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먼저, 질문을 하나 하자면, '멘탈 트레이닝을 하는 운동선수'라는 표현에 거부감이 드는가? 거부감은 커녕 '당연히 해야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럼 '스포츠 심리상담을 받는 운동선수'는 어떤가? 어감상 뭔가 운동선수로서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혹시 일반적인 시각에서 멘탈 트레이닝과 스포츠 심리상담이 다르게 느껴지는지 질문을 던져본다.
두 단어는 동일한 개념이다. 어감이 주는 차이도 있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실제 스포츠 현장에서는 서로 별개의 개념이라 생각하는 문화가 강했다. 나는 이때 대학원생 신분으로 선배들이나 지도 교수님을 보조하러 현장에 나가보면 선수들에게 멘탈 트레이닝은 반드시 경기력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식되면서도 상담이나 교육을 받는다 하면 거부감을 드러내는 문화였다.
운동선수들이 받는 스포츠 심리상담은 일반적으로 임상 심리학에서 접근하는 상담과는 달리, 기량 향상을 위한 멘탈 트레이닝을 의미한다. 즉, 상담을 통해 심리기술훈련을 진행하기 때문에 수행적 측면에서 스포츠 과학의 일부로 활용되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했던, 그리고 변화되어 온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지금은 멘탈코치로서 활동하고 있지만 어렸을 때 운동을 했었다. 선수 시절 멘탈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늘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많았고, 자신감을 운으로 생각하는 선수였다. 어떤 날은 '왠지 잘할 것 같아!', 어떤 날은 '왠지 못 할 것 같아...' 이런 생각을 반복하며 운동생활을 마무리했다. 지금은 어떤 원리에 의해 자신감이 형성되는지 알게 되었지만, 그 당시 경기 전날밤이면 평소에 기독교인 내가 하나님과 더불어 부처님, 알라신, 동자신을 찾을 정도였으니 말 다한 거지 뭐.
내가 운동할 때까지도 멘탈의 중요성은 그리 부각되지 않았다. 참고로 80년대 생이다. 단지, 깡다구와 투지라는 두 단어가 내가 알고 있는 멘탈 트레이닝의 전부였다. 멘탈 트레이닝의 근본이 되는 스포츠 심리학이라는 학문은 당시에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현장에서는 존재조차 몰랐던 것이 사실이다. 일상에서 심리적인 문제로 정신과 상담을 받는다는 것을 철저하게 숨기는 문화였으니 만약에 스포츠 심리상담의 존재를 알았어도 시대 배경 상 상담을 받으러 가지는 않았을 것 같다.
운동선수로서 심리적 문제는 무조건 스스로 극복해야 했다. "선생님, 자신감이 없습니다" 하면 자신감이 생길 때까지 맞을 것 같았다. 비슷한 의미로라도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 번은 부모님께 심리적 문제를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운동선수가 악으로 깡으로 이겨내야지"라는 격려?를 듣는 문화였다. 나뿐만이 아니라 내가 속해있는 팀과 지역, 종목을 넘어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겪는 문화였다. 정신력은 내가 선수 시절 늘 들었던 얘기 중 하나이지만, 어떻게 정신력이 좋아지는지는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다.
하루는 코치 선생님께서 선수 전체를 가르키며, "너네는 왜 자신감이 없냐, 그렇게 깡이 없어??" 그러시면서 체력 운동을 시키셨다. 도대체 자신감과 깡은 무슨 상관이며, 자신감이 없는데 체력 운동을 시킨다는 생각에 반감과 반항심이 가득했었다. 점차 체력운동이 체벌처럼 느껴져 체력의 중요성을 잘 알면서도 운동선수 생활 내내 기피했었다. 지금 와서 추측하건데, 코치 선생님께서는 체력이 강해지면 깡과 자신감이 동시에 향상될 것이라는 생각이 아니셨을까...
지금은 현장에서 심리적 문제를 심리 훈련으로 대응하는 문화로 바껴가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물론, 지금도 모든 선수들이 심리적 문제를 전문가에게 도움받지는 않지만 과거에 기술과 신체를 단련하는 프로그램이 주를 이루던 스포츠 현장에서 멘탈 트레이닝의 활용성을 논의하고 적용한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정책적인 측면에서도 심리 지원을 위해 예산을 편성하여 일부 운동선수들이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것은 현재 멘탈 트레이닝의 보편성을 간접적으로 대변한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들이 멘탈 트레이닝의 효과를 언론에 언급하면서 크게는 정책의 변화, 적게는 선수와 팀 관계자 및 학부모님들까지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국가적 지원과 더불어 필요에 따라 프로와 국가대표 선수들이 개인 멘탈 코치를 사비로 영입하여 국내 대회는 물론, 국제대회에도 코칭 스텝의 일원으로 함께 시합 일정을 소화하기도 한다. 각 협회에서는 지도자를 양성하는 과정에 스포츠 심리학 과목을 필수 항목으로 지정하여 다각적인 측면에서 전문성 향상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프로팀을 비롯하여 아마추어 팀에서도 강연 초청이나 1년 단위 계약으로 멘탈 트레이너를 고용하는 사례들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스포츠심리학회에서도 현장성과 전문성을 갖춘 멘탈 트레이너를 양성하기 위해 학술적, 제도적, 경제적, 효율적 노력 등을 지속하고 있다. '스포츠 심리상담사'라는 자격증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는 상황이 우려되는 부분은 많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관심으로 보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스포츠 심리학회'에서 발급하는 자격증이 제일 공신력있는 자격증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변화로 선수들도 심리상담을 받는 것에 거부감이 다소 줄어든 모양새이다. 이제는 "나 심리상담 받어" 혹은 " 내 멘탈코치야"라는 말을 당당하게 동료들에게 한다. 관리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나 보다. 이처럼 현장에서 멘탈 트레이닝의 활용도가 증가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앞으로도 선수들이 심리적 문제를 혼자 끙끙 앓기보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더욱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심리적 문제는 체력훈련이 아닌 자신감을 키우기 위한 멘탈훈련으로!! 트라우마였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