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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Jul 21. 2024

5. 나와 화해하다

  나 혼자서는 절대 채울 수 없을 것 같은 공허함을 유일하게 채워줄 수 있는 건 사랑 밖에 없을 거라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삶의 목표와 원동력을 사랑에서 찾으려 했다. 나 자신을 위해 사는 것보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누군가를 위해 사는 게 더 쉬웠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 시절의 나는 눈에 불을 켜고 사랑을 찾아 헤매었다. 신기하게도 망가진 것들은 서로에게 끌리기라도 하는 건지 그 당시 만났던 사람들도 나처럼 어딘가 결핍된 사람들이었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 계속해서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사람,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존감을 채우려 하는 사람. 나는 그들 사이에서 스스로도 사랑하지 않는데 남을 사랑하려고 했던 사람이었다.


  결핍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이해하고 단점을 보완해 가며 아름답게 사랑한다는 이야기는 보통 드라마에서나 가능하고 현실에서는 서로의 정신병이 두 배로 깊어질 뿐이었다. 마이너스끼리 곱하면 플러스이긴 한데, 곱하기라는 기능이 우리네 인생에서는 거의 작용하지 않는다고나 할까. 그렇게 나는 숱한 가스라이팅과 거짓말, 유치한 질투심의 파도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먼발치 물러났다. 그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있으니 참 평온하고도 쓸쓸한 적막이 찾아왔고 내가 사랑이라 믿고 싶었던 모든 것들은 왜 모조리 실패하는 건지 생각해 볼 여유가 생겼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을 나로 두고 싶어 하지 않았다. 주위의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나는 무채색의 점이었다. 앞으로 다가올 인생에 대한 희망도 꿈도 없이 그저 물살에 떠내려갈 뿐인 존재로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사랑이라는 걸 가지면 나에게도 색채가 생길 것 같았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은 언제나 열정적이고, 아름답게 보였으니까. 그때의 나는 사랑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사랑을 도피처로 삼고 싶어 했다. 그 뒤로는 한동안 나를 갈무리했다. 모든 관계로부터 나를 단절시키고 나 자신을 바라보며 말이다. 외로움이 아닌 고독이란 게 무엇인지 그때 처음 느꼈다. 나와 단 둘이 남기 위해 혼자가 되어야 했고 그 고독이 필요했다. 그렇게 마주한 나는 그냥 '나'일뿐이었다.


  남들보다 조금 단색이고 툭하면 세상만사 무의미하고 허무하다고 투덜대는 나를 받아들인 후에는 내가 책임감 없이 던져놓은 친구들에게 갖은 질타를 받아야 했다. 갑자기 연락이 두절돼서 얼마나 서운했는 줄 아느냐, 네가 종종 잠적을 타긴 하지만 이번엔 진짜 떠난 줄 알았다, 하여간 지 맘대로 왔다가 갔다가 아주 싸가지가 없다 등등... 그날은 정말 기분 상한 친구들을 달래주기 위해 열심히 딸랑거리며 탬버린을 흔들었다. 이윽고 서운했던 것들을 내게 모조리 털어놓은 친구 하나가 이렇게 말했다.

  "너랑은 이제 무슨 짓을 해도 연이 안 끊길 것 같아."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징그럽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어느새 그 친구와 10년 이상을 함께했다. 무슨 짓을 해도 끊기지 않을 인연이라는 건 좀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먼저 연락하는 일도 없고 무소식이 희소식인 타입인 나에게 저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친구가 있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렇게 나는 나와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을 터득했다. 더불어 내 곁에 머물러준 다른 이들 모두와도.


  가끔씩 사랑받으며 자란 사람들은 겉으로 티가 난다던가, 사랑받아보지 못한 애들이 어떻게 남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겠냐는, 놀랍도록 둥글게 깎은 폭력적인 말들을 듣는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소리치고 싶다. '그럼 어쩌고요!' 정말 어쩌라는 걸까 싶어 진다. 사랑 못 받은 티 내며 불량식품 같은 사랑이나 하다가 죽으라는 걸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악의 담긴 말은 아닐 것이다. 나는 사랑의 시작은 사랑받아본 경험에서부터가 아닌 자신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거창하게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이 아니다. 나도 가끔은 내가 얄밉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나인걸. 좀 더 나은 사람,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갈고닦을 부분이 아직 많지만 그것도 결국 현재의 자신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걸 배웠다. 그러니 여전히 스스로에게 눈 돌리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긍정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결국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일수밖에 없고 나의 가장 친한 친구도 내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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