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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정연주 Jul 06. 2021

저 너머의 문을 열고

한국어문기자협회지 <말과 글> 나니아 옷장 속의 대중음악사 기고문

     “나는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고 있고, 그 누구보다도 지지자들과 역동적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데, 벌써 지난 세대로 치부되다니 가는 세월도 야속하고 급변하는 상황도 낯설다.”

                                                                               

      세대교체가 화제다. 앞선 이야기의 화자, ‘나’는 누구일까? 정치권에 몸담고 있는 누군가들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고, 혹은 이 글을 읽고 있는 다름 아닌 당신의 이야기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누구나 살아가는 시간이 쌓일수록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마음일 수 있겠다. 늘 ‘신’세대의 등장은 화려한 도약으로 평가받기 마련이고 ‘구’세대의 활동은 말 그대로 ‘구태’다.


    대중 음악계, 정확히는 대형 기획사에 의해 탄생해 활동하고 있는 아이돌 그룹의 세대 구분도 활발하다. 새로 등장한 아이돌 그룹들을 조명하며 아이돌 3.5세대, 아니 좀 더 나아가 과감히 4세대의 등장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관계자들이 많다. 각기 나름의 기준으로 아이돌 그룹의 탄생부터 세대를 구분하고 설명한다. 무관심한 자들의 눈에는 그러한 구분이 조금은 억지스러워 보이기도 하나, 이른바 K-pop의 대표주자로 아이돌 그룹을 받아들이고 열심히 추종하는 사람들은 최근 ‘신’세대 그룹의 등장에 주목하며, 요즘을 세대 구분의 중요한 시점으로 읽고 있다.

그룹 <에스파> 왼쪽부터 닝닝, 윈터, 카리나, 지젤 (사진출처: SM엔터테인먼트)

    그 중심에 서 있는 그룹으로 SM엔터테인먼트 의해 작년에 처음 이름을 알린 에스파(aespa)를 꼽는다. 4명의 인물과, 그들의 아바타(avatar)라 할 수 있는, SNS 활동 등을 통해 만들어져 가상의 공간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 ‘아이’(‘ae’라 쓰고 ‘아이’라 읽는단다.) 까지 더해진 8인조 그룹이란다. (무슨 말인가 싶다.)

이럴 때 한번 써 보는 필자의 이모지(EMOJI)

    ‘4세대’ 아이돌이라며 주목하기에 일단은 그들의 방송 무대를 보기로 한다. 기존 아이돌 음악과 크게 다르지 않다. 풍성한 안무며 리듬이 좋아서 듣기는 하나,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며, 심지어 가사를 ‘읽어도’ 모르겠다. 제목 ‘블랙 맘바’는 무엇이란 말이냐. 개연성 없는 엉뚱한 전개가 낯설어 호기심을 지우고 관심을 접었다. ‘구’세대다운 빠른 포기였다.

어느새 신곡이 나왔다며 다시 떠들썩해진다. 들어보니 익숙한 곡이다. 알고 보니 영화를 통해 익숙해진 ‘넥스트 레벨(Next Level)’ 이란 곡에 우리말 가사를 붙여 부른 곡이란다. 그런데, 또 다시 들어도, 봐도, 읽어도 도통 모르겠다.


 I’m on the Next Level Yeah/ 절대적 룰을 지켜/ 내 손을 놓지 말아/ 결속은 나의 무기/ 광야로 걸어가/ 알아 네 home ground/ 위협에 맞서서/ 제껴라 제껴라 제껴라/ 상상도 못한 black out/ 유혹은 깊고 진해/ Too hot too hot/ 맞잡은 손을 놓쳐 난 절대 포기 못해/

 I’m on the Next Level Yeah/ 저 너머의 문을 열어/Next Level/ 널 결국엔 내가 부셔/

Next Level/ KOSMO에 닿을 때까지/ Next Level/ 제껴라 제껴라 제껴라/ La la la la la (후략)


가사를 보며 음악 방송 무대를 지켜보니, 또 다시 ‘블랙 맘바’며, ‘나비스’며, ‘광야’가 나온다.

“혹시 노래 자체가 게임인가? 아님, 연작 영화?”

