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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May 18. 2020

긴 터널의 끝에서

주말 아침 7시.


전화벨이 울렸다.

- 선생님. 환자가 a-line이 안잡히는데..

- 응?


보통 라인이 안잡히는 일로 전화하지는 않는다. 


- 다리에 a-line이 있긴 한데요.. 그게 안나와서 팔에 초음파 보고 잡는데 안되고.. 혈압도 안쟤지고..

- 수술을 아직 시작 안했어?

- 수술은 하고 있습니다.. 와주셨으면 좋겠어요.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잘 안되지만. 

와달라고 하니까 가야지.



- 가는데 시간 좀 걸릴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

- 네. 그 때까지 괜찮을 것 같아요.



옷을 갈아입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 어레스트 나서 cpr시작합니다.




택시를 부를까. 생각하다가 운전하는게 더 빠를 것 같았다. 

도로에 나섰더니 차가 별로 없었다. 

정신을 가다듬으며 네비게이션를 켰다.

그리고 달렸다.



보통 40분. 차 없는 시간이면 30분 걸릴 거리를 20분만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1년차였다.

- 언제 도착하시는지 여쭤봐달라고 해서 전화드렸습니다.

- 리듬 돌아왔어?

- 아니요. 계속 cpr중입니다.



수술실로 뛰었다.

내 얼굴을 본 외과 치프가 말했다.

- 선생님 피가 계속 올라오는데 어딘지 모르겠어요.



이미 30분이 다 되가는 cpr. 

한번도 돌아오지 않은 리듬. 

결정해야하는 순간이었다.



외과 교수님을 보았다.

- 마취과 선생님이 사망선언 해주시죠.



보통은 수술 중 사망해도, 중환자실 올라가서 사망 선언을 하는데. 여기서 하자고 했다.


- x시 xx분. xxx환자 사망하셨습니다.


인턴때 이후, 

처음으로 내 입으로 사망선언을 했다.





2년차에게 좀 쉬라고 했다.

1년차가 차팅하는걸 봐주고. 의국에 갔다.

인턴에게 카드를 주고 달달한 것 좀 사와. 했다.



아침 9시.

술도 마실 수 없고 당직도 24시간쯤 남은 시간에.

이거라도 먹자. 하고 아이들을 불렀다.



울고 나온 듯 눈이 빨개진 2년차가 나왔다.

1년차는 거기서 울었다. 다시 2년차가 울었다.



- 우리는 신이 아니야. 모두를 다 살릴수는 없어.. 

우리는 우리의 최선을 다하고. 써전은 써전의 최선을 다하고 환자는 환자의 최선을 다하는거고.. 

결과는 신이 주시는거야..

- 제가 기인한 부분이 하나도 없진 않잖아요.. 교수님께 전화라도 일찍 드렸어야했는데...





위로는 자신이 없었다. 

환자는 워낙 안좋았고. 내가 있었다고 해도 시간이 조금 늦어질수는 있었겠지만 결과가 달랐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전공의 말대로. 그 분이 돌아가시게 된 백가지 이유중  몇가지엔 우리도 기여했겠지..




나도 마음이 힘든데 애들은 얼마나 마음이 힘들까 생각했다.




며칠 후.

교통사고 환자가 왔다.

환자는 상태가 좋지 않았다. 심각한 복부출혈. 조금 뇌출혈도 있고 여기저기 다쳤지만 일단 복부출혈을 해결하면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엊그제 울던 1년차 생각이 났다.

같이 하자.



엄청 많은 사람들이 모두 같이 열심히 최선을 다했고. 기대 이상으로 환자는 좋아져서 중환자실로 갔다. 

써전이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1년차에게 이야기했다.

- 힘든 환자일것 알았지만. 같이 해내고 보람을 느꼈으면 했어. 

며칠 전의 슬픔같은 날도 있지만 오늘같은 보람과 기쁨을 꼭 맛보여주고 싶었어.



다음날. 

소량이라서 두고 관찰하려던 뇌출혈이 갑자기 악화되었고 점점 심해져서 뇌사 상태가 되었다. 

결국 그 환자는 장기 기증을 위해 수술실로 들어와 마지막을 맞이했다.







우리는 신이 아닌데. 나는 신이라도 된 것처럼 착각했던 것일까. 

나는 왜 그 사람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 지금은 괜찮은데, 수술하며 피가 많이 났으니 머리의 출혈이 더 심해지진 않을까 걱정이네. 

하고 환자를 내보내며 말했을땐 그게 정말 일어날 일일줄 몰랐다.





슬픔은 오래갔다. 우울이라고도 절망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감정. 

그저 인간은 신이 아니고 최선을 다할 뿐이다.. 라고 알고 있지만. 

모든 것이 아무렇지도 않을수는 없었다.




출근도 하고 퇴근도 하고 울고 웃고 아무렇지도 않은 하루들을 지내며. 

감정은 동굴에 숨어 슬픔의 파도가 지나가길 기다린다. 조금씩 조금씩 쓸려나가며 또 괜찮아지기를. 


기억나지않는 어느 순간에 내 스스로 이런 삶을 택했겠지. 

바이탈하는 과를 하고 싶다고.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는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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