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을 보는 것 외에 별다른 취미를 가져보지 못했다. 예전엔 드라마를 미친 듯이 봤었는데, 요즘엔 스토리 라인을 따라갈 집중력조차 잃어서 그런지 유튜브만 하염 없이 보고 있다. 요즘엔 멍하니 머리를 비우고 볼 수 있는 만들기 종류의 영상들이 알고리즘에 많이 뜬다. 오늘 본 것은 한약통을 미니 노트북으로 만든 영상, 장난감 노트북을 진짜 노트북으로 개조 시킨 영상, 매일 다이어리 10개 쓰는 사람 영상, 영하 15도 차박 영상, 미니어처 요리 영상 등등 이다. 가히 광기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는 컨텐츠들이었다. 보다 보면 '왜..저렇게 까지..? 어떻게 저렇게 까지 온 힘을 기울여 쓸 데 없는 짓을 하는 거지..?' 하는 물음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처음엔 무용한 것에 정성을 기울인다는 것에 마음이 갔다. 나는 항상 '사회가 요구하는' 생산성, 효율성과는 거리가 먼 것에 마음을 두곤 했다. '쓸고퀄' 이란 말이 붙으면 그냥 클릭하게 되는 본능 같은 게 있나 보다. 그러나 이젠 이런 걸 보는 것 마저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는다. 내가 현실을 도피하고자 보던 것들이 더 이상 나에게 도피처가 되어주지 못하는 순간이 자주 온다.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자꾸만 삐딱하게 보이고 따지려 드는 순간 말이다. 오늘은 저런 영상들을 보다가 이제 흔한 취미마저도 저렇게 완벽하게 해야 하나 하는 회의감이 덮쳤다. 취미 좀 가져보려고 해도 저런 걸 보면 진짜 본격적으로 해야 할 것만 같아 가슴이 답답해졌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찰나에 고질적인 게으른 완벽주의가 도져서 그런 듯 하다. 7살 때의 난 그림을 다 그려 놓고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스케치북을 찢어버려서 미술 학원 선생님들을 당혹스럽게 하곤 했었다(그 와중에 요즘엔 자꾸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릴 때 그 주변에 있던 선생님들 혹은 어른들을 조명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가 아이패드를 살 때 가장 좋았던 건 그림을 마음껏 그릴 수 있어서가 아니라 손쉽게 지울 수 있어서였다. 완벽하지 못한 것을 지울 수 있는 게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림 그리는 것도, 다이어리를 꾸미는 것도 아이패드로 하면 좀 쉽게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했더니만..다꾸 고인물들의 영상들이 알고리즘을 지배하고 나서 부턴 시작도 못하고 기가 죽어버렸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으로 인해 자신의 취향을 도둑맞은 것 같다는 김이나 작사가님 말마따나 유튜브가 내 취미도 훔쳐간 기분에 잠깐 허망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