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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Jul 16. 2024

3. 영원한 햇살

    새벽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순간의 햇살은 창백하게 느껴진다. 그 푸르스름하고도 적막한 풍경 한복판에 서있으면 마음속에 떠다니던 티끌들이 저 아래로 차분히 가라앉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그 고요함을 만끽하고 있으면 머지않아 해가 본격적으로 출근하기 시작하고, 나도 햇빛에 타 죽고 싶지 않은 흡혈귀처럼 다시 분주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영원한 햇살, 이터널 선샤인. 티 없는 마음의 영원한 햇살. 내가 죽을 때까지 사랑할 영화 중 하나다. 이제는 지쳤다며 어쩌면 충동적으로 남자와 함께했던 기억을 지운 여자, 그런 여자에게 배신당했다며 여자에 대한 기억을 지우러 간 남자. 하지만 막상 연인과 함께한 기억들을 지우기 시작하니 남자는 소중했던 순간들을 잊고 싶지 않다며 추억 속 연인의 손을 붙잡고 기억 속에서 도망치기 시작한다. 이터널 선샤인은 내가 생각하던 전형적인 사랑 영화는 아니었다. 우연한 만남, 위기, 극복, 사랑의 확인이라는 틀은 비슷했지만... 조금 더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터널 선샤인에서는 위의 네 단계 중에서도 특히나 위기의 연속이었다. 남자는 추억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서 도망치지만 결국 최후에 도달한 곳은 그녀를 처음 만났던 몬탁의 해변이었다. 첫 만남의 기억은 다시 필름처럼 재생되고, 속에서 사람은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이제 정말 가야 해요. 타야 한다고요."

  "그럼 가던가요."


  그랬지. 나는 당신이 미친 사람일 거라 생각했어. 그저 나와 함께여서 들떴던 것뿐인데.


  "사실 당신이 머물렀으면 했어."

  "나도 머물고 싶었어. 지금도 그러고 싶어. 당신과 이런저런 많은 일들을 하고 싶어. 정말로... 정말로 머무르고 싶어."

  "그 때 아래층으로 내려왔는데 갑자기 당신 모습이 안 보이는 거야."

  "나갔었어, 문 밖으로 나가버렸어."

  "왜?"

  "모르겠어. 겁에 질린 어린애처럼... 나도 잘 이해가 안 가."

  "겁먹었었다고?"

  "그래. 나 겁쟁이인 거 아는 줄 알았는데. 모닥불까지 뛰어갔었어. 굴욕감을 떨쳐내고 싶어서."

  "내가 그때 한소리 했었나?"

  "응, 짜증 난다는 듯 그럼 그냥 가버리라고 했지."

  "그랬었지, 미안해."

  "괜찮아."

  "조엘, 그럼 이번엔 머물러 보는 게 어때?"

  "이미 문을 열고 나가버렸는걸. 함께 머물렀던 기억은 나에게 없잖아."

  "그럼 적어도 돌아와서 작별인사라도 나누자. 바보같이 떠나가지 않았던 것처럼."


  "잘 가, 조엘."

  "...사랑해."

  "몬탁에서 만나..."




  그리고 영화는 다시 첫 장면으로 돌아간다. 서로에 대한 기억을 다 지웠음에도 다시 서로 사랑에 빠지고, 기억을 지우기 전 자신들이 남긴 상대방의 단점을 헐뜯는 테이프를 듣고도 결국엔 서로를 다시 찾아간다. 자신의 단점을 줄줄 늘어놓으며 우리는 결국 또 헤어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꺼내는 상대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뭐 어때요."

  뭐 어때요. 사랑의 시작은 늘 그런 식이었다. 사랑은 내가 힘이 들 때, 여유가 없을 때, 불행할 때를 가리지 않는다. 늘 제멋대로였다. 사랑은 불가항력적인 재해처럼 찾아온다. 그렇게 시작된 사랑이 엉망진창으로 끝난 뒤, 영화에서처럼 기억을 지우면 그때 그 사람들과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될 수 있을까? 참 궁금하긴 하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다. 사랑에 실패했던 깨진 유리조각 같은 기억들이지만 손이 베인데도 꼭 붙들고 놓아주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있으니까.


  영화 속 조엘이 기억 속 클레멘타인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한 가지 의문을 가졌다. 지금 조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저 클레멘타인은 한 때의 좋았던 기억 속 클레멘타인들의 총집합인 걸까? 상대의 좋았던 부분만 골라 콜라주 하듯 짜깁기하고, 그가 받아들일 수 없었던 모습들은 한 꼬집만 첨가된 환상이지 않나? 그가 듣고 싶은 말만 해주는. 동시에 조금 찔렸다. 나 또한 그래본 적이 있기에. 내가 좋아했던 모습만 남기고, 단점으로 느껴졌던 부분은 절개해서 버린다. 하지만 단점이 하나도 없으면 너무 현실감 없으므로 내가 받아들일 있을 만큼의 사소한 단점들만을 남겨놓는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내가 좋아했던 모습들만 박제해 놓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사랑일까?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 상대에게서 얻을 수 없는 것을 상상하는 것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이터널 선샤인의 마지막 장면은 환상 속이 아닌 현실에서 서로의 단점을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런 데도 함께할 거라고? 싶어지는 단점들을 그저 okay라는 말 하나로 퉁쳐버린다. 내게는 기억을 지운다는 소재보다 그 장면이 더 비현실적인 판타지처럼 느껴졌다. 말도 안 돼. 그럴 수가 있다고? 하지만 최근 들어서야 이렇게 느낀다. 상대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단점 없는 완벽한 상대란 환상 속에서나 존재하고, 빛은 깨진 틈사이로 들어오는 법이니까. 자 그럼, 우리도 언젠가 몬탁에서 다시 만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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