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이저 Nov 08. 2021

21.11.08

요즘 일기에 자꾸 교훈을 넣으려는 일드스러운 강박이 생긴 것 같아 다시 힘을 빼고 글을 써보기로 한다... 그것도 그렇고 사실 요새 내 일상이 암흑기이기 때문에 그런 뽕차는 글은 더 이상 쓸 수가 없다. 무려 대학원 레포트제출&발표일이 도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끝없는 자기반성과 자기성찰, 자기혐오의 시기이다. 매번 학기말에 이런 고통을 겪지만 이번 학기는 무려 애들을 가르치는 일까지 하게 돼서 더 고통이 가중됐다.  내가 가르치는 애들은 성실하게 책을 읽고 수업을 듣고 글을 쓴다. 정말 아름다운 인풋과 아웃풋의 비례관계가 아닐 수 없다. 그에 비해 나는..?ㅠ 인풋 없이 아웃풋을 내려는 요령만 착실하게 대학 4년, 대학원 1년동안 길러온 것이다.. 게다가 그 요령도 이제 점점 수명을 다해 간다. 이렇게 자꾸 요령으로 돌려막기를 하다보면 나중에 결국 거대한 눈덩이가 돼 나를 덮칠것이란 걸 알지만.. 더보기

-

나는 리더포비아를 갖고 있는 동시에 자기주도성이 굉장히 강하다. 이 모순된 자아로 인해 자주 힘들곤 한다. 친구 한명만 더 있어도 결정권을 친구에게 넘긴다. 3명 이상이 모여서 여행을 갈 때에도 목적지나 어디든 나는 항상 따라가는 편이었다. 내가 결정한 것이 다른 이에게 미칠 영향을 극도로 두려워 했다. 내가 가자고 했던 식당이나 장소가 조금만 별로여도 끝없는 죄책감에 쌓이고 끝없이 눈치를 보곤 한다(이걸 인지하고 난 뒤론 조금 괜찮아졌지만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이 하라는 대로, 남이 하던대로 하는 건 왠지 모르게 하기 싫어하는 반골기질도 갖고 있다. 중학교때부터 학교에 가기 싫으면 종종 빠지기도 했고, 고등학교땐 수능 100일전부터 걍 안갔다;  대학교에 들어와서도 전공 교수님한테 찍혀서 교수님방에 불려간 적도 있고(솔직히 이건 교수님이 꼰대였다고 아직도 생각중) , 남들이 문과라면 필수로 하라던 경영,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았고 인문학을 공부했고 할튼 좀 내맘대로 살았다. 왜 그렇게 하기를 선택했어? 라고 물어보면 항상 할말이 없었다. 뭔가 합리적이고 깊은 숙고를 통해 결론 내린 것이라기보단 나의 본능, 직관대로 살았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대로 하지 않으면 뭔가 그럴듯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좀 이상했다. 항상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내긴 했지만 그건 걍 사후적인 설명이었고 대부분의 나의 선택은 그저 그걸 해야 할 것만 같은 나의 직감대로 한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선택에 후회를 해 본 적이 없다. 그렇게 큰 일이 난 적도 없고 결과가 안좋을지언정 해보고 싶은 걸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때문이리라. 

-

내 선택에 대해 나는 분명 후회하지 않지만 남들을 속시원하게 납득시켜 본 적이 없어서일까. 나 혼자 여행을 가고 나만의 길을 개척하는 데에는 주저함이 없지만 남들과 함께 하는 것에는 늘 결정권을 남에게 미룬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모순적인 내 성격때문에 남한테 결정권을 미뤄놓고서 남의 결정이 납득이 되지 않을 때에는 너무나 괴로워하곤 한다는 것이다(게다가 이럴 때 내가 맞다는 확신을 설득시킬 자신이 없어서 괴로워하고 끝남). 그래서 학부시절 팀플이 많은 수업은 극도로 피했고 레포트를 쓰는 수업을 전전했다. 레포트를 쓰는 시간은 너무 괴롭지만 다른 사람들이랑 의견충돌을 해결하는 과정보단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직력이 중요한 일반 기업보다 뭔가 독립적인 일을 하기를 바랬고 그래서 어쩌다보니 애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된 것 같다. 문제는 여기서 다시 모순이 폭발한다는 거시다..  독립적으로 대학원에서 연구를 하고 애들을 가르치는 건 자기주도성은 발휘가 되지만 이거야말로 리더포비아를 가진 사람이 하면 안되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팀플을 하기 싫어서 학부시절에 발표도 잘 안 했더니 웬걸 대학원 수업도 발표, 내가 애들 앞에서 가르치는것도 발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문송이가 살아남으려면 입을 터는 수밖에 없다. 

-

그래도 학부시절 팀플보단 혼자 레포트 쓰는 과제를 많이 해봤으니 교안이나 대학원 레포트는 수월하게 쓰지 않을까..했으나 보시다시피 고통의 연속이다. 인생은 그냥 피하고 싶은 걸 피하다 피하다 나중에 처맞는 과정이 아닐까ㅠ. 

매거진의 이전글 21.11.0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