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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Feb 17. 2024

분명한 시간 속 막연한 의지

시간의 흐름은 이럴 때 느낀다. 늘어져 있다가 문득 해야 할 일이 다가오면서. 두 번째 맞이하는 대학원의 방학은 시간이 멈춘 듯 나른하고 달콤했다. 언제 그렇게 치열히 글자 사이에 파고들었는지 기억이 흐릿할 만큼. 학생이란 신분도 잊은 채 일반인처럼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낯설지만 친근한 알림을 받았다. 지난 학기 성적을 확인하고, 다음 학기 수강 신청을 하라는. 학교 홈페이지에 발길을 끊은 지 오래라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부지런한 동기의 친절한 상기 덕분에 깨달았다. 졸업까지 내야 할 등록금이 아직 꽤 남았구나.


자격을 갖추지 않아도 시간은 흘러간다. 그동안 학교에서, 군대에서, 직장에서 나보다 나중에 들어온 이를 해마다 접해왔다. 그때마다 찾아온 감정은 일치했다. '도대체 지난 일 년을 어떻게 써 버렸지?' 배우고 깨달은 게 없어 후배를 마주칠 때마다 부끄럽고 안타까웠다. 아무것도 알려줄 게 없었으니까. 해가 바뀌어 다음 기수 대학원생이 들어왔다. 원우회(대학원 학생회)의 임원으로서 후배들이 잘 적응하도록 돕는 임무를 맡았다. 수십 명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가득한 방에 함께 머물며 불안에 떨고 있다.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해놓고 무엇에도 답하지 못할까 봐.


새로운 학기니, 선배니 하는 건 그래도 버틸만했다. 여전히 어설프지만 과거에 해본 거니 아주 엉망까지는 가지 않을 테다. 듣도 보도 못한 과정을 만나면서 손발이 쪼그라들었다. 석사 졸업을 위한 최종 관문은 논문이다. 졸업 학기에 죽을 둥 살 둥 끙끙대며 어떻게든 제출하면 될 거라고 막연히 그려왔었다. 내가 들어간 학교는 안일함을 허용치 않았다. 무려 1년 반 전부터 철저하게 준비시켰다. 방황을 자처한 길 잃은 어린 양을 돌봐줄 눈 밝은 스승을 일일이 붙여주면서. 순식간에 논문지도 교수님이 배정되었고, 관심 있는 졸업 논문 주제를 써내야만 했다. 졸업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논문에는 고개를 돌렸기에 흥미를 찾기 어려웠다. 


석사학위를 위해 달려가는 대학원생이 되어 부여받은 정체성은 '연구자'다. 깊이 있게 생각하고 조사하여 진리를 따져 보는 행위를 해야 한다는데. 살아온 인생과 너무 거리가 멀었다. 당장 급하지 않으면 궁금해도 미뤄두기 일쑤였고, 알고 싶어 찾아봐도 딱 필요한 깊이 이상은 결코 빠져들지 않았다. 진득한 연구자보다는 얄팍한 임기응변자가 어울리는 내겐 맡기 어려운 역할과 같았다. 실상을 모르고 들어왔지만,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파악하고는 어울리지 않게 논문을 종종 들여다보았다. 즐겨 읽는 책과 똑같이 글씨로 가득한데도 이상하게 집중할 수 없었다. 친해지지 않고는 한 발짝도 나설 수 없는 상황에 오래 부딪혔다. 도망갈 수도 없어 치덕대며 한참을 버텼다. 가까워진 건 아니지만 무작정 붙어있다 보니 낯이 조금씩 익어갔다.


논문은 결국 내가 말하고 싶은 작고 명확한 부분을 정해 논리적으로 증명하고 설명하는 글이다. 다만, 그렇다고 혼자서 마구 멋대로 떠드는 건 안 된다. 나 말고도 수많은 연구자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살피면서 나만의 뾰족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관건. 일 년 동안 다른 이의 논문을 접하며 내린 결론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타인의 깊은 고민을 엿볼 수 있는데, 한 글자는커녕 주제도 정하지 못한 내겐 그저 대단할 뿐이다. 제대로 받아먹지 못했지만, 입학 초기부터 논문에 대한 귀한 조언이 여러 교수님으로부터 이어졌다. 하고 싶은 것 중에서 할 수 있는 것으로 주제를 정해야 끝까지 해낼 수 있고, 연구자라면 자신의 주제와 방향에 확신을 갖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건 쉬웠다. 직접 시작하게 되니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어디서 어디로 출발해야 할지 까마득하다. 


