 헐어서 큰 궤양 형태가 되는데, 궤양의 얕은 층보다 깊은 층이 더 널찍하여 주머니 형태를 하게 된다. 그래서 피부 표면에 보이는 궤양은 괴사 된 조직의 일부분일 뿐 깊은 환부를 다 반영하지는 못한다. 


 길순의 욕창은 이 가족의 축적된 모순과 부조리가 응축되어 드러난 병이다. 내부의 고정된 힘과 외부의 압박이라는 충돌. 내부의 고정된 힘은 남편 창식으로 대표되는 뼈처럼 단단한 근대적 가부장제라고 할 수 있다. 창식은 부인을 옆에서 간병할 의지와 능력은커녕, 자신의 끼니조차 해결할 능력이 없는 노인으로, 국이 식어서 식탁에 나오는 일에도 버럭 화를 낸다. 엄마를 이제 요양원에 보내자는 말에 ‘그럼 난 어떡하니?’라며 부인의 건강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우선 걱정한다. 자신이 번듯하게 성공하지 못한 것이 부모의 무관심과 동생에 대한 편애 때문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사는 첫째 아들, 집안의 돈을 탕진하고 외국에 나가서 사는 둘째 아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모두 한결같다. 가족의 일원으로 책임을 느끼는 사람은 막내딸 지수뿐이다. 간병인을 구하고, 간병인이 외출할 때 부모를 대신 돌보는 지수. 그의 직업은 공방을 가진 프리랜서 예술가이지만, 그의 가정도 편하지는 못하다. 이제 막 생긴 남자 친구와 이성교제를 시작하면서 엄마와는 살가운 대화를 하지 않는 딸과 밖으로 돌면서 외도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차갑고 무관심한 남편이 있다.      


 과거에는 딸이 결혼을 하면 ‘출가외인’이라고 하여 모든 의사 결정과 책임에서 ‘열외’시켰던  시대가 있었는데, 지금의 딸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양쪽 가족에서의 책임과 의무를 은연중 모두 짊어지는 것 같다. 미국  작가 리베카 솔닛도 그의 책 『멀고도 가까운』 에서 알츠하이머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는 이야기를 쓰는데, 과거에 정신이 온전했을 때의 어머니를 다음과 같이 서운하게 술회한다.


 “내 어머니에게, 딸은 나눗셈이지만, 아들은 곱셈이다. 딸은 어머니를 줄어들게 하고, 쪼개고, 무언가를 떼어가지만, 아들은 뭔가 덧붙여 주고 늘려 주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 어머니였지만, 노년에 병이 들어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응급상황이 닥칠 때마다 아들들을 찾지 않고 딸을 찾았다고 했다. 평가절하하고 잘 알아봐 주지 못했던 딸을 왜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는 찾게 되는 것일까? 이 의문에 어머니에게서 답을 얻지 못한 작가는 ‘내 어머니에게 아들들은 어머니의 좋은 모습만 상영하는 극장의 관객이었고, 나는 늘 무대 뒤에 상황이 훨씬 더 지저분한 곳에 머물렀다.’라고 쓴다. 병원에 입원해있는 환자들 곁에 오래 있는 ‘보호자’들도 거의 대부분 딸이다. 돌봐야 할 현재의 가정이 있건 없건, 병든 자식과 부모의 곁에는 딸들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 만성 환자 돌봄에 있어 직접적인 환자의 보호자가 되어 환자를 돌보며 살아가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되므로 딸들은 가정에서의 자신의 고유 역할과 더불어 이중의 역할 부담을 안게 된다.   


 영화는 노년에 대한 이야기도 예리하게 풀어놓는다. 입주 간병인 수옥에 대한 연정과 욕망이 생긴 창식은 좋아하는 뉴스 대신에 채널권을 양보해서 일일 드라마를 같이 보게 된다. 드라마의 제목은  『내 남자의 비밀』. 방송사의 설명에 의하면, ‘가면을 쓰고 진짜가 되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남자와 사랑받고 싶어 소중한 동생을 버리고 그 자리를 차지한 여자가 그들의 바람대로 완전한 행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라고 한다. 실제로 이 커플은 아픈 부인에 대한 ‘안정적인 입주 간병’이라는 미명으로 수옥의 비자 취득을 꿈꾼다. 이를 위해 부인과의 서류상의 이혼과 수옥과의 새로운 결혼을 통한 비자 취득이라는 아이러니를 결심하고 자식들에게 알리기도 한다. 아내를 지키고 결혼을 유지하고자 이혼을 해야 한다는 황당한 궤변이다. 


“그거 뭐 이제 재미없어요. 맨날 똑같은 타령인데요”


 드라마가 어느새 지겨워진 수옥의 말이다. 하지만 노인에게는 어제와의 똑같음을 유지하는 것이 오늘의 목표이자 기쁨이다. 만났던 사람을 다시 만나, 했던 말을 다시 할 수 있는 것보다 즐거운 일은 없다. 작년의 운동량, 어제의 걸음수를 지키려고 만보기에 집착한다. 약해지고 있는 육체의 기능이 더 나빠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최상의 성취다. 그런 창식의 눈에는 뇌졸중에 걸린 후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로 동네에 돌아다니는 독거 할아버지를 마주치는 것이 불편하다. 자신에게도 언젠가는 닥칠 일이기 때문이다. 아픈 자신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주변을 간병할 것인가? 


 붙박이 간병에는 당연히 극심한 피로와 심리·정서적 탈진이 수반된다. 환자를 돌보는 짧은 시간 또는 여유시간을 활용하여 여러 전문가의 도움 아래 보호자 심리·정서 회복 프로그램이 진행될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영국의 경우 장기적 돌봄을 하는 가족이나 돌봄 제공자들이 돌봄으로 인한 피로를 회복하고 재충전의 기회를 갖게 하기 위해 돌봄자 휴가(Respite)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영화에서 보듯 자식들은 돌봄에 참여했지만, 고통에 지나치게 노출되어 양가감정을 겪었고 가족 간의 불화가 심해졌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아프리카 속담이라는 이 말은 한 아이가 온전하게 성장하도록 돌보고 가르치는 일은 한 가정만의 책임이 아니며, 이웃을 비롯한 지역사회 또한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이 말이 맞다면, 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는 우리 사회에는 이런 말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 노인을 돌보는 데에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킬링 디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