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 극복' 편
나는 멘탈코치로서 슬럼프가 왜 발생하는지, 어떻게 극복되어야 하는지 관심이 많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 이름이 알려진 프로골프 선수들 9명을 대상으로, 슬럼프의 원인과 증상, 더 나아가 어떻게 극복했길래 이전 기량보다 극복 후 더 좋은 성적을 거두는었지를 밝히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었다.
슬럼프의 주된 원인으로 기술적, 신체적, 상황적 요인도 있었지만 인지·심리적으로 '자만심'과 '무리한 경기 전략'이 주원인으로 나타났다. 자만심은 과거의 영광에 의존하여 자신의 컨디션과 몸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제일 잘했을 때의 경기 운영전략을 무리하게 고수하면서 슬럼프를 유발하는 원인이었다.
슬럼프 극복에서는 '인정'과 '현실적인 목표 설정', 그리고 '성취감'이었다. 자신의 실력 저하를 인정하고 그 단계에서부터 점진적으로 목표를 달성해 나가며 성취감을 조금씩 경험한 것이 슬럼프를 성공적으로 탈출할 수 있었던 계기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멘탈 트레이닝 할 때도 이 원리를 적용하고 있다. 그래서 슬럼프를 극복하는 여러가지 방법 중 이 기조를 가지고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되는 부분은 슬럼프라고 얘기하는 선수들에게 내가 항상 우선적으로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왜 슬럼프라고 생각해?"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스스로 슬럼프라고 느끼는 기준과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멘탈코칭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객관적인 지표를 바탕으로 슬럼프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선수 스스로 슬럼프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경우도 많았다.
슬럼프라고 규정하는 것은 객관적 지표가 일정기간 저하되었는지 살펴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실력 저하를 누구보다 선수 스스로 잘 알고 있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선수 스스로 자각하지 못할 뿐, 실력은 그대로인데 선수의 목표가 높아진 사례들도 꽤 많았다는 것이다.
물론, 객관적인 지표가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최대한 이전보다 경기력 측면에서 실수가 얼마 정도 많아졌는지, 경기나 연습에서 두려움을 어떻게 느끼는지 등의 증상을 파악하고, 지속적으로 저하되고 있는지 등을 살펴보면서 슬럼프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앞서 '플래토' 편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문제해결에 어려움이 존재한다. 부정적인 정서는 이성적인 판단을 흐려서 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놓치게 된다. 멘탈 트레이닝에서도 나는 가이드만 제시할 뿐, 결정은 선수가 내리기 때문에 스스로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태가 필요하다.
그래서 멘탈 코칭에 앞서 슬럼프인 선수들에게 마음의 여유를 찾을 것을 권장한다. '슬럼프 걸린 것도 짜증 나는데 무슨 마음의 여유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마음의 여유는 슬럼프 작업에서 필수이다. 그래서 상담을 늦추는 한이 있어도 최선을 다해서 놀라고 한다.
가끔 불안해하며 "진짜 놀아도 돼요?" 물어본다. 운동 때문에 제약은 있지만 쉴 때 만큼은 운동생각 외에 몰입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라고 한다. 드물지만 나와 유대관계가 형성된 팀의 경우에는 멘탈 코치로서 코칭 스텝에게 선수의 개인 휴가를 제안하기도 한다. 이럴 때 나는 선수에게 무한 신뢰를 얻는다.
어떤 선수는 "샘, 저는 놀 줄 몰라요... 제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질문을 하는데 가끔 짠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의도적으로 그럴듯한 취미생활 꼭 해야 된다는 개념보다는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친한 친구와 수다를 떨거나, 낮잠을 자거나, TV를 보는 등 일상에서 휴식을 취하라고 얘기한다.
최대한 물리적으로 스트레스를 주는 곳에서 분리시켜 운동 외에 다른 일에 몰두하며 시간을 보내게 하는데, 잘할 필요도 없고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기 때문에 마음의 여유를 찾는 강력한 방법이다. 냉정하게 잠시 운동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그 실력 어디 가지 않는다.
마음의 여유를 찾은 뒤 문제를 면밀하게 파악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어느 시점부터 기량이 저하되었고, 주된 원인은 무엇인지 기술, 신체, 심리, 상황 및 환경 등 다각적인 관점에서 살펴본다. 여기서 선수들이 많이 힘들어한다. 그만큼 힘든 작업이며,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이때, 독자적으로 개발한 '슬럼프 분석 시트'를 사용한다. 원인과 해결 방법을 한눈에 파악하기 용이하다. 슬럼프 시 기술적 문제와 지표, 경기 운영전략, 심리적 반응과 기분, 주변 환경, 부상 여부와 체력 수준, 컨디션 등을 정량적으로 표시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시트는 '자기 보고식' 유형이다.
선수가 작성한 내용과 실제 지표를 가지고 서로 치열하게 토론을 진행하며, 임펙트가 적은 요인들을 소거해 나간다. 역시 가이드만 제시할 뿐, 슬럼프의 원인과 해결방법을 결정하는 일은 선수가 몫이다. 이후 선수의 현재 컨디션과 기량 수준을 정의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주안을 두는 점은 이전보다 목표는 낮추되 현재 자신의 컨디션과 기술 수준에 맞춰 문제 해결을 시작하는 점이다. 예로 실력을 1부터 10까지 했을 때, 본래 자신의 기량이 8, 현재가 5 정도로 판단이 되면, 1~3 정도 수준의 연습까지 할 필요는 없이 최소 4부터 문제 해결을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슬럼프 기간에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1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는데,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아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보다는 현재의 기량적 수준과 자주 발생하는 실수들을 분석하여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마지막으로 슬럼프에서 자주 발생하는 문제들의 우선수위를 설정하고 제일 개선하고 싶은 문제의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장점을 기반으로 해결 방향성과 최종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다. 물론 달성하고 싶은 목표 역시 정량적으로 설정해야 한다.