그나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만든 노래인지 모르겠다며 관심 밖으로 내쳐졌던 전작에 비해선 일단 내 호기심을 붙드는 데에는 성공한 듯하다.



가요계에 「테크노음악」 열풍


가요계에 테크노음악열풍

신디사이저로 여러 악기 합성

색다른 감각·빠른 템포에 청소년 매료

경향신문 1992.11.18.

제3의 음악으로 불리는 첨단 테크노음악이 국내가요의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10대 취향의 리듬음악이 큰 인기를 모으면서 장르가 통합되고 컴퓨터가 바탕이던 실험음악들이 새로운 감감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테크노음악의 특징은 악기의 음을 합성하는 것은 물론 유리창 깨지는 소리 등 효과음까지도 멜로디화 할 수 있어 새로운 곡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중략)

국내에서는 가수 신해철이 「안녕」이란 곡에서 테크노기법을 이용했고 최근 발표한 「50년후의내모습」은 완벽한 테크노음악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또 그룹 「015B」의 「아주오래된연인들」,이현우의 신곡「이 거리엔 비가」,서태지와 아이들의 「환상속의 그대」등도 전형적 테크노음악들이다.              (중략)

국내의 테크노음악은 공격적이고 반복적인 빠른 리듬이 현대적인 감각을 느끼게 하고 트롯가요에 자주 사용되는 단순한 음계 구성이 쉽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편이다. 한편 국내가요계에서 이 같은 테크노음악이 부상함에 따라 과거 인기를 모았던 발라드·트롯가요는 크게 위축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최정상 스타로 군림하던 변진섭·신승훈·양수경 등 발라드가수들이 랩·테크노음악을 구사하는 신세대들에게 완전히 밀려버린 것. 이밖에도 한때 중년층에 어필했던 가수 김정수·태진아·김지애 등 트롯가수들도 간신히 명맥을 이어갈 정도로 퇴조현상을 보이고 있다. 한편 가요계에서는 음반제작자나 가수, TV·라디오 등 방송에서 이 같은 첨단음악을 지나치게 확산시켜 10대취향음악만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도 대두되고 있다.                                                   

                                                                                                                                       <朴聖洙 (박성수)기자>

위 기사에 언급된 1990년 신해철의 노래 <안녕> 무대 사진 (사진출처 : 1990년 MBC10대가수가요제,유튜브 화면 캡처)

   


    우리 대중가요사를 들여다 볼 때, 신문지상에 ‘신세대’란 단어가 가장 적극적으로 쓰인 시기로 단연 1990년대가 두드러진다. 이전 시기와 그 이후에 비해, 대중문화가 전반적으로 팽창하고 급변하던 시기답게 ‘신세대’란 용어와 더불어 ‘10대’에 주목한 진단들이 활발히 이뤄진다. 위의 기사에서는 ‘테크노 음악’의 강세를 설명하며, 테크노 음악을 구사하는 ‘신세대’들에게 기존 가수들이 ‘완전히 밀려버렸다’고 설명한다.

좀 더 다양한 1990년대 대중가요를 포함한 대중문화 관련 기사들을 살펴보면 ‘구세대’, ‘신세대’의 구분과 이들이 각기 문화적으로 겪게 되는 충돌 지점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사회적으로 그 해석을 넓혀 나간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이후부터는 ‘세대 구분’이 오히려 너무도 당연해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어졌거나, 혹은 그런 구분 자체가 ‘구태’로 비쳐져서인지, 세대 구분을 통한 분석보다는 좀 더 세분화한 개인의 취향 또는 개성을 읽어내려는 시도가 더욱 활발해졌다.


