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한 번 이상은 챙겨보게 되는 영화가 있다. 대충 서너 편의 영화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머니볼>은 특히나 각별한 영화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를 매년 한 번 이상은 챙겨보는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아론소킨의 각본, 할리우드에서 만든 스포츠 영화, 조나힐과 크리스 프랫, 필립 셰이모어 호프만과 브래드 피트까지 막강한 배우들의 라인업,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 점까지. 개인적인 취향과 잘 맞는 선행 조건들이 탄탄하게 틀을 잡아준다.
미국의 시나리오 작가인 아론 소킨은 본인의 이름을 알린 영화 <어 퓨 굿 맨>을 시작으로 메가 히트를 기록한 드라마 <웨스트 윙>과 <뉴스룸>. 영화 <소셜 네트워크>, <머니볼>, <스티브 잡스> 최신작인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소 7>까지 정말 커리어에 오점이 없다시피 할 만큼 좋은 작품들을 많이 써낸 스토리텔러이다. 최근에는 각본을 너머 직접 연출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데,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그의 두 번째 연출작임이 무색할만큼 높은 완성도를 보이며 아카데미 노미네이트에 오르기도 하였다.
<머니볼>은 아론 소킨이 각본을 맡은 작품 중 두 번째로 관람한 작품이다. 세 번째 작품인 <뉴스룸>을 보기 전까지 사실 아론 소킨이라는 이름을 알지는 못했다. 그저 새롭게 나온 스포츠 영화라기에 나오는 배우들의 면면이 좋기에 응당 보게된 영화랄까. 이 영화가 개봉한 시점의 나는 미성년이었으니 그 때는 내가 각본가를 따져가며 영화를 보는 사람이 될 줄을 몰랐다.
여튼 쨋든 하튼 무튼, 영화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이 영화는 오클랜트 에슬레틱스 구단의 단장인 빌리 빈과 경제학을 전공한 사회 초년생 피터와 함께 '머니 볼'이라는 이론을 통해 팀의 부흥을 이끌어내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머니 볼 이론이란 수치와 통계를 통해 단순히 스타성이 있고 타율이 높은 타자, 방어율이 좋은 투수가 아닌 팀에게 승리를 가져다 줄 알짜배기 선수를 영입 해 팀을 승리로 이끌어내는 이론이다. 글로만 보면 이 이론이 매우 당연하고 상식적으로 느껴지지만 당시의 야구계는 머니볼을 쉽게 받아드리기 힘든 구조였다.
영화의 배경인 2002년에는 스포츠에서 수치가 가지는 힘이 지금처럼 높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투구의 폼, 타격의 폼 그리고 예쁜 엉덩이와 잘생긴 얼굴과 같은 스포츠의 본질인 점수를 내고 이기는 것 이외에 선수를 가르는 기준이 많이 적용되던 시절이다. 머니볼 이론이 추구하는 것은 가성비다. 단순한 타율이 아닌 출루율을 보고 삼진의 갯수가 아닌 피실점을 보며 리그 안에서 저평가된 선수들을 찾아낸다. 심지어는 한 명의 스타의 빈자리를 세 명의 무명 선수로 채울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피터와 빌리는 구단 내부는 물론이거니와 감독에게도 무시를 당한다.
영화의 줄거리를 다 읊을 수는 없지만 우여곡절을 겪으며 그들이 주장한 머니볼 이론은 점점 성과를 낸다. 빌리는 단순히 선수들을 사고 파는 역할을 너머 그들을 독려하고 동기부여를 해주는 단장이 되고 피터는 초짜로 시작해 하나씩 야구 판이 굴러가는 순리를 배워나간다. 이 둘은 매우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이는 서로의 단점을 보안해주는 도구가 되어준다. 이론에 강하지만 현실에서는 소심한 피터는 데이터를 통해 빌리에게 이야이를 하고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는 빌리는 그의 이론을 적극 실행에 옮겨준다. 영화 내에서 몇 번 그 둘의 성격이 드러나는 장면이 있는데, 피터의 첫 출근 날 스카우터들과의 회의 장면은 이 둘의 차이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화는 이런 모습을 담담하게 그리고 그 위에 아론 소킨의 유려한 대본이 입체감을 더한다. '그냥 쇼를 즐겨'라고 말하는 이 영화의 ost인 "the show"를 빌리의 딸이 부르는 장면처럼 이 모든 순간들은 덤덤한 색채 안에 생동감 있는 이야기로 흐른다. 실패한 선수였던, 해고 위험에 시달리는 단장이 된 빌리와 어느곳에서도 인정받지 못한 이론을 펼치던 피터는 결국 그들의 목표를 횔씬 상회하는 성과를 일궈낸다.
2002시즌의 성과로 인해 빌리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새 단장직을 제의 받는다. 재미있는 건 여기서 나오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구단주는 훗날 리버풀 FC의 구단주가 되기도 하는 팬웨이 스포츠 그룹의 존 핸리라는 것. 그와의 미팅을 마치고 돌아온 빌리에게 피터는 하나의 영상을 통해 메세지를 전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인 이 씬에 대해서는 아래 영상으로 그 설명을 대체하려 한다. 아래 장면 하나만으로도 내가 아론 소킨을 좋아하는 이유는 충분히 설명 될 것이라 믿는다.
이 영화가 하려던 이야기는 아마 단순히 이 장면 하나의 이야기만은 아니겠지만. 이 장면을 볼 때면 나 또한 언젠가 지난날 보다 한 발 앞으로 나가기 위한 시도를 하는 사이 나도 모르게 담장을 넘기는 홈 런을 기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매번 깊은 위로를 받는다.
대부분의 스포츠가 그러하지만 야구 또한 좋은 선수를 가려내는 기준점이 우리의 생각보다 괭장히 낮은 편이다. 흔히 3할이라 부르는 기준점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자면 10번 중 7번 즉 절반 이상을 실패하는 선수들인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하자니 만화 H2가 생각나는데, 단독 리뷰를 위해 고이 접어두도록 하자. 스케이트 보더들의 영상에서 하나의 멋진 묘기를 담기 위해서는 수없이 실패하는 영상들을 버려야 함 또한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축구에서도 경기 당 하나의 골을 넣는 선수는 0.00001%도 되지 않는다. 인간이 하는 모든 것에는 실수가 있고 실패가 존재한다. 하지만 실패가 계속된다는 건 단순히 실패위에 똑같은 실패가 축적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실패를 통해 우리는 내성이 생기고 강해지며 때로는 전보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으리란 용기를 얻게 되는 것일지도.
빌리는 결국 오클랜드에 남느다. 그가 펼친 머니볼 이론을 차용한 보스턴 레드삭스는 밤비노의 저주를 깨트리며 월드 시리즈 위너가 된다. 빌리는 2루를 향해 전지하려다 넘어졌을지 모르지만 사실 그의 타격은 팬스를 너머 미국 야구계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supybysup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