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니아 옷장 속의 대중음악사'- 한국어문기자협회 발행 <말과 글> 中
팬(fan)은 운동 경기나 선수 또는 연극, 영화, 음악 따위나 배우, 가수 등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외국어에서 외래어가 된지 오래다. ‘애호가’로 순화하자는 이야기도 있으나, 애호가와 팬은 엄연히 다른 느낌이다. 애호가는 점잖고 팬은 열정적이다. 영어 fan의 뜻을 봐도 열광적이고(enthusiast) 감탄과 존경을 보이고(admirer) 집단의 형식을 갖추기도 한다.(groupie) 이러한 팬이 우리 신문지상에는 언제부터 등장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1920년부터 1999년까지의 옛 신문 뭉치에서 ‘팬’을 검색하니 무려 5000건이나 나온다. ‘재팬’, ‘피터팬’, ‘팬플루트’, ‘미국 팬암기’ 등을 걸러내고 들여다봐도 참으로 많다. 갈 길이 멀다. 그래도 한번 가보기로 한다.
가장 처음 ‘팬’이 등장한 기사는 1928년 신문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사회적 인식 때문에 스크린에서 활동할 여배우들을 찾기가 어렵다는 얘기와 함께, 당시 ‘신진여우들’에 대한 소개를 하며, ‘여러 “팬”에게 인상을 그다지 깊게 주진 못하였으나’ 란 구절에 ‘팬’이란 용어를 등장 시킨다. 가수들에 대한 것으로는 1930년 테너 현제명에 대한 기사에서 ‘팬’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일즉히 부드러운 그 음성과 탁월한 연기에 만흔 경의를 표하든 “팬”들’이란 구절에 보인다. 대중가요계가 형성되기 전이기에, 주로 ‘음악회’에 대한 기사에서 ‘팬’이 등장한다. 1933년 이후에야 애써 가요팬과 연관해 유추해볼 수 있는 표현들이 등장한다. “일반 대중이 애창하는~”, “청춘남녀의 심금을 울리는~” 정도로 아주 살짝. 이후, 1960년 기사에서부터 대중가요계에서도 ‘팬’이 쓰인 말들이 활발히 나오기 시작한다.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팬들의 경향”, “팬들 간 정평이 있는”, “팬들의 뜨거운 사랑”, “팬-레터”, “팬을 가진 인기 직업인가수”와 같은 표현을 시작으로 말이다.
‘팬’을 수식하는 말들도 요모조모 살펴본다. “구름 같은”, “광범한”, “열렬한”, “폭 넓은” 정도가 1960년대 초에 팬 앞에 붙는다. 1965년부터 “팬들의 성화”와 같은 표현이 등장하더니, 1969년에는 “도취팬”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1973년, 드디어 우리에게 익숙한 “극성팬들” 이라는 표현이 쓰인다. ‘팬’과의 교류를 엿볼 수 있는 여러 표현들도 들여다봤다. “팬들의 꿈을 깨서는 안 된다.”, “팬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다.”, “팬의 격려”와 같은 흐뭇한 이야기도 있지만, 이미 1962년부터는 “팬들의 비난”, “팬들의 지나친 사생활 침범”, “팬들의 가슴에 못을 박고” 와 같은 표현들도 나오기 시작한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성장하게끔 지원해준 팬”, “저를 키워주신 팬”, “ 팬들과 친숙할 기회”등과 같은 표현이 보이며 팬들과 스타 사이에 좀 더 적극적인 교감이 생겨난 것을 짐작하게 한다.
팬 개개인이 아닌 단체로서의 ‘팬클럽’에 대한 언급은, 1968년 한 이탈리아 가수의 초청 리사이틀 소식을 전하며 ‘이탈리아 국내에서 300명에 달하는 “팬클럽”이 있다’는 소개로 처음으로 나온다. 이후, 1971년부터 주로 해외 연예인들에 대한 기사에서 ‘팬클럽’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실린다. 1974년 기사에서는 가수 김상진의 팬클럽 서울회원 일동이 2만원의 방위성금을 기탁했다는 소식을 보며 ‘팬클럽’을 찾아볼 수도 있었다. 팬클럽이 이리 좋은 기사에만 등장할까 싶어 의아한 생각이 든 것도 잠시, 그럼 그렇지, 이내 팬클럽의 ‘유해함’(?)을 언급한 기사가 눈에 띤다. 무려 ‘사꾸라 부대’ 라는 표현과 함께.
