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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이저 Nov 15. 2021

21.11.15

에너제틱하고 수업 흐름을 엄청 끊는 맥커터보다 더 힘든 애들은 말이 없는 얌전한 아이들이다. 이런 애들 데리고 수업하는 건 물을 잔뜩 먹은 한포대 쌀을 이고 가는 기분이다. 수업 흐름을 끊는 아이들 수업에선 목이 아프고 반응이 없는 애들 수업에선 목소리가 떨린다. 빡치는 수업vs긴장되는 수업 중에 택하라면 후자일 것 같지만 단연 전자이다. 전자는 빡침을 빌미로 수업을 잠깐 쉬어가도 되고 혼내거나 일장연설을 하면서 수업 시간을 때울 수라도 있는데(게다가 시간이 겁나 빨리감) 후자의 상황은 수업을 중단하고 싶지만 중단해서는 안되고 온몸은 떨려오고 식은땀이 나고 도망가고 싶은 그야말로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을 느끼게 된다(게다가 시간이 넘 안감). 이런 후자의 상황은 5-6학년 수업에서 처음 느껴봤다. 3-4학년 수업과 5-6학년 수업이 뭐가 그렇게 다른가 싶었는데 1년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선생님에 대한 인정욕구는 급감하고 다들 너무 얌전해져 있었다. 한국에서 사회화 된다는 것은 나대면 안되고 튀면 안된다는 걸 내재화 하는 과정인 걸까. 대학원 세미나 수업에서는 이런 무거운 침묵의 시간이 더 길어진다. 안되겠다 싶은 교수님이 계속 질문을 던지고, 급기야 원생들 이름 한명한명 호명을 하고, 지목을 하고 제발 뭐라도 얘기하라고 간절한 눈빛을 발사하신다. 내 수준이 드러날까 두려워 하면서 말을 함구하는 동안 난감해 하실 교수님께 연민의 감정이 들면서 내 눈빛을 피하는 아이들의 심정도 동시에 느낀다. 이것 참, 서로 불편하고 난감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는 여타 서구권처럼 수업시간에 토론하고 질문하는 분위기를 만드려고 나름 애썼던 것 같은데.. 별 소득이 없어 뵌다. 나도 참 수업시간에 나대기 좋아하던 아이였는데 철이 들수록 수업시간엔 지목하지 않으면 말을 안하는 어른으로 컸다.  심지어 내가 일하는 학원에서는 7살때부터 토론 수업을 받고 자라도 5-6학년만 되면 말이 없어지는 애들이 대다수다(물론 모두 다 이렇다는 건 아니지만..). 교육 방식의 문제도 있겠지만 눈치를 오지게 볼 수 밖에 없는 사회의 특성 같다. 엄청난 인구밀도, 과열된 경쟁, 능력주의 등등이 합쳐진 산물 아니겠는가.. 

이렇게 말없는 학생들 앞에서도 역시 교수님들은 어떻게든 의미 있는 논의를 이끌어 주신다. 수업을 들으며 항상 생각한다.. 교수님은 왜 저렇게 수업을 잘하실까...물론 내가 아직 대졸 쩌리이고 교수님은 박사따고도 몇십년이 지난 전공 고인물이시겠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내가 가르치는 애들은 유졸이고 나는 대졸이므로 비슷한 격차 아닌가? 그런데도 수업하는 건 너무 어렵고 애들의 질문도 무섭고.. 아 물론 경력이 넘사이긴 하지만ㅎㅎ 내가 자꾸 첫 술에 넘 배부르려 한다.  

이렇게 오늘 수업시간에 이런 잡생각을 해 보았다.. 낼 모레 또 어떻게 수업을 하나 걱정하며 또 하루가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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