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NS 계정에 들어갔다가 R.ef의 이별공식 무대 영상을 볼 기회가 있었다. 그 시절 특유의 신나는 멜로디에 그렇지 못한 가사가 인상적이었지만 그보다 더 대단했던 건 열심히 춤추는 그들 아래로 빠르게 지나가는 자막이었다.
https://youtu.be/H6hWXBFn2PU?si=QcEMd4LbmS6Ssb8a
이별=(눈물+슬픔)²÷(술×담배연기)⁴-(사랑+약속+추억)+(미움+물거품+잿빛하늘)+sin무관심+cos무표정+(술+방황+증오)-키스×(포옹³+순결³)+(고민²×어둠²) … 글로 옮기기에는 이 자칭 이별공식이 너무 길다. r.ef가 활동하던 때도 싸이월드 감성 같은 게 유행이었나? 아무튼 언제 끝나는 건지 감도 안 잡힐 정도로 긴 공식 덕분에 이별이 참 힘든 일이구나 싶었다.
그래, 이별은 힘들다. 나는 이제 이 관계를 정리하고 싶은데,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꿈에도 모르는 상대의 눈을 마주 보는 건 눈을 초롱초롱하게 뜬 어린 송아지를 도살장으로 끌고 가는 것처럼 끔찍한 기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사랑이 뭔지도 모른 채 뛰어드는데, 나라고 못할 건 없잖아.'라는 오만함이 불러일으킨 결과였다. 상대의 단점들이 계속해서 눈에 밟히기 시작할 때, 내가 상대방에게 너무나 당연한 존재가 되어버렸을 때, 무엇보다 그 사람과 함께하는 내 모습이 더는 그려지지 않을 때 나는 슬슬 짐을 싸기 시작한다. 그렇게 이별을 통보할 마음을 먹고 혼자 감정을 정리하고 있으면 이윽고 가장 큰 난제가 모습을 드러낸다. 어떻게 하면 잘 끝낼 수 있지? 평소에도 자주 다퉜던 사이일 땐 초에 불 붙인 김에 초가삼간도 다 태우자는 식으로 서로 다투다가 이제 그만하자는 말을 마지막으로 훌쩍 떠나왔었지만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갈등도 없이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 관계에서는 헤어지자는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갑작스러운 이별통보로 마음 고생 시키고 싶지는 않은데 하지만 그렇다고 이 관계를 계속 유지하자니 천천히 메말라 죽어 가는 기분이고. 그렇게 몇 주를 전전긍긍하다가 단 둘이서 할 이야기가 있다며 꺼낸 말은 무자비하기 짝이 없었다. "형이랑 계속 지내는 걸 생각해 봤는데, 별로 행복할 것 같지 않아."
분명 어떻게 해야 상대에게 상처 주지 않고 감정 상하지 않게 하면서 잘 끝마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정작 입 밖으로 나온 건 너무 날 것이다 못해 난폭하게 날뛰는 문장이었다. 내가 생각해 오던 바는 맞지만... 뭐라고 할까, 마늘을 다질 때 그냥 다지는 것과 중식도로 내리쳐서 순식간에 박살 내는 건 다르니까. 결국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그와는 제대로 된 작별인사도 못하고 끝나버렸다. 아니 나는 분명 '이렇게 돼서 미안해, 비록 여기서 갈라지게 됐지만 어디서든 잘 지내길 바랄게.' 같은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싶었는데. 그가 문을 열고 나간 뒤 나는 한동안 허망하게 앉아 있다가 그래도 헤어져야겠다는 목표는 달성했네 생각하며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갔다.
사랑은 분명 서로 다른 부분을 맞춰가며 함께 나아가는 거라 생각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못마땅한 걸 하나둘씩 쌓아가다가 어느 순간 폭발하듯 헤어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점을 맞춰가는 과정이 상대를 나라는 틀에 맞춰 깎아가는 과정처럼 느껴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함께하기 위해 발걸음을 맞춰나가는 모습은 분명 멋지지만 내가 하는 건 물개에게 비보잉을 가르치는 것처럼 느껴지기만 한다. 나라는 쿠키틀에 찍혀서 내가 좋아하는 부분만 남고 도려내진 상대는 과연 나와 함께라 행복할까? 적어도 내 경험상 나였던 부분을 버리고 상대가 바라는 모습만 보여주려 애쓰는 건 썩 유쾌하지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를 내 입맛대로, 취향대로 바꾸려 시도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고집을 조금만이라도 버렸으면 좋았을까? 여전히 어리숙하기만 한 내가 갑작스레 가슴에 말뚝을 꽂아 넣은 그 사람과도 분명 함께하기 위해 서로 노력해 볼 일들이 많았을 텐데, 미련이 남는다.
이별은 참 어려운 일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서로 즐거웠다 말하며 돌아서는 이별은 신기루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절주절 길었던 r.ef의 이별공식도 끝은 이해와 용서의 곱하기로 마치던데, 언젠가는 그럴 수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