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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Jul 19. 2024

4. 박살 난 것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며 알게 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세상 사람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남에게 개인사를 말하길 꺼려한다는 것이다. 왜일까? 나는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도 해보고, 친구에게 물어보기도 하면서 몇 가지로 추렸다.


  첫째, 무거운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아서.

  둘째, 이미 내 인생만으로도 힘든데 남의 인생사까지 듣기 버거워서.

  셋째, 상처를 드러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넷째, 어지간히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상대에게 부담일 테니까.

  다섯째, 그냥 TMI(Too Much Information)이라서.

  여섯째, 약점 잡힐까 봐.(가장 슬픈 이유일 것이다.)

  그 외, 나는 잘 모르지만 저마다 말 못 할 사정이 있겠지.


  그렇게 나는 개인사를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마음 터놓고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행운이라는 것도 알게 됐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깨달음과는 별개로 나는 여전히 내 눈앞의 상대를 책처럼 읽고 싶어 하는 인간이었다. 대화가 무르익고 서로에게 호감이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 나는 브레이크가 박살 난 불도저처럼 질문하고 싶어 진다. 어떻게 살아왔어요? 당신한테 가장 중요한 건 뭔가요? 가장 좋아하는 건요? 가장 싫어하는 건 뭐고요? 뭐가 진정으로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인간이 날 때부터 선하다고 봐요? 살기 위해 빵을 훔친 장발장이 정말 잘못된 걸까요?! 등등. 물론 그랬다면 상대가 미친 사이코를 만났다며 도망칠 게 뻔하기 때문에 내면의 이성을 백분 활용하여 자제한다.

  이쪽 사람들, 그러니까 게이들은 더더욱 그런 쪽으로 민감했다. 나이나 이름을 속이기도 하고 활동명으로만 통성명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무엇보다도 커밍아웃을 당할 위험이 있으니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아마 애인 사이가 아니라면 깊은 얘기를 잘 나누지 않는 편일 것이다. 나도 그런 편이니까. 게다가 바닥 소식은 그렇게 빠른 건지. 내가 떠벌리고 다닌 적도 없는데 놀러 다녔던 동네의 게이들 사이에서 나에 대한 소문이 돌았을 정말 기상천외했다. 아무튼, 인류학자도 아니면서 사람을 탐구해보고 싶어 하는 오만방자한 나에게는 조금은 아쉬운 일이었다.

  

  의외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도 내 모든 걸 상대에게 드러내본 적은 단 한 번 밖에 없다. 모두 드러냈다는 건, 단순히 내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고, 어떤 사람, 어떤 사건으로부터 상처를 입었는지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해소되지 못한 응어리, 베베꼬인 자기모순, 깨진 유리조각 같은 내면을 상대에게 마구잡이로 집어던졌다는 얘기다. 그렇게 철없고 미숙하기만 했던 시절에 애인 사이었던 그 사람과 나는 서로에게 상처만 입혔다.

  시작은 분명 사소한 감정싸움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내가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감정적으로 굴었던 순간일 것이다. 그렇게 날것의 날 선 감정들을 비수 삼아 서로의 가슴을 후벼 판 후 감정이 상할대로 상한 우리는 서로 뒤돌아 앉았다. 상대방에 대한 배신감, 상처 위에 소금을 뿌린듯한 괴로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기어코 건너고야 마는 어리석음에 대한 후회. 무엇보다 칼자루를 먼저 쥐었던 사람이 나라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서로 어떤 인생을 살아왔고 어떤 아픔을 겪었는지 알았기에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정확히 찌를 수 있었다. 그러고선 생각했다. '나는 끔찍하게도 추한 인간이구나.'

  "미안해, 진심이 아니었더래도 그런 얘기는 애초에 할 수 없어야 했던 건데."

  숨 죽여 울던 소리가 잠잠해졌을 때  가슴을 짓누르는듯한 적막을 깬 건 이기적이게도 나였다. 다시 한 번 마주한 우리는 충혈된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며 잠깐 동안 다시 침묵했다. 그리고 다시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오래된 기억이라 그때 그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질 않는다. 다만 마지막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네 상처는 너무 커서 내가 어떻게 해줄 수가 없어."

  그 얘기를 듣고 나는 다시 엉엉 울었다. 신기하게도 그 말이 속이 잔뜩 박살 나 있었던 당시의 나에게 의미 있는 큰 위로가 됐다. 내 상처를 돌보는 몫은 스스로에게 있는 거구나. 누군가에게 의존해서는 혼자서 일어날 수 없는 거구나. 내가 겪었던 그 모든 일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넘길 수 있는 일들이 아니었구나. 그제야 나는 내가 입은 상처들을 직시할 수 있게 됐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말없이 서로를 한동안 끌어안은 채 있었고, 나는 문을 열고 나가기 전, 잘 지내라는 말 한마디로 그를 떠났다.


  박살 난 도자기처럼 살던 나는 그 이후로 깨진 조각들을 얼기설기 모으고 이어 붙여서 그럭저럭 멀쩡한 그릇 흉내를 내며 살고 있다. 도자기 하니 생각나는데, 부서진 도자기를 복원하는 기법 중에는 깨진 조각들을 모아 고치는 킨츠기라는 기법이 있다. 옻칠을 해서 조각난 파편들을 붙이고, 파편들이 서로 맞닿아 금이 간 부분에 금가루를 뿌려 수리하는 작업이다. 그 모든 공정을 거치면 황금빛의 무늬를 가진 아름다운 도자기가 탄생한다. 그 모습은 상처를 극복하고 다시 웃음 짓는 모든 사람들과 닮았다. 박살 나고 흉터투성이여도 괜찮다. 그 모든 일들을 겪었기에 내가 비로소 여기에 있으니까. 비록 나라는 도자기는 옻칠도 조금 서툴렀고 뿌릴 금가루도 좀 부족했던 것 같지만, 뭐 어떤가? 나는 이제 나의 상처에 당당하다. 그러니 쓸데없이 호기심 왕성한 내게 여러분 이야기를 조금만, 아니 조금보다 더 많이 들려줬으면 좋겠다.




글을 마치려는데, 참 오랜만에 떠올린 그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사람. 꼭 만나보고 싶다며 내 집 앞까지 차를 몰고 왔던 사람. 차로 톨게이트 한 번 넘어본 적도 없으면서 대학생인 날 학교까지 태워다 주겠다며 벌벌 떨며 운전했던 사람. 생일 케이크 대신 홀케이크만 한 사이즈의 햄버거를 사다 주며 맛있어 보이지 않냐며 어린애처럼 굴던 사람. 좋았던 기억만큼은 한사코 잊지 않으려고 하는 여전히 이기적인 나.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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