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면 담배연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불규칙적인 곡선을 그리며 위로 치솟다 희미해져 사라지는연기를 보면 나도 결국엔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휘도는 연기처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며 다른 사람과 맞닿고 헤어지고, 나중에 가서는 희미하게 잊혀 사라지는 거지. 어느 순간부터 나는 담배의 맛이니 향이니 따위보다 피어오르는 담배연기를 멀뚱히 쳐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정처 없이 흐느적거리다 사라져 버리는 그 모습이 그동안 만나온 사람들의 모습과 겹쳐 보여서.
그들은 저마다 다른 결핍과 비슷한 외로움을 공유했다. 누구는 사랑을 쟁취하려고 부단히 애썼고 누구는 가식투성이에 영악하기도 했다. 또 누구는 너무나 쉽게 인연을 흘려보내기도 했다. 일시적인 외로움을 달래려 낯선 남자와 자기도 하고 술을 마시며 처음 보는 얼굴들과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며 웃기도 했다. 그 모든 게 의미가 있었을까? 무엇을 얼마나 들이붓든 결국 근본적인 갈증은 해소되지 못할 텐데. 나라고 뭐 다를 게 있을까. 사람들 한복판에서 텅 빈 잔을 들고 있었지만 누구도 내 잔을 채워주지 못했다. 내가 잔을 너무 높이 드는 바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쓰고자 하는 것은 이 바닥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유치하고 진부하고 지긋지긋해도 사랑 없는 삶을 그릴 수 없었으므로.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 또한 머리를 스친다. 사랑에 정말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걸까? 우리가 사랑에 대해 정확히 이해나하고 있는 걸까? 눈앞의 상대를 사랑한다고 할 때, 내뱉어진 그 말에 얼마만큼의 무게가 담겨있는 건지 우리가 가늠이나 할 수 있을까? 열렬히 사랑하다가도 어느 순간 차갑게 굳어지기도 하고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그 사람에 대한 생각들이 오늘은 점심으로 뭘 먹을지 생각하는, 일상적인 고민들에게 한없이 밀려나기도 한다. 영원한 사랑이니 변하지 않는 사랑 같은 건 미디어의 과대광고에 가깝고 현실에서의 사랑은 영속적이지도 않고 그렇게까지 아름답지도 않았다. 오히려 좀 추하고 구질구질했지. 게이들은 잠자리가 안 맞아서 헤어지기도 하고, 너무 오래 만나서 새로운 자극이 없다며 헤어지기도 하고, 사소한 일로 다투다 헤어지기도 하고, 그냥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헤어지기도 한다. 헤어지는 데에는 이유가 각양각색이다. 사랑하게 되는 데 이런저런 이유를 붙일 필요 없는 것과는 반대로.
"애인과 10주년 맞이로 케이크 만들기 체험을 함께 다녀왔어요."
SNS에서 막연하게 알고 지내던 사람이 올린 게시글이었다. 나는 그 글을 보고는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그들을 축하했다. 너무 쉽게 깨지는 이쪽 커플들만 보다가 장기적인 연애에 성공해 기념일에 함께 케이크를 굽는 그들 커플의 모습이 너무나도 멋있어 보였다. 누군가에게 정착해서 서로를 보듬어가며 늙어가는 것은 동성애자로 살아가며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던 당시의 나였기에 더욱이 그랬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났다.
"애인과 헤어지게 됐습니다."
나는 이번에도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란 마음을 금치 못했다. 왜요? 어쩌다가요? 10년이란 시간을 함께 했는데 이렇게 순식간에 떠났다고요? 너무나 묻고 싶었지만 그가 느꼈을 상실감의 크기를 함부로 가늠할 수 없었기에 입 밖으로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이후로는 내가 그 작은 사이버 공동체를 빠져나왔기 때문에 감감무소식이 됐다. 그러고는 문득 생각했다. 나는 누군가와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발을 맞춰 걸을 수나 있을까?
나의 사랑은 대부분 시늉이었다. 미팅 어플이나 모임 따위에서 만나 적당히 사랑을 흉내 내다가 이번에도 그저 모방에 불과하다는 걸 느끼면 헤어졌다. 관계를 끝맺음할 때 나는 늘 훌쩍 떠나는 사람이었고 상대도 마찬가지로 아쉬워하지 않았다. 연애라기보다는 '이번 실험도 실패입니다. 이건 사랑이라고 부를 수 없겠는데요. 당신도 그렇게 느끼죠? 폐기합시다!' 이런 흐름이었다.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사랑이 뭘까?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이 사람은 너무 섹스만 밝혀서, 얘는 연락도 잘 안 되고 먼저 연락하는 일도 없어서, 쟤는 너무 무신경해서, 어떤 녀석은 자꾸 다른 남자를 힐끔거려서. 내가 그들을 떠나온 이유도 다채로웠다. 그런 식으로 떠나오길 반복하니 기준만 높아져서는 자유의 여신상처럼 손을 높이 뻗고 있었다. 횃불이 아닌 빈 잔을 들고서. 그러고는 여전히 누군가가 잔을 채워주지 않을까 하는 몹시 괘씸한 생각을 하고 있다.
더 높은 가치의 사랑. 그게 내가 추구하는 바였다. 이게 단순한 성욕인지, 소유욕인지, 일시적인 흥미인지 알 수 없는 그런 것 말고. 문제는 이상적인, 순수한 사랑을 하고 싶다고 뛰어들었던 모든 관계가 끝에 가서는 항상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뒤틀렸다는 거다. 그렇게 사랑이란 개념은 아직 인류에게 이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때 보고 있던 TV쇼에서 우연히 가톨릭 성경의 구절을 접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종교라는 것은 학술적으로 접근했을 때만이 유일하게 흥미롭다 생각하는 나지만 이 구절만큼은 내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어렴풋이 윤곽만 그려왔던 사랑이라는 개념이 이래야 하지 않을까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나는 즉시 실천에 옮겼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으며(이하생략)을 실현해보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난 내 생각보다 참을성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때로 극단적이기까지 했으며 질투심은 물론 재수 없는 인간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철저하게 실패했다. 폭풍우 치는 바다 위에서의 항해 같았던 관계를 매듭짓고 마지막으로 할 수 있었던 건 그저 행복하게 잘 지내길 바란다는 작별인사뿐이었으니. 조금 우습게도 지금도 여전히 그가 건강히 잘 지내길 바란다. 다만 술은 좀 줄이시길.
이 바닥에서의 사랑은 쉽게 이루어지고 쉽게 깨진다.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회전초처럼, 흐느적거리는 연기처럼 점차 멀어져 희미해지는 모습들을 봐왔다. 모든 게 시간낭비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돌아보니 그리 대단한 감정도 아니었구나 싶을 때도 있다. 그저 호기심이나 당장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손을 맞잡기도 하고, 얼마 안 있어서 헤어질 게 뻔한 관계에 스스로 발을 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바보 같은 일을 벌이고도 다시 사랑하고자 한다. 여전히 사랑이 무엇인지, 어때야 하는지도 잘 모른 채 헤매는데도 말이다. 우리네 사랑은 무엇도 남기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사랑 없는 삶은 감히 상상할 수 없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