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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인 Jun 01. 2022

똘레랑스의 나라



똘레랑스(tolérance)의 나라답게 프랑스는 사회 곳곳에서 사람들의 관용 혹은 무관심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면모들을 보일 때가 있는데, 내가 관찰한 바로 이들이 최대의 관용을 베풀 때는 타인의 노상 방뇨에 관한 것이다. 노상 방뇨란 길거리에서 오줌을 눈다는 뜻으로, 내가 직접 목격한 남자들의 오줌 누는 광경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후미진 담벼락이나 술집 앞에 '노상 방뇨 금지'라는 팻말을 간혹 본 적이 있지만 이 나라의 노상 방뇨 레벨은 한국의 것과는 크게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일단 어딘가에 숨지 않고 당당하게 싼다. 사흘 전 바스티앙과 마트에 갔을 때였다. 나는 차에 남아 바스티앙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공기가 답답해 차 문을 살짝 열어 두었다. 얼마 후 바로 옆에서 콸콸콸 하고 물이 세차게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한 남자가 우리 차 바로 옆에 주차되어 있던 폭스바겐 트럭의 운전석 문을 열고 그 문과 운전석 사이에서 오줌을 누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와 눈이 마주쳤지만 그는 이미 자신을 컨트롤하기에 늦은 듯 보였고, 나는 한참을 더 그의 오줌 싸는 소리를 바로 가까이에서 들어야만 했다. 와중에도 나는 내 최대의 관용의 정신을 베풀어 그가 무안할까 봐 우리 차 문을 닫지 않고 있었다. 경악스러웠던 건 어째서 자신의 자동차 문 안쪽에다 오줌을 쌀 수 있냐는 것이었는데, 자신의 모습을 들키지 않고 볼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장소는 아주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를, 나를 의식한 변태로 봐야 하는 것인가 하면 그건 아닌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의 오줌 싸는 소리를 상기해 보았을 때 그는 매우 급한 것이 틀림없었다. 참고 싶었겠지, 하지만 장을 다 보고 그의 차에 도달했을 때 "이건 아니다. 견딜 수가 없다."는 일차원적인 생각이 머리와 그의 생식기를 때렸을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을 백 프로 공감할 수가 있는데, 몇 년 전 로드트립 중에 길을 잘못 들어서는 바람에 벨기에의 안트베르펜 4차선 고속도로 한가운데에서, 엄청난 교통체증으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오줌을 참다가 급기야 눈물까지 뚝뚝 흘리며 뒷좌석에 펼쳐져 있던 우리 집 개 패드에다 일을 볼 뻔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단한 일을 하고, 철학적인 사고를 한다고 해도 결국 인간은 먹고 자고 잘 싸는 행위가 일차원적으로 수반되지 않으면 안 되는 동물인 것이다. 


또 하나의 노상 방뇨 목격담은,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내 맞은편에서 한 남자가 자신의 생식기를 훤히 드러낸 채 지하철 레일을 향해 오줌을 싸고 있었다. 나는 그 남자와 주변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했는데,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 남자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게 재밌었다. 당신이 아무리 아침부터 더러운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도 당신은 내 하루를 망칠 순 없다는 류의 정신 승리가 작동했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일까. 유독 내 눈에만 이런 사람들이 더 잘 보이는 것만 같은 것은.

놀랍도록 더럽고, 황당한 이야기들은 차고 넘치지만 그것을 대하는 프랑스 사람들의 태도와 그 끝없는 관용의 정신에 경의를 표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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