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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an 02. 2017

헤아릴수도 없을 타인의 슬픔 옆에서



간호사가 차트를 들고 들어오더니, 다른 간호사에게 차트를 가리키며 귀엣말을 한다.

- (속닥속닥)
- 어머!
 
이 수술에 달아서 제왕절개 수술 해야한대요. 근데..
 
간호사가 말을 잇지 못한다. 지난주부터 예정되어있던 제왕절개.
별일이 있을 것도 없는데, 왜저러나. 가서 차트를 열었다.

 
FDIU. epidural로 부탁드립니다.
 
39주 2일. FDIU.
fetal death in uterus.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가 죽었다.
epidural하고 싶지 않다.  전신마취 준비해주세요.
 
긴장되는 수술실에서,
그들을 견디게 하는 것은 곧 아이를 만나게 될 기대일텐데.
어떤 마음으로 그 산모를 내가 깨어있는 채로 상대할 수 있단 말일까.
하지만, 나보다 더 환자를 생각하시는 산부인과 선생님께서 생각없이 오더를 내리셨을리가 없다.
아마, 수술 후 아픈 몸이 마음을 더 아프게 할까 걱정되셔서 그렇게 하셨겠지.
그래, epidural하자.
 
산모가 들어왔다. 100킬로가 훌쩍넘는다.
epidural을 하기싫은 문제가 아니라 성공이나 할 수 있으려나.
마음이 심난한 산모가 오면, 더더욱 잘해주어야 할 것 같은데,
아무말도 할수가 없다.

무슨말인들 위로가 될까. 모두들 내마음 같은지, 간호사들도 아무도 말이 없다.
평소답지 않은 고요한 수술실. 간신히 성공하고 바로 눕히고 나니 산모는 아무말도 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다.
이제부터 기억을 할 수 없는 약을 조금, 주사한다.
 

- 이대로 수술하는 건 아니죠? 저 잘 때 수술해주실꺼죠? 저 기억못하게 해주실꺼죠?
- 지금 대화도 기억못하실꺼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주 오래전에, 신문에서 봤던 기사가 생각이 났다.
뱃속에서 죽었다고 하는 아이가, 살아서 나왔다는 기사.
그런일이 있을수도 있을까. 어쩌면. 혹시.

 
수면제를 더 주사하고, 환자는 잠이 들었다.
아이가 나왔다. 놀랍도록 큰 아이.
원래 오늘 태어나기로 수술이 잡혀있던 아이.
지난 주말에 외래에 왔을 때, 아이가 너무 커져서 위험할 것 같다고 그날이나 늦어도 다음날 수술해서 낳자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산모는 오지 않았다.
오늘도 예정된 시간에 오지 않았다. 결국, 양수가 터지고 내원하였다. 그리고 아이는 이미, 심장이 뛰지 않고 있었다.
 
뱃속에서 나온 아이는 아이가 분홍색이었다.
어쩌면 살아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엄마와 연결된 탯줄을 자르자, 아이는 바로 새카맣게 변했다. 그저께까진 살아있던 아이, 어쩌면 어제도 살아있었을 아이가 이미 조금의 시간이 지났음을 알리는 모습으로 그렇게 나왔다.
 

산모는 비몽사몽이다.
"아이가 나왔나요? 탯줄 아빠가 자르게 해주시면 안되요?  마지막인데..."
"저.. 아기 볼 수 있나요?"
 
아마도 수없이 출산기를 읽고 준비했겠지. 탯줄은 아빠가 자르면 좋겠다. 어쩌면 애기 아빠는 싫다고 하는데 설득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막내잖아. 이제 마지막니까 기념으로. 남편이 잘라주길. 태어난 아기는 수술실에서 바로 볼 수 있겠지. 얼마나 예쁠까.
 

죽은 아이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닐 것 같았다. 그간 준비했던, 상상했던 장면들과 뒤섞여서 나오는 말이겠지. 비몽사몽간에도 아이가 살아있는 것 처럼 말하고, 계속 눈물을 뚝뚝 흘리는 산모가 안쓰러워 손을 잡으며 한마디 했다.

 
"산모님, 마음 아프겠지만, 출산이니까.. 몸조리 잘 해야해요.."

 
그리고 좀 더 잠들길 바라는 마음에서 수면제를 더 드렸다.
억제되어있던 슬픔은 약 때문인지 폭발했다.
"흑흑흑.. 저.. 아이 한번만 보여주시면 안되요? 저 진짜 괜찮아요.. 한번만 보여주세요.."
 
얼마나 마음이 아플지, 나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알수도 없다.
집에는 아기방이 꾸며져 있겠지, 아기가 사용할 기저귀와 배냇저고리도 가져왔겠지.
수술하고 올라가서, 산모로 가득한 병실에서, 아기들 울음소리를 들으며 지내야할 시간들이 얼마나 길까.
 

39주에 아기를 잃은 친구가 있었다. 얼른 다시 임신해서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면 어때? 하고 묻자, 나.. 출산한지 3달밖에 안됐어.. 라고 쓸쓸히 웃으며 답하던 친구. 임신 내내 일들을 돌아보며 이게 문제였을까, 저게 문제였을까 숱하게 가정하며 울었을 친구가 생각이 나서, 그때도 지금도 따뜻한 말한마디가 침묵보다 더 도움이 될 것을 알면서도 아무말도 할수가 없어서, 참 마음이 아픈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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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글은 이글로 해야지.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날인가, 그다음날에. 제왕절개로 나온 아기가 죽었다.

갓태어난 아기는 엄마의 이름을 따서 'xxx아기' 라는 이름으로 차트에 적힌다. 그 아이는 'xxx아기'도 되지 못한채, 엄마의 수술기록 한구석에 <Apgar 스코어 1->0. 30분의 CPR 에도 돌아오지 않아 사망선언함.> 메모로 그 생명에 관한 모든 기록이 끝났다.

까딱. 인큐베이터 위에서 작게 움직이던 그 아이의 까만 발이 자꾸 생각났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삼신할머니는 '너를 점지할 때 나는 행복했다' 는 말을 한다. 똑같이 태어나고 소멸되어가는, 별거아닌 인생이라도 한순간 누구에겐가는 진한 행복, 기쁨, 그리고 슬픔으로 닿아가는게 사람, 그리고 서로의 삶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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