    ‘세대’를 간단히 사전적 정의를 통해 살펴보면, 한 사람이 태어나고 성장하여 부모 일을 계승할 때까지의 대략 30년 정도의 기간을 말한다. 이런 뜻을 확장해 제품이나 문화적 산물을 구분할 때에도 유용하게 쓰기도 한다. ‘차세대 전투기’ 라든가 ‘3세대 휴대폰’ 과 같은 경우가 바로 그러한 활용이다. 이런 경우 엄밀히 말하면, 새로운 세대인 ‘신세대’ 의 등장이란 곧 이전 세대, ‘구세대’의 뒤떨어짐을, 가혹하게 짚어보면 쓸모없음을 말하기도 한다. 혁신을 통한 차세대 전투기가 나왔다는데 기존 전투기의 단종이야 뻔한 일일 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 집중해보면, 새로운 세대의 등장은 지난 세대에게 두려움을 가져오기에 충분하다. 내 역할이 축소되고 내 자리가 사라지는 시점을 인지하고 앞으로의 그 뻔한 변화의 과정을 바라보는 일이 쉬울 수 없다. 또, 당연하지만 앞으로의 일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주는 무력함 또한 두려움을 증폭하기 마련이다.


    ‘세대’를 뜻하는 사전적 정의로, ‘같은 시대를 살며 공통의 의식을 가지는 비슷한 또래의 사람 전체’를 뜻하는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때 같은 세대라 이야기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을, 같은 시대를 산 ‘비슷한 또래’로 보느냐, 같은 시대에 갖고 있는 ‘공통의 의식’으로 보느냐에 따라 ‘세대 구분’의 편차는 무척 클 것이다. 현 시점을 같이 살아가는 입장에서 에스파의 음악을 접할 때 같은 또래라 하더라도 취향 등의 차이로 그들에 대한 지지도가 극명하게 갈릴 수도 있을 것이요, 다른 또래라 하더라도 새로운 세계관을 갖고 접근하는 창작 시도에 관심이 생겨 그들을 응원하는 같은 지지 세력이 될 수도 있을 일이다. 이 때 누구를 같은 세대로 묶고 누구를 다른 세대로 묶어 구분할까?

    중요한 것은, 세대 구분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이 수렴된 어느 세대에만 머물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시간의 관점에서는 자신을 중심으로 앞선 세대와 뒤에 오는 세대에 두루 두루 손을 뻗어 좀 더 소통하고자 하는 것이 중요할 일이다. 의식면으로는 자신과 다른 입장을 보이는 자들에게 눈을 돌려 좀 더 이해하고자 들여다보는 자세가 필요할 일이다. 에스파 노래 가사를 빌리자면, 이쪽 저쪽 ‘저 너머의 문을 열어’볼 일이다.  


    앞서 언급한 3.5세대 또는 4세대의 선두주자로 불리는 에스파의 세계관에 대해 이제 좀 더 알고 싶어진 당신, 다시 말해 다음 세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자, 색다른 입장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당신을 위해 설명을 보태본다. 에스파의 노래는 그 자체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들지 않았단다. 이들의 선배인 엑소(EXO)때부터 해당 기획사가 야심차게 가꾸어 오고 있는 새로운 ‘세계관’을 기반으로 이어져 오고 있단다. 나름의 서사 속 한 부분으로 이해해야 한단다. 에스파의 현생 멤버들과 그들의 온라인 상 자아인 아이(ae)를 이해하기 위해, ‘존재는 본질을 앞선다’는 사르트르의 철학적 설명으로 그 맥락을 잡아가게 만든다.

그룹 <에스파>의 전체 멤버를 담은 사진(사진출처 : SM엔터테인먼트)

아이돌 음악에서 실존주의까지 짚느냐고 물어보고 싶은 당신, 돌진하는 ‘신’세대와 그들이 만들어내는 것들에 대한 낯섦을 두려워하는 대신, 그들의 방대한 기획력에 감탄할 준비를 하고 스스로 그들을 한번 파보기를 권한다. 친절하게도 그들은 다양한 경로로, 다양한 매체를 통해 꽤나 흥미롭게 그들이 만들어낸 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에스파 epi.1  <black mamba> 뮤직 비디오로써 SM의 세계관을 10분 여의 영화와 같은 스토리로 보여주는 영상의 일부. (유튜브 화면 캡처)

    사르트르가 말한 대로, 우리는 날마다 여러 가지를 결정하고 선택하면서 스스로를 만들어가며, 지금 여기에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존재들이 아니었던가. 비록 우리가 흘러가는 ‘구’세대일지언정 두려워말고 용기를 가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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