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힙하다'라는 말이 유행이 된 지금, 나에게 '힙'한 사람의 기준을 말하라면 자신의 취향이 뚜렷한 사람이라 할 것이다. 자신이 무얼 좋아하는 지, 무슨 맛을 좋아하는 지 아는 사람들이 멋있다. 취향이 주관이 되고 당당함이 되는 것이라고 까지 믿게 되었다. 나는 이렇다 할 취향이 없다. 요즘따라 기죽을 일이 많아서 그런지 우울할 때, 내 기분이 나아지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놓을 시간이 있을 때 부지런하지 않았던 나에 대해 다시 우울해지곤 한다. 눈치를 너무 많이 보는 탓에 음식을 고를 때도 물건을 살 때도 무난한 것, 실패하지 않는 것 위주로 사 왔다. 어쩌다 내가 취향이 바뀌었나? 싶은 선택을 하고 싶을 때가 있긴 있다. 그럴 땐 여지없이 그것은 유행템이다. 왜 이것이 예뻐보이지? 하면 남이 그런 것을 많이 들고 다니는 걸 봐 왔기 때문이다.
요즈음에는 특히나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나의 기준이 없고 나의 선택에 대해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물론 몇몇 사람에겐 내가 굉장히 주관이 강해 보일 것이다. 그것은 적어도 내가 무지하게 싫어하는 것 정도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싫어하는 것을 소거하는 방식의 선택은 최선과 차선까지 가려내지 못한다. 결국 내가 싫어하는 걸 제외 하곤 도저히 무엇을 골라야 할 지 내적갈등에 휩싸인 채 무난한 걸 고른다. 고르면서도 확신이 없다. 오늘도 길거리에서 3천원짜리 그립톡을 사는 데 한참이 걸리고 말았다. 이게 뭐라고 오늘따라 이 사실에 괜히 더 울적해지고 말았다. 그립톡 하나 뭘 골라야 할 지 몰라서 망설이는 내 자신이 싫었다. 나에 대한 확신이 이렇게도 없나 싶고 결국 남들이 많이 사는 것을 선택한 것에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남들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이 되었을꼬..
부지런히 실패해 보아야 한다. 실패는 취향을 알아가는 데 치르는 대가이다. 나는 사 놓고 잘 쓰지 않으면 그저 과거의 나를 질책하는 식으로 나를 소모시켰다. 친구들과 태국여행을 가서도 낯선 고수 향과 똠양국을 먹는 것을 경험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내 시간과 돈을 낭비할지도 모르는 것이라고만 생각해 맥도날드를 전전하지 않았나.. 이제라도 나의 취향에 대해 부지런히 알아보는 데 집중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