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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혜 May 23. 2024

(5) 어른이 되어가다

학교 교장 선생님의 추천으로 무역회사에 취업했지만, 적응하기 어려웠다. 2년간 00 은행 전화 교환 아르바이트를 하고, 공무원을 퇴직하시는 분들이 거쳐 간다는 세우회에 임원 비서로 취업했다. 비서다운 옷을 입을 수 없어 회사 유니폼을 요청했는데 들어주셨다. 이런 사례는 없었다고 했다.

비서 일은 나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재빠른 상황판단, 웃으면서 사람을 대하는 것,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하도록 차 대접하는 것부터 가끔 피곤해하시는 이사님께 간식도 챙겨 드리고, 새로운 Tea를 구매해서 드셔 보시라고 권하기도 했다.

내가 몸이 아팠던 날, 이사님은 나에게 물으셨다.

“정 양아, 괜찮나? 힘들어 보이는데.”

“네. 점심시간에 약 먹고 잠을 조금 자면 괜찮을 것 같아요.”

손님들과 식사를 하고 들어오시던 이사님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시면서 나를 크게 부르셨다.

“정 양아, 정 양아. 밥을 못 먹었지? 내가 맛있는 초밥 사 왔다. 이거 먹고 약 먹어라.”     


  월급날만 되면 잠을 편히 잘 수 없었다. 꿈속에서 내가 번 돈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사고, 자유롭게 놀러 다니기도 했다. 그러다 잠에서 깨면 숨이 막혔다. 가슴에 화살이 꽂힌 것처럼 저리기도 했다. 월급을 받게 되면서 엄마가 나에게 하는 이야기는 전과 달라졌다.

“월급은 엄마한테 다 보내. 내가 매달 용돈을 줄 테니까.”

“너 월급으로 받은 게 이게 다야? 보너스나 다른 돈을 숨겨 놓은 건 없어? 아빠도 늘 다 주지 않던데.”

엄마는 나에게 30만 원의 용돈을 쥐어 주었다.

교통비와 점심값으로는 턱없이 부족했기에, 점심을 신라면으로 때우는 경우가 빈번했다. 라면을 좋아하는 나이였지만, 매일 먹으니 속이 편하지 않았다. 가끔 배도 아프고, 탈도 났다. 한 번은 집에 가는 건널목 앞에서 갑자기 위경련이 나는 것처럼 배가 아파서 10여 분을 쭈그리고 앉아 나아지길 기다렸던 적도 있었다.     

  ‘나는 직장생활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는데. 엄마가 힘들어 보여서 힘이 되고 싶었던 건데. 엄마를 위해 이런 선택을 한 나에게 엄마는 왜 이렇게 하지?’

내가 전부터 배우고 싶은 기독교 선교단체 교육프로그램이 생각났고, 거기에 가고 싶은 마음이 커져갔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프로그램이었기에 엄마에게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가장 먼저 회사를 그만둬야 하니까.

‘내가 여기에 간다고 하면 엄마는 뭐라고 할까? 합격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우선 면접이라도 보자. 결과를 보고 그때 생각하자.’

재수, 삼수도 많다고 하는 그 프로그램을 나는 한 번에 합격했다.     

  나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엄마는 무섭게 소리를 쳤다. 화가 많이 나서 그랬을까? 엄마는 앉아서 이야기하지 못했다. 단칸방 한가운데에 서서 발을 쾅쾅 내디뎠다.

“이제 우리 가족은 어떻게 할 거야? 뭐 먹고 살 건데? 네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어?”

그리곤 엄마는 며칠 동안 집을 들어오지 않았다.

3일 후, 엄마는 터벅터벅 집으로 들어왔다. 눈에도 힘이 없었고, 목소리에도 힘이 없었다.

엄마가 말했다.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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