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을 때, 초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이 바로 외로움이다. 잠들기 전 나는 안락하고 편안한 풍경들을 떠올리며 잠 들 준비를 하는데, 그는 멋대로 내 머릿속 드림하우스에 들어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벽난로 앞 흔들의자를 차지하고는 시끄럽게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안녕, 나 또 왔어. 많은 사람들을 만났었는데 결국엔 또 혼자가 돼버렸네. 그래도 괜찮아, 내가 있잖아."
외로움이란 그런 식이다. 이런 뻔뻔한 녀석이 내가 혼자 있을 때만 오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수많은 인파 속에 있어도, 사람들과의 모임을 나가도 그는 낄 데 안 낄 데 구분 못하고 찾아온다.
"안녕! 이 자리 되게 재밌어 보인다. 근데 어째 아무도 너랑 안 놀아주는 것 같네. 괜찮아, 나랑 놀면 되지."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오지랖이 심했다. 내가 혼자 쓸쓸히 있든,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이해도 관심도 받지 못한 채로 있든 얌전히 좀 있을 것이지,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늘 두 발 벗고 헐레벌떡 뛰어온다.
송곳으로 찌르는듯한 서늘함. 나의 외로움에 대한 첫인상은 그랬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수학을 참 유구하게 못했는데, 그 덕에 다른 애들은 집에 가거나 놀러 갈 때 나는 혼자 어린이집에 남아서 남은 문제들을 풀어야 했다. 혼자 남아 2 더하기 3은 5 따위의 문제들을 푸는데 견디기 힘들 정도로 추웠던 기억이 난다. 그 추위가 쓸쓸함과 외로움이었다는 건 내가 좀 더 크고 나서 알게 됐다. 그렇게 나와 안면을 트게 된 외로움은 이후로도 꾸준히 나를 찾아왔다. 부모님끼리 잠시 나가고 집에서 혼자 TV를 볼 때, 동네에서 혼자 인라인스케이트 타는 연습을 하다 넘어졌을 때(이후로는 단 한 번도 타지 않았다), 혼자서 동네 골목길 사이사이의 돌담들을 넘으며 모험 놀이를 하고 있을 때, 마땅히 할 게 없어서 자전거를 타고 의미 없이 동네를 빙빙 돌 때 등등. 그 시절 내 가장 친한 친구는 외로움이었다.
외로움이 내게 덜 찾아오게 된 것은 고등학생이 될 무렵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고슴도치처럼 살던 내가 유해지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그럭저럭 친구들도 사귀고, 진로 상담이니 뭐니 하면서 바쁘게 지내다 보니 외로움이 찾아 올 타이밍이 없었다. 그럴 때 보면 '아, 너 많이 바쁘구나? 나중에 올게.'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 동안 내 오랜 친구를 잊고 살았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른이 되고 나서야 그는 다시 찾아왔다. 익숙한 얼굴들과 헤어지고 낯선 얼굴들로 가득한 대학교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동성애자 커뮤니티라는 것을 알게 되어 나와 동류인 사람들과 친해질 생각도 잠시, 그곳에서도 나는 외계인이라는 걸 느꼈을 때, 내가 사랑에 실패했을 때 모두 외로움은 날 찾아왔다.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는 예전만큼 차갑지는 않았다.
외로움을 쫒아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도 있다. 외로움이 찾아오면 몰두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보기도 하며 말이다. 나의 경우는, 더 이상 그를 내쫒기 위해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냥 외로움과 함께 있기로 했다. 혼자 바에 가서 술을 마시기도 하고, 몇 시간 동안 서정적인 노래를 듣기도 한다. 외로움이란 게 별거겠는가. 외로움은 내 오랜 친구이자 불현듯 찾아오는 감정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 눈치 없고 뻔뻔한 친구의 방문을 그저 만끽하기로 했다. 외로움조차도 영원히 내 곁에 함께 있어주지는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