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디자인 단가는 얼마일까?
"페이지당 OO"
북디자인 일을 받을 때 디자인비 계산이 쉽도록 표지는 얼마, 내지는 얼마 얘기하면서 최종 디자인비를 추려나간다. 인형 눈 붙이는 것도 아니고 개당 얼마로 디자인비를 정하는 것이 크리에이티브와 먼 이야기 같아 말하면서도 쑥스럽다. 하지만 막상 전체 프로젝트 비용으로 한 번에 얘기하면 무조건 크게 받아들여지기도 해서 차라리 조목조목 리스트를 곁들여 말하는 게 디자인비를 조율하기 수월하다.
먼저 페이지 단가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원고를 전부 파악한다는 전제조건을 붙여야 한다.
간혹 전체 원고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견적이 오고 가다 가격이 결정되면 다시 재조정하기란 쉽지 않다. 뒷부분에서 얘기치 못하게 엄청나게 고된 일이 있다거나 수정이 너무 여러 번 있다면 처음 생각했던 페이지 수 만으로는 가격이 안 나온다. 하지만 이런 경우를 단가 책정에 포함시키려면 원고를 다 봐야 하는데 일을 시작도 안 하면서 원고만 읽을 수도 없고 원고가 아직 준비가 안된 경우도 있어 도박하는 심정으로 견적을 낸다. 만약 가격에 합당하지 않은 일이 될 경우 결과물은 결과물대로 마음에 안 들고, 고생은 많이 하고, 수익은 없으며 그만큼 시간을 뺏겨 손해가 난다. 그래서 원고를 읽어야만 합당한 견적이 나온다.
그러나 원고를 파악하는 일도 "일"이라 시간이 들어간다. 책의 주제를 만나는 순간, 첫 회의부터 이미 아이디어는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견적이 너무 높거나 문제가 생겨 계약하지 못하게 되면 이것도 이것 나름의 손해가 된다. 역시 칼자루는 일을 주는 사람에게 있다고 해야 할까.
어느 정도 경력이 생겨 견적을 내야 하는 위치가 되면 눈치껏 분위기를 읽어 크게 손해 나지 않는 범위로 비용을 책정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처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단가를 책정해서 말해야 할 때 느꼈던 밀고 당기는 그 팽팽한 긴장감은 지금의 경력이 되어서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조금 쿨하게 '안 하면 말고'라는 마음으로 대할 때도 있지만 반드시 일을 성사시켜야 하는 때도 있다. 스태프가 있는 회사의 대표로서 이제는 혼자가 아니니까. 그리고 누가 이 일을 대신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결국 쑥스러움을 뒤로하고 먼저 말을 꺼낸다.
"페이지당 얼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