歌謠界(가요계)의 사꾸라 部隊(부대) 팬클럽 없어진다
경향신문 1975.6.10.5면
가요계의 부조리 팬 클럽이 子眞解體(자진해체)를 서두르고 있다. 팬 클럽이란 特定歌手(특정가수)를 에워싼 소위 「사꾸라部隊(부대)」, 각종 放送(방송)프로그램에 視聽者(시청자)로 위장한 희망곡 신청을 비롯해서 공개방송이나 公演場(공연장)에 나타나 奇聲(기성)을 지르는 박수부대가 팬클럽인데, 이번에 주요 팬클럽의 幹事(간사)들이 모여 自進解體(자진해체)를 결의함으로써, 그동안 惡名(악명)높았던 사꾸라部隊(부대)가 자취를 감추게 됐다.
이 땅에 팬클럽이란 이름의 사꾸라部隊(부대)가 생긴 것은 約(약) 5년전.
인기가수 N군을 鼻祖(비조)로 추대하는 팬클럽이 생기자 雨後竹筍(우후죽순)격으로 늘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느 특정의 유명가수를 推仰(?)(추앙)하는 狂信的(광신적)인 팬들의 친목회로 출발한 팬클럽은 당초의 취지를 벗어나 풍속사범의 輕犯團體(경범단체)로 궤도를 이탈했었다. 팬 클럽으로서 가장 규모가 컸던 것은 역시 N군의 클럽. 한때 N師團(사단)이라 지칭할 만큼 全國(전국)주요도시에 支社(?)(지사)를 설치하고 數萬(수만)의 멤버를 자랑했고 每月(매월) 月報(월보)까지 발간할 정도. 本部(본부)의 일사분란한 지시를 받아가며 숱한 팬들이 꼭둑각시 노릇을 해왔다. 각자가 엽서에 의한 희망곡을 신청함으로써 放送局(방송국)에 희망엽서가 殺到(쇄도)케하고 公開放送(공개방송) 및 公演場所(공연장소)에 나타나서 奇聲(기성)을 지르며 열광하도록 하는 것 등 팬 클럽의 사업은 한 때 거창했다.
이러한 사꾸라部隊(부대)의 횡포가 마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을 N가수와 또 하나의 N가수가 각축전을 벌이면서였다. -중략-
방송국 측의 제제가 날로 심해지자 팬 클럽의 활약도 고개를 숙였는데 그래도 보이지 않는 裏面(이면)에서는 계속 인기 상승을 위한 작전이 수행되어왔다. 최근에는 팬 클럽을 구성하고 있는 몇몇 가수의 名聲(명성)이 떨어지자 사꾸라部隊(부대)는 서서히 기능을 상실했는데, 이와 때를 같이하여 주요클럽의 幹事(간사)가 7일 낮 市內(시내) 某處(모처)에서 會同(회동), 해체를 결의하기에 이른 것이다. 현재 서울 市內(시내)에만도 팬클럽 事務室(사무실)은 10餘(여)개소, 전화와 소파와 휴게시설을 갖춘 연락소에는 아직도 狂信徒(광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에 결의한 팬 클럽의 解體(해체)는 엄밀한 뜻에서 사꾸라作戰(작전)의 휴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가수들 상호간 인기작전을 페어플레이로 하자는 紳士協定(신사협정)인데 이에 대해 放送局(방송국)이나 藝倫側(예륜측)에서는 다분히 冷笑的反應(냉소적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략- 어쨌든 5년 남짓 공연장이나 공개방송현장에서 추태를 벌이던 사꾸라部隊(부대)가 사라진 것을 후련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후련하단다. 1970년 경 등장한 팬클럽이, 그것도 N 가수의 팬클럽이 잘못해도 한참 잘못했나보다. (N 가수와 또 하나의 N 가수, 즉 남진 씨와 나훈아 씨의 당시 팬들은 이런 평가를 순순히 받아들일까 궁금하다.) 이들 팬클럽은 광신적이었으며, 기괴한 소리를 지르며, 박수부대로 활동하면서 경범단체로 전락해 추태를 부렸다고 한다. 이런 기류의 기사가 1970,80년대를 장악한다. “몰려온 팬들로 장사진”,“극성팬 덮쳐 기절”, “열광적인 소녀 팬들의 습격”, “극성 여성팬 때문에 골치를 앓는 관계로” 등의 표현이 팬과 팬클럽을 다루는 기사의 주류를 이룬다.
