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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Dec 11. 2021

남에겐 쉽지만 나에겐 어려운

탓, 핑계, 원망

나 없으면 누구 탓할래?

하루에도 여러 번 듣는 말이다. 가장 가까이 있는 아내 파랑이 내게 하는 단골 멘트다. 무슨 일이 벌어지면 이유를 집요하게 찾아서 거슬러 올라간다. 적당한 시작을 발견하면 턱 하고 정착한다. 진짜 일의 주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일련의 과정에는 목적이 따로 있다. 의미 없는 후회를 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예방도 포장일 뿐이다. 그저 딱 하나를 위해 뒤집고 헤집는다. 결코 '나' 때문은 아니라고 증명하기 위해서.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못된 습관은 나만 그런지도 모르겠다. 명명백백하게 순전히 나만의 잘못이라면 하릴없이 인정한다. 하나 복잡한 인과관계가 얽혀있다면 내게 유리하게 해석한다. 내가 제공한 것보다  먼저의,  영향이 컸을 법한 사건에 주목한다. 분명히 이것 때문에 벌어졌을 거라고 강력히 확신한다. 해당 절차에는 물증, 심증, 증인, 증거 같은  문제가 아니다.  홀로 진행하는 재판처럼 마음대로 결정하고 땅땅땅 쳐버린다. 나만의 판결이  안에 진실로 박혀서 움직이지 않는다. 피날레는 원인을 만든 남을 바라보며 내리는 선고로 장식한다. ' 때문이네.'


세상에는 편하고 쉬운 일이 많다. 일회용품 쓰고 버리기,  낭비하기, 남의   듣기, 누워서  먹기 . 그중에서 제일은 단연코  탓하기다. 너무 손쉽다. 어느 만병통치약, 만능키를 가져와도 비할 바가 아니다.  좋게 흘러가는 모든 일에 이만한 해결책이 없다. 나쁜 일이 벌어지면 다른 사람에게 모두 뒤집어씌운다. 편하게 핑계 대고 원망한다. 부정적 감정을  바깥으로 쏟으면 끝이다. 원래부터 위아래가 정해져서 기울어 있던 것처럼 콸콸 잘만 쏟아진다. 덕분에 찝찝했던 마음을 모두 싹싹 비워 후련해진다. 무차별로 받아낸 남은 꼴이 말이 아니다. 안됐지만 어쩔  없다. 당신이 잘못했고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이니 그럴 만하다. 마음속 돌이킬  없는 판단으로 이미 정해 놓았다. 안타깝지만 너로 인해서 생긴 거니  정도는 감내해야 한다고 믿어버린다.


 고쳐지지 않는다.  글을 쓰면서도 뭔가 돌이켜보고 반성하고 변화시킬 실마리를 찾아보려 했지만 쉽지 않다. 계속 반복된다. 탓하기, 핑계 대기, 원망하기의 원인이자 시작은 결국 나라는  알아도 어렵다. 나와 남의 잘못이 섞여 있으면 남의 것이 크고 도드라져 보인다. 어떤 성장 과정을 겪었기에 이러는지 모르겠다. 나만의 특징인지 남들도 겪는 현상인지도 불명확하다. 객관적일  없는 사람이 객관적이 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주관적이 되는 딜레마를 겪는다. 어쩐지  흠은 없어 보이고 혹시 있어도 작아 보인다. 남들  어찌나 크고 부족 서툴러 보이는지. 억지스러운 상황을 고치지 못하는 것조차  밖에서 원인을 찾으려 한다. 내가 아닌 무언가 다른 이유로 벗어나지 못하는  아닐지 의심한다.


쓸데없이 철저한 내게도 어쩔  없는 순간이 있다. 깨끗하게 남이 존재하지 않을 때다.  혼자 오롯이 들어있는 상황에선 불가능하다. 나만의 다짐, 계획, 실천에는 남이 없다. 그때는 탓할 남도 없다. 늘어지고 삐끗하고 넘어져도 소용없다.  말고는 아무도 없어서 두렵다. 인생의 전매특허이자 주특기인 '탓하기' 대상이 없다. 오로지 나뿐이다. 이러면 나를 탓하지 않기 위해 애쓴다. 평소보다 더욱 흐트러지지 않게 갖은 힘을 다해 집중한다.  탓을 하는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어서. 결코 ' 때문이야'라는 말을 내뱉고 싶지 않다.  탓하기 좋아하는 만큼 탓할 대상이 되는  얼마나 끔찍한지 안다.  시원한 만큼 비참하고 억울할 테다. 빌미를 제공했다고 여겨지기 싫다. 나로 인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은 견디기 힘들다. 스스로 하기로 다짐한 일이 귀찮고 하기 싫어도  참고 한다. 내가 나를 원망하는 아찔한 상황을 죽기보다 싫어하니까.


기묘하다. 탓하는 맛을 아는 만큼 피하고자 스스로 채찍질하는 상황이. 이미 벌어진 일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하는 자세가. 누가 그랬든지 간에  중요한 앞으로에 집중하는 태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끝없는 술래잡기처럼 돌고 돌아가서 지독하게 원인을 찾아 헤맨다. 언제쯤 괴상한 놀이가 끝나려나 싶다. 나를 탓해보니 괴로움에 떨며 반성하게 되면? 어느 순간 해탈해서 누구도 탓하지 않는 순간이 오면? , 핑계, 원망의 대상을 남에게 돌리는 것은 쉽다. 대신 나를 과녁으로 쏘는 것은 어렵다. 쏘는 맛처럼 맞는 맛도 잘 알아서 맞기는 싫다.  삶의 이중잣대가 어찌 이것 하나뿐이겠는가. 도대체 언제쯤 겉과 속이 같아질까. 어떻게 해야 남과 있을 때와 혼자 있을 때가 다르지 않을까. 내가 중심이라 여기는 세상에서 필요할 때만  빠지는 얄팍한 짓을 그만하고 싶다. 내게 아픈 화살은 남도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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