나아지지 않는 고민을 싸매고 있다가 더 늦출 수 없기에 그나마 적절해 보이는 녀석으로 지도 교수님께 인사와 함께 보냈다. 오래지 않아 상냥한 답장을 받았는데, 무한한 응원 옆에 조그만 의문이 묻어있었다. 고뇌 끝에 적어 보낸 졸업 논문 주제가 잘 그려지지 않는다는 타당한 물음표. 스스로 알면서도 모른척하던 걸 남에게 들킨 기분이었다. 애매모호하고 불명확한 모순덩어리를 베테랑이 모를 리 없었다. 다행히 이제 시작이니 여러 주제를 후보로 두고 천천히 찾아가도 된다는 격려가 붙어있었다. 아주 작은 안심에도 완전히 풀어지는 특징을 지닌 나는 이 얘기만 붙들고 방학 내내 생각을 멈췄다. 삶에서 느슨한 지속은 왜 대부분 완전한 중단으로 이어지는 걸까.


비었던 머리를 울려댄 건 새로운 단톡방으로의 초대였다. 같은 교수님께 논문 지도를 받는 동기들이 모였다. 혼자 숨어있으면 마음은 편하지만, 아무것도 진행이 안 되니 일단 뭉쳐서 불편해질 필요가 있었다. 어디든 모이면 이끄는 자를 뽑아야 한다. 이미 원우회 국장에 학회 총무를 하고 있으니 날 시킬 일은 없을 거라 믿고 가만히 있었다. 긴장을 놓은 와중에 갑자기 쑥 추천이 들어왔다. '왠지 모를 신뢰감으로 마음의 감동을 줄 것 같은 분'이라는 사유에 전적으로 반대하며 고사했다.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닐뿐더러 더 이상 무얼 맡으면 아내가 날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충분히 허덕이는 날 보며 추가 일거리는 절대 방어하라는 높은 분의 지시가 있었다. 인상이 강하고 낯이 두꺼우며 거짓말을 있어 보이게 하는 천성 때문인지 뭔가 맡기려는 시도가 자주 벌어진다. 아무튼 이번엔 잘 막았고, 다른 천사 동기가 방장을 자처했다. 이윽고 교수님과 처음으로 만나는 시간에 직면했다.


주기적으로 논문지도 교수님과 담당 학생은 진행 상황을 공유하고 조언을 듣는다. 내버려두면 시간만 축낼 게 뻔한 나를 질질 끌고 가기에 적합한 시스템이다. 첫 번째 만남에서 우리 동기는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앞선 선배들의 지도를 참관하며 감을 잡는 기회로 쓰면 된다고. 정말로 텅 빈 채 참여했다가 당황했다. 첫인사와 함께 현재 관심 있는 주제를 소개해야 했는데, 멈춰둔 생각 탓에 스스로 정했던 내용조차 가물가물해서 혼났다. 최초의 희끄무레한 상태를 그대로 읊을 수는 없으니 급하게 이것저것 살을 보태는 시도를 했는데 별 소용이 없었다. 의문 가득한 스승의 표정을 눈으로 확인했을 뿐. 물론 따뜻한 톤으로 이번 학기 내내 넉넉히 공부하며 결정하면 된다고 달랬다. 바깥의 분위기는 온화했지만, 몸 안으론 초조함이 몰려왔다. 


이어지는 선배의 발표를 지켜보는 건 쉽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와 사연으로 난관에 빠져 곤란과 고통을 호소했다. 돌아오는 교수님의 피드백은 냉정하고 정확했다. 지켜보는 후배가 있어 더욱 난감했을 먼저 입학한 그들을 보며 남 일이 아니라고 느꼈다. 그저 약간의 시차만 있을 게 분명했기에. 가까운 나의 미래를 지켜보는 장면은 곧 끝이 났다. 다음번을 기약하며 헤어지는 길이 편치 않았다. 얼핏 여유 넘치는 시간도 어차피 삽시간에 흘러 사라지고, 후회는 날카로운 추궁이 되어 날 겨눌 테니. 정해진 괴로움을 떨칠 수 있을지 고민이 짙어진다. 빈약한 호기심을 활활 태울 연료가 있으려나. 닥쳐서 허둥지둥 부산을 떠는 건 지겨운데. 부드럽게 헤쳐 나갈 재간은 정녕 없는 걸까. 아득한 의지에 막막한 의심을 품으며 시간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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