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화분 하나를 저세상으로 보냈다. 농담처럼 할 말은 아니지만 몇 년간 내 손을 거친 생명들을 생각하니 말라 붙은 잎 앞에서 한숨만 나왔다. 더위에 지쳐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었던 올해 여름, 뿌리부터 천천히 힘겨웠을 초록을 생각한다. 처음 같지 않은 마음이 이어질수록 덜 바라보고 덜 아껴주게 되었다. 분명 처음 같지 않아서 그랬다고 해도 나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늦봄에 화분을 들인 날, 그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자주 품을 들였다. 흙에 수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눌러보고, 매일 잎을 닦아주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빛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분주하게 살펴보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또 그렇게 돼 버렸다. 알면서도 더 마음 쓰지 않은 빈틈, 잠시 잠깐 놓쳐버린 어떤 순간들 때문이었다. 죽은 화분처럼 돌보지 못한 일상들이 생각났다. 가령 정리하지 않은 냉장고나 안부 한 번 묻지 않고 흘러가는 관계, 하고 싶다면서 실행하지 않아서 흘러가버린 생각 같은 것. 동시에 아직 가치를 잃은 건 아니지만 지금처럼 내버려 두면 언제든 화분의 운명처럼 쉬이 꺼질 수도 있는 것들이 떠올랐다. 뭐든 잘해보자고 했던 최초의 마음과 멀어진 상황들을 맞닥뜨릴 때마다 먹먹한 기분이 든다. 화분이 몇 개월을 못 버티고 손을 떠난 건 8할이 내 탓이다. 왜 모든 후회는 상황이 끝난 뒤에 더 극적으로 찾아오는 걸까. 화분을 정리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은 흘러갔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뿐만 아니라 생활 영역에 있는 물건, 공간도 어느 정도 균형을 유지하는 걸 추구한다. 아침에 일어나 이불에서 몸만 빠져나오기보다 흔적을 한 번 털어내고 정리하는 편이 개운하듯이 사소해 보이는 걸 사소하지 않게 만드는 작은 행동으로 생활은 이어진다. 그래서 화분을 정리하며 그동안 사소한 노력도 게을리했다는 걸 확인했다. 처음처럼 자주 살펴보지 않았고 물을 제 때 주지 않았으며 나중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여겼다. 어쩌면 결과보다 초라한 과정을 기억하는 일이 더 괴로운 일이다. 이별이 힘든 이유는 헤어짐 자체의 상황보다 그 사람과의 지난한 과정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데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여름에 첫 차를 구입하고 초보 운전자로 지낸 지 2개월이 지났다. 신호 체계와 차선 변경, 달리는 속도, 운전 매너를 걸음마 떼듯 익히는 중이다. 가끔은 칼치기를 하면서 달려드는 차도 있고 위협적으로 뒤에 붙는 차도 있지만 무섭다 할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내 갈길에만 집중하고 있다. 아직 주변을 돌아볼 만한 여유가 없는 초보라 가능한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초보 치고는 간이 커서 조심하는 쪽보다 무조건 부딪히는 쪽에 가깝다. 옆에서 운전을 도와주는 남편은 매번 한숨을 쉬고 잔소리를 하지만 그렇게 투닥투닥하면서 조금씩 운전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 이젠 제법 여유가 생겨서 음악도 듣고 창문을 열고 달리기도 한다. 한 손을 창 밖에 꺼내고 운전하는 사람, 요리조리 쌩쌩 달리는 사람들에게도 초보 시절은 있었을 것이다. 두렵고 설레고 재미도 있고 조심스러워하면서 첫 운전대를 잡고 달린 여정만큼 운전이 몸에 익었을 테지. 그런 이력이 점차 운전 습관과 스타일로 굳어졌을 것이다.
처음의 기분과 멀어질수록 나는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 될까. 아니면 잘한다는 착각을 하는 사람이 될까. 차를 산다고 할 때 주변에서 운전에 재미가 생기고 조금 익숙해졌다 싶을 때 사고가 나기 쉽다고 했다. 운전 경력 10년이 된 지인은 아직 운전이 어렵다고 말한다. 곧 초보 딱지를 떼는 순간이 오겠지만 초보의 마음은 잊지 않고 싶다. 얼마 전 친구에게 화분을 또 죽였노라고 말했더니 자신은 이제 양심에 찔려서 식물을 기르지 못하겠다고 했다. 둘이 걷다가 우연히 화원을 지나가는 중에 나온 말이었다. 가게 입구까지 나온 푸릇푸릇한 얼굴들이 눈길을 끌었다. 더 키우지 못하겠다는 말 앞에서 차마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또 새로운 화분을 집에 데려오고 다시 처음처럼 해보겠다고 한들 양심에 찔려서 말이다. 서투른 것과 노력하지 않는 건 다른 거라는 사실을 생명이 있는 걸 대해 보니 알겠다. 운전의 일도 언젠가 서투름을 잊을 만큼 능숙할 때라도 더 이상 노력할 필요가 없는 건 아니니까. 익숙해지면서 잊게 되는 것들을 경계하고 싶다. 어디 화분과 운전의 일만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