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보충수업
급증하는 코로나 확진자수로 인해 자가격리 된 아이들도 많아져 지난주부터 아예 온라인 보강 담당 교사가 되었다. 한동안 수업을 안한 채 책읽고 문제만 만들었더니 편했지만 지루하고 쳇바퀴 같은 나날이었다. 오랜만에 수업을 맡게 되니 조금 설레기도 했다.
줌에 아이들이 하나 둘 씩 입장했다. 정규수업이 아닌 보강 수업이라 매번 모르는 아이들이 들어오기 마련인데, 몇개월 내내 보강 수업만 했더니 낯익은 아이들도 늘어난다. 이번에 들어온 아이들은 내가 태어나서 난생 처음 '수업'이라는 걸 했을 때 만났던 아이들이었다. 반갑기도 하고, 겨우 4개월 남짓 지났지만 그때보다는 여유라는 것도 생기고 힘을 좀 뺀 상태에서 수업을 하게 된 내가 스스로 대견해 가슴이 웅장해지던 참이었다. 수업 중 개구쟁이 남자애가 자꾸 나를 소환해 주석달기 기능을 풀어달라 졸랐다. 줌 주석달기 기능이라 함은 다같이 화면에다가 낙서할 수 있는 기능을 말한다. 처음엔 이기능이 있는줄도 모르고 그냥 수업했다가 아이들이 피피티 오만데에다가 낙서를 하고 장난을 쳐대서 아수라장이 됐더랬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때의 내가 아니란다 얘들아.. 물론 아직도 쪼렙이지만 조금은 진화한 쪼렙이란다. 같은 쪼렙이어도 둘은 매우 다르다. 후자는 적어도 '아이들 앞에선' 신입인 걸 하루만에 들키진 않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물론 이것도 아주 알량한 여유이긴 하지만 무와 유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라 생각한다)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을 했다. 아이가 징징대기 시작한다.
'아 답답해 죽겠어요~~ 이거 하나 못해줘요? 이 부탁도 하나 못들어주냐구요!!'
'ㅇㅇ아~ 선생님이 니말을 들어야 되니 네가 선생님 말을 들어야 하니.'
뾰루퉁해진 아이를 봐도 이젠 쩔쩔매지 않는다. '대답해야지~' 한 술 더 떠 라떼시절 듣던선생님 멘트를 줄줄 읊는다.
'네'라고 대답할 때까지 가만히 눈을 응시한다. 한풀 기가 꺾인 아이가 조용히 문제를 푼다. 이정도면 오은영박사님 다된거 아닌가 싶다.
그리고 (내생각에)무난하게 토론수업을 이어갔다. 아까 그 개구쟁이 남자아이는 똘똘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짜증을 곧잘 냈다. 급기야 수업을 중단했다. 왜그러냐고 했더니 방 밖으로 5일동안 한번도 못나갔다고 했다. 아, 그순간 생쪼렙과 조금 진화한 쪼렙의 가장 큰 차이점을 자각했다. 쪼렙을 막 벗어났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오만하고 방심할 때라는 것을...
몇달전만 해도 정부지침으로 고작 집 앞 카페를 못간다고 코로나 블루에 걸렸다며 죽상을 해대던 나였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어도 내가 이 일이 적성에 맞는다고 직관적으로 생각한데에는 내가 '공감능력'은 있다고 생각한 터였다. 그 공감능력도 특히 내가 '약자'라고 생각한 존재들에게 더 발휘된다고 생각했다. 그생각이 얼마나 오만하게 속단한 것에 불과했던 건지, 그 아이말에 번쩍 깨달았다. 이미 늦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해와 사과밖에 없었다. 자가격리 된 5일 동안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 줌에서 주석달기 하나쯤은 하게 해줄 수 있는거 아닌가? 라고 당연히 생각할 만 했다. '선생님이 니말을 들어야 되니 네가 선생님 말을 들어야 하니'란 말도 어이없었을 것이다. 상대방을 더 이해하려고 힘써야 하는 쪽은 당연히 아이보단 어른이다.
'헉 ㅇㅇ아 미안해 엄청 답답했겠다 갑자기 ㅇㅇ이가 오늘 수업 내내 왜그랬는지 너무 이해가 되네? 선생님이 실수했네 용서해줄래?' 온갖재롱을 부리며 사과를 했다. 이해받았다는 생각에 아이는 한순간에 순해졌다. 미안함에 수업이 끝나고도 30분동안 내 퇴근시간을 미루며 아이들과 수다를 떨고 놀아줬다.
적어도 아이들 앞에서 나의 실수를 인정하는 타이밍은 놓치지 않았다는 데서 안도감을 느끼며 퇴근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상이 아이들이라서, 이해받기 쉬운 존재들이라서 자주 사과로 무마하려는 건 아닌지 다시한번 곱씹게 된다. 퇴근할 때 타는 버스는 항상 '성찰버스'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