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종력이 풀파워로 장전되어 있는 10살 11살 아이들 수업은 정말 기가 쪽쪽 빨린다. 1시간은 수업하고 1시간은 아이들이 글을 쓰거나 토론 준비를 하는데 애들이 글을 쓰는 동안 그 앞에서 나는 초점 나간 눈으로 파스스 스러져 있을 뿐이다. 이 때 서둘러 기를 충전하지 않으면 다음 수업을 이어갈 수 없다.
권위라곤 1도 없는 초짜 교사인건 귀신같이 아는 이런 아이들은 수업 흐름을 미친듯이 끊어먹는다. 여기서부터 멘탈을 단단히 해 둘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하고나 대화를 할 때도 말이 끊긴 순간 바로 머릿속이 하얘지는 연약한 말주변을 가졌다. 말이 끊겼을 때 '잠깐만 내 말 끝까지 들어줘' 라고 양해를 구하고 하고싶은 말을 마무리 할 유창함 따위가 아직 내겐 없다. 그래도 두번 세번 같은 내용으로 수업하면 좀 나아지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차려보면 미친듯이 끼어드는 아이들의 말을 하나하나 다 받아주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다 보면 수업 진도는 점점 밀린다. 참고로 애들은 정말 친절한 어른보다 똥방구 같은 개소리도 개소리로 다 받아주는 사람한테 더 열광한다는 걸 요즘 깨닫고 있다. 수업이 재밌어서 열광하는 게 아니라는 게 비극이긴 하다.
그래도 아주 간혹가다 보람 있는 순간이 생기곤 한다. 아이들이 장난치려고 아무말이나 던진 걸 의미 있게 받아내는 순간의 짜릿함이다.
형사 재판 모의 재판을 하기 전 원고 피고 변호사 검사 역할에 대해 설명했을 때다.
'원고가 살해당했으면 어떡해요~!' '원고가 죽었으니까 검사가 대신 정의의 이름으로 피고를 재판에 세울 수 있지!'
'피고가 켁 자살하면 어떡해요~!' '그럼 재판이 진행되지 않아. 벌 줄 사람이 없잖아?'
'피고인은 왜 피고인이에요 범인이라고 하면 되지. 맨날 칼 찌르고 다녀서 피가 고인 사람이라 피고인인가?(이 발상 좀 신박하다고 생각했다)' '피고인은 검사한테 고소 당한 사람이라는 뜻이야. 재판을 했는데 아무 죄가 없는 사람일수도 있잖아. 검사도 사람인지라 실수로 범인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그러니까 아무리 확실해도 함부로 범인이라고 말하면 안돼. '
사실 이렇게 물흐르듯 대답해주진 않았다 약간의 뚝딱임이 가미되었음을 감안하시고.. 아무튼 심드렁하게 자기가 뱉은 아무말이 의미 있고 중요한 질문 대접을 받으면 순간 애들 눈이 반짝거린다. 자세도 고쳐앉고 수업 집중도가 올라간다. 이럴 때를 놓치지 말고 다음 수업 내용으로 잘 연결하면 그날 수업은 성공이다.
생각보다 의미 없는 똥방구 얘기로 수업을 흐리려는 애들은 소수다. 문제는 내 경험치도 아직 짧아서 모든 말을 이렇게 받아 칠 수 없다는 거다. 애들이 던지는 아무말이 아무말이 아니었음을 알아보는 혜안을 키우는 게 중요한 듯 싶다.
아직은 선생님 말 끝까지 듣고 나중에 질문하라고 하고 수업을 이어갈 자신도 없을 뿐더러 그렇게 하고 싶진 않다. 애들 똥방구 얘기까지 여유롭게 받아 줄 수 있을 정도의 그릇이 되고 싶다. 어느정도는 차단시키는 게 필요하긴 할 것이다. 뭐든지 적당히가 좋은데 적당히를 가늠하는 게 또 역량이지 싶다. 위와 같은 상황이 어쩌다 얻어걸리는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펼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치만 아직 매우 요원함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