이와 같은 과정으로 해결책과 목표가 만들어졌으면 실천할 수 있는 세부 전략이 필요하다. 잘 설정한 계획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개인마다 다르지만 목표에 대한 자기 개발서를 종합해보면 '실천할 수 있는 계획'으로 귀결지을 수 있다. 이때, 참고할만한 기법이 있어 추천하고자 한다.
Veleay(2005)의 SMAART목표 설정
Specific
Measurable
Aggressive yet Achievable
Time-bound
Relevant
구체적인 목표(Specific Goal)
단순히 "슬럼프를 극복하자"와 같은 일반적인 목표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구체적인 목표는 타인이 정해주거나 막연하게 세운 목표보다 자기 효능감과 운동 수행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Lerner & Locke, 1995). 따라서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할지 명확한 방향성이 있어야 세부계획 역시 올바르게 설정할 수 있다.
측정 가능한 목표(Measurable Goal)
목표가 향상되고 있음을 모니터링하기 위해서는 측정 가능해야 한다. 시간, 속도, 정확도, 빈도 등을 측정할 수 있는 목표여야 한다(예:25일까지 매일 줄넘기 1,000개를 실시하여 몸 상태를 80%까지 끌어올린다). 여기에는 몸 상태 80%를 끌어올리기 위한 세부 계획(줄넘기 1,000개)에서 과학적인 근거가 필요하다.
선수가 이렇게 설정해도 나는 이렇게 물어본다.
"왜 1000개 하면 몸이 80% 올라가?"
여기에 선수 나름대로 근거를 가지고 결정하면 존중한다.
단순히 관습대로 설정했다면, 근거 있는 세부계획을 세우도록 유도한다.
도전적이며 성취 가능한 목표(Aggressive yet Achievable Goal)
세부계획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너무 쉬운 과제를 목표로 잡았다면 잠시 동기부여는 될지 모르지만 금방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또 한 지나치게 어려운 과제는 스스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좌절감과 불안을 높아지게 만든다. 따라서 선수 개인의 맞는 특성과 능력에 부합되며 뛰어넘을 수 있는 과제를 설정해야 한다.
적절한 목표(Relevant Goal)
선수는 동기가 유발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해야 하는데 누구를 위한 목표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팀 스포츠의 경우 팀의 목적과 자신의 목적에 대한 적절한 목표가 설정되어야 하며, 팀이나 타인을 위한 목표만을 계획해서는 안 되며,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 자신과 환경에 맞는 적정한 목표가 세워져야 한다.
시간을 정해둔 목표(Time-bound Goal)
앞서 측정 가능한 목표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목표가 마무리되는 기간이나 투입시간을 설정해두어야 한다. "기회비용"이라는 말이 있듯 어려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얼마만큼 투자할 것인지, 어느 기간 동안 달성할 것인지 설정해야 한다.
슬럼프 테스트 부록
아직 슬럼프을 측정하는 척도가 미비하여, 일본의 정신의학자 사이토 시게타가 제안한 체크 리스트를 운동상황에 맞게 수정하여 활용하고 있다. 슬럼프 여부도 중요하지만 yes로 체크한 문항들이 어떤 유형으로 그루핑(Grouping) 되는지 파악하는 것도 슬럼프의 유형을 세밀하게 살펴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다.
'슬럼프 테스트'는 자신의 슬럼프 단계를 파악해 보기 위해 사이토 게이타의 슬럼프 체크리스트를 기반으로 수행에 맞춰 제작해봤다(맨 아래 링크). 문항이 25문항이니 다소 귀찮을 수 있다는 점은 감안해주길... 아래 사이토 시게타가 제안한 '슬럼프 체크리스트'도 참고해보면 좋다.
1. 슬럼프 체크 리스트
출처: 齊藤茂太(2004). 슬럼프 아웃. 길벗
손 하나 까딱하기 싫을 정도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운동이나 운동능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쉽게 기가 꺾인다.
하찮은 일에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낸다.
자꾸 마음이 초조해지고 걱정이 된다.
긴장감이 없고 한없이 나른해진다.
몸이 일주일 이상 찌뿌둥하다.
자주 패배감에 사로잡힌다.
시합이나 성적에 대해 생각하느라 잠들기 전에도 중압감을 느낀다.
사람들을 되도록 피하고 싶다.
자꾸 다른 사람을 탓하게 된다.
잘 나가는 사람들 얘기를 들을 때면 그 자리를 피하고 싶다.
운동을 시작하려고 하면 자꾸 딴생각을 한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눈 뜨기 싫다는 생각을 한다.
불평불만이 많아졌다.
이 세상에 나 혼자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쉽게 하던 동작들인데 요즘에는 힘들게 느껴진다.
입맛이 없고 식욕이 많이 떨어진다.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사람이 없다.
마음이 약해져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
매사에 소극적이 되었다.
경쟁심이 없어졌다.
집중이 잘 안 되고 연습을 중도에 자꾸 포기한다.
재미를 느끼는 일이 하나도 없다.
나는 지금 있는 곳에 필요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
0 ~ 7개 - 현재 슬럼프를 겪고 있지 않은 상태
8 ~ 12개 -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지만 가끔 스스로에 대한 관찰이 필요한 상태
13 ~ 20개 - 단기 슬럼프에서 장기 슬럼프로 넘어갈 위험이 있고,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는 상태
21 ~ 25개 - 장기 슬럼프이며 즉각적으로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한 상태
2. 슬럼프 검사
https://smore.im/quiz/VEilZkJq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