1990년대 들어서는 어떠했을까? 우선, 팬들을 다양하게 분류해 언급하기 시작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일찌감치 1961년부터 등장한 ‘여성팬’을 시작으로 조금씩 분화되어 표현되던 팬들은 1990년부터는 주로 세대로 나뉘어 불리기 시작한다. ‘10대팬’, ‘소녀팬’, ‘중년팬’ 등. 1991년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청소년팬’, ‘10대 여 중·고팬’이 등장한다. 이후, ‘주부팬’, ‘어린이팬’, ‘직장인팬’, ‘하이틴팬’ 등으로 더 세분화된다. 그리고 그저 ‘어느 가수의 팬클럽’으로 존재했던 것들에 이름이 하나 둘 붙기 시작해, 1990년, 가수 이선희씨는 팬클럽인 ‘홍당무’ 의 지역별 분포와 함께 활동 햇수 등으로 따져본 충성도를 이례적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팬클럽의 활약이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던 것은 역시 기술의 발전을 통해서였다. 1991년 방송가가 컴퓨터로도 희망곡을 접수한다는 소식이 대서특필 될 시기를 시작으로, 이후 PC통신을 통한 10대, 20대 팬들의 활동은 당시 기성세대의 이해 수준을 뛰어넘어 훨훨 날아오르게 된다. 자신들의 ‘스타’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와 사랑 표현 뿐 아니라, 그들과 같이 사회문제에 참여하고 대중문화계의 거침없는 비평단체 또는 압력단체로, 나아가 또 다른 적극적인 문화생산자로 자리매김해 나갔다. 그러나 여전히 신문지상의 팬클럽에 대한 언급은 부정적인 것이 대세를 이룬다. 1992년에 있었던 ‘뉴키즈온더블록’의 내한공연과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을 기점으로 “평범한 10대들의 광란”, “어찌 이 지경이 되었나”, “집단광기”, “사춘기 소녀들의 스타 증후군” 과 같은 표현이 기사 제목으로 넘쳐난다. 이후 1990년대 말이 되어서야 언론을 중심으로 한 기성세대들도 ‘팬덤’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밖에 없게 된다. HOT와 젝스키스 같은 ‘아이돌’이 태어나고 그들을 응원하는 거대한 팬클럽들의 출연 덕분이었다. 물론 ‘집단 광기’를 부리던 팬클럽의 일원이었던 사람들이 점차 ‘기성세대’로 나이 들어가며, 경험을 통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1920년대부터 1999년까지 신문 속 ‘팬’ 과 ‘팬클럽’ 이란 검색어만을 중심으로 주마간산 격으로 살펴만 보아도 스타와 팬의 관계, 팬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 등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느껴진다. 이 80년의 세월 속에서 태동하고 성장해온 팬들과 그들의 모임은 90년대 후반부터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20년에 걸쳐 가히 ‘진화’의 시간을 달려왔다. 지난 세월 ‘사꾸라 부대’를 거쳐 지금 우리는 전 세계적인 ‘군대’를 갖게 되었으니 ‘진화’란 말이 어울릴 듯하다. 방탄소년단 보유국으로써 이룬 또 하나의 쾌거다.
“노래를 사랑하는 일곱 소년과 소년들의 날개 아미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작년 5월, 방탄소년단이 K팝 가수 중 처음으로 ‘빌보드200’ 1위에 오른 것을 축하하며 문재인 대통령이 남긴 말이다. 이제는 대통령에게까지 인정받은 팬들이 생겨난 것이다.
‘21세기의 비틀즈’로 불리며 그 매력을 아낌없이 발산하고 있는 그룹 방탄소년단이 그들의 모든 것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날개가 되어 준 ‘아미’라는 이름의 팬들을 주목한다. 방탄소년단의 탄생과 성장을 지켜보며 응원하고, 그들이 만들어가는 음악과 서사를 다양한 방법으로 즐기고 확산시켜가고 있는 방탄소년단의 팬클럽에 공식적으로 가입해서 활동하고 있는 팬들을 가리키는 아미(ARMY)는, 인종과 국적의 경계가 없이 말 그대로 ‘지구촌’에 널리 분포되어있다. 당초 “방탄소년단, ‘방탄’하면 군대지, 너희는 우리가 지켜줄게.” 라며 생긴 이름이라지만, 이제 방탄소년단의 친구(amie)로, 그것도 ‘절친’으로 해석되면 어떨까 싶을 만큼 방탄소년단과 뗄 수 없는 익숙한 이름이 되었다.
하늘이 아닌 땅 위에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별이 되어 새겨지는 ‘스타’들과 그 별의 태동기부터 가장 빛나는 시기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팬클럽’의 이야기. 서로가 믿고 의지하며 두려움을 걷어 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으로써 실체를 갖고 존재하는 그들의 이야기가 방탄소년단과 아미에 의해 재조명되고 있다.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지난 시간 ‘사꾸라 부대’를 넘어 군대(ARMY)를 이루기까지 자신들의 스타와 대중 문화사를 같이 써 온 수많은 팬들에게도 감탄사 한마디를 건네고 싶다. Fantast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