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서울 광장을 한창 밝혔던 겨울, 촛불을 든 채 광장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냈던 나와 중2 아들 녀석은 이튿날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다. 아이도 나도 사회적인 아픔과 개인적인 힘듦이 엉켜있던 한 해를 그저 멀리 떠나서 마무리 짓고 싶었다.
엄마와 단둘이 떠난 여행지에서 아들은 그동안 알게 모르게 숨겼던 어린 모습을 보여주었다. 투명하게 맑은 표정으로 고스란히 감정을 내비쳤다. 첫 도착지였던 밀라노에서부터 다시금 발견된 아이의 천진함은 로마와 피렌체에서 정점을 찍었다.
로마에서 콜로세움을 찾아 걸어가던 중이었다. 콜로세움 귀퉁이가 얼핏 보이더니 점점 그 조각이 크게 다가오던 때, 앞서 걷던 아이가 휙 돌아섰다. 심장이 떨리다 못해 펑 터져버리겠으니, 뒤로 돌아 걷겠단다. 콜로세움이 눈 앞에 완전히 드러났을 때 자신을 돌려세워달라고했다. 흥분이 배어나는 녀석의 붉어진 얼굴을 보니 내 심장도 덩달아 콩콩콩 소리를 내며 빨리 뛰었다. 나의 눈빛에 의지해 뒤로 위태롭게 걷던 아이의 표정은 들뜸으로 가득했고, 그런 아이를 살피며 목적하는 것과 마주할 수 있도록 돌려세우기까지의 나 역시 벅차오르는 무언가에 가슴께가 조여올 정도였다. 콜로세움을 온전히 바라본 순간의 녀석은 발을 구르며 괴성을 지르며 감정을 쏟았다.
피렌체에서 그의 설렘은 눈물과 함께였다. 우리는 한 해의 마지막 30분을 피렌체 두오모 앞 벤치에 앉아 보냈다. 분홍빛 대리석으로 지어진 성당 모습에 감탄하던 아이가 다리가 풀린다며 나까지 잡아 앉혔기 때문이다. 광장의 술렁거림과 달리 아이와 나는 차분해졌다. 부슬거리는 빗방울에 반사된 빛을 머금어 더욱 영롱해진 두오모에, 우리는 빠져들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옆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움직임에 정신차려보니, 아이의 어깨가 들썩였다. 녀석이 울고 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반응에 내가 성급하게 말을 꺼냈다.
"너 울어?"
웃음기를 섞어 물었지만, 세 음절 만에 내 말끝에도 울컥함이 묻어났다. 대답 대신 아이는 "어헝"하며 더 크게 울어버렸다. 울음 끄트머리의 아이 입에서 '아름답다'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변성기 둔탁한 목소리에 실리기엔 위화감이 있는 단어라 나는 놀랐다. 아이는 이 세계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더 있을지 찾고 싶다는 말도 띄엄띄엄 이어갔다. 그 설렘 가득한 다짐에 나도 올라탄 순간이었다. 곧 시작될 새해 축하 공연을 보기 위해 자리를 옮기자는 나의 말에, 아이는 자기 눈 앞에 이미 최고로 멋진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고도 대답했다. 아이의 떨리는 목소리와 더불어 그의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광장의 소음을 뜷고 들리는 듯 했다.
나는 로마와 피렌체를 내 마음 속에 응고시켰다. 내 아이의 설렘을 온전히 발견했던 그 시간 속에 곱게 곱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