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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Oct 18. 2019

치프 마지막 달을 앞두고

마취과 4년차, 텐팅 뒤 단상

1년차때부터 치프가 되면 하고 싶은 것이 두개 있었다.

1. 월초 회식을 하여 서로 좀 더 알고 챙겨준다.

2. 페어웰때 술을 마시겠다. 


11달의 치프턴을 보냈다. 

대부분은 행복했지만, 조금씩 나도 모르게 안하무인이 되어가는건 아닌가. 고민하며 시간이 지났다.

대체로는 좋았다.





이런 칭찬 문자들에 좋아하고



1년간 만났던 인턴중에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는 아이의 진로 상담 요청이라던지



원래 우리과 전혀 생각도 하지 않았던 인턴이 나와 함께 돌면서 우리과를 하고 싶어하고 지원할때의 고마움과 기쁨은 정말 생각보다 컸다.

이런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면서 기쁘면서도 나도 모르게 조금은 우쭐했었나보다.


우리병원은 인턴이 200명이 넘는데, 너무 당연히 200명의 성격도, 성적도, 성향도 모두 다르다.

우리과에서 일을 할땐 천성이 medical 계열 아이들은 좀 힘들어하는 경향이 있다.

빨리 정확하게가 많이 요구되는 과이고, 그렇기에 실수나 머뭇거림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기에 

전공의들은 어느정도 적성이 맞는 아이들이 들어오니 금방 익숙해지는데, 인턴들은 자원하는게 아니니까 .. 많이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있다.


작년까지는 그런 아이들을 더더욱 챙기고 좋아하려 노력했었다. 하지만 치프가 되니 나도 신경쓸 것이 많고

특히 이번달은 펠로우 지원때문에 이래저래 안좋은 일이 많다보니 나도 내가 예민함은 좀 느끼고 있었다.

잘하는 아이들은 칭찬하고 못하는 아이들은 홀대하고. 그냥 다들 그렇게 하니까. 

다 잘해주긴 나도 에너지가 너무 많이 필요한데 요즘은 그렇게 안되니까.를 혼자 변명하면서 한달을 보냈다.


생각해보니 월초 회식도 못한채로. 한달이 지나고 페어웰을 갔는데.

한달내내 부적절한 태도로 속을 썩이던 인턴이 있었다. 

일을 아주 못하는건 아닌데, 의욕은 앞섰고, 잘못을 사과할 줄 몰랐으며 그러기에 그친구의 무모함이 겁났다. 

나는 인력 어레인지 권한을 가진 치프로서 그 친구는 언제나 제일 사고가 날 가능성이 적은 곳, 가장 손이 안가는곳, 사실상 사람이 없어도 커버 가능한 곳에 넣었고, 그만큼 그 방에 들어가지 않았으니 컨택이 없었다.


술을 한잔 마시자마자 그친구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인턴을 그만해야겠다고 했다. 

전문의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군대 갔다와서 일반의로 살래요. 그럴꺼면 왜 이렇게 고생하면서 인턴을 계속해야하나 싶어요.


넌 일을 못하고, 넌 태도가 별로고, 넌 믿지 못하겠으니까 널 존중할수가 없어.


말로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의 이런 생각을 그 애가 과연 몰랐을까. 

나는 그애에게 그런 인상을 주지 않으려는 노력이나 했을까.

내가 무의식중에, 나의 태도로 얼마나 많은 상처를 그애에게 주었는지. 갑자기 깨달았다.


내가 치프를 하던 초반에도 그런 애들은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어떻게든 보듬어보려고 노렸했다.

하지만 이번달의 나는, (사실 지난달의 나도) 아무것도 노력하지 않은채, 그 아이가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않은채 무심하게 지내왔다는 사실이 너무 미안하고 슬펐다.


한달이 남았고, 또 인턴들이 바뀌면 속터지는 일들이 당연히 있겠지만.

스스로도 더 많이 노력해야겠다.




* 뒤의 다른 글을 위해, 치프때 쓴글 먼저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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