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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PAULE Jan 14. 2021

그저 흔한 헤어짐으로

파혼 에필로그


그에게는 벌써 몇 달 전부터 새로운 사람이 생긴듯 했다. 그 애하고만 공유했던 내 인스타그램 계정에 무려 한 달 동안 티나게 들낙거리던 여자. 태어나 온전히 혼자였던 시간이 없었다고, 오롯이 혼자서 자아를 찾아보겠다 했던 사람이었다. 결혼 한 달 전에 그런 소리를 하는 너를 애써 이해하며 놓아줬는데 자기 자신과의 약속도 지키지 못하고 살고 있구나, 싶어서 처음에는 화가 났다. 어디서 어떻게 세 달도 안돼서 파혼한 전 여자친구에게 꼬리를 남기고 다니는 사람을 만난건지 한심해서 안쓰러웠다. 쳇, 나보다 예쁘지도 않고만. 너의 생일날짜를 기록하고, 네 이름과 자기 이름 한 글자를 조합해서 연애중이라는 걸 티내고 다니는 그 여자를 내 눈에 띄게 만든 그가 정말 미웠다. 나는 그녀가 내 레이더에서 한 달동안 얼쩡거리는 걸 참고 참다 그에게 연락을 해서 누가 그렇게 전여자친구를 남겨두면 좋아하겠냐고, 조치를 취해달라 말했다. 그는 온라인에 남은 내 흔적을 하나도 정리하지 않았다고 했다. 지우기 싫어서 놔뒀다고. 내가 지워달라 부탁하자 그는 눈물이 날 것 같다는 말을 남기며 내 요청을 들어줬다. 뭘 이제 와서 또 눈물이 날 것 같대, 바보같은 놈. 그의 여전한 모습. 솔직히 벌써 새 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다고 실망이라고, 맘에도 없는 잘 지내라는 말을 남긴 또 여전한 내 모습.


그 이후로 그 여자는 내 계정에 얼씬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와 대화를 나누고 난 후 태어나 처음 위경련을 겪었다. 최근에 자극적인 걸 먹었냐는 의사의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했더니 ‘스트레스 많으신가봐요’라고 진단했다. 일 년에 병원이라고는 정기 검진과 스케일링 하러 치과 가는 게 전부인 나였기에 생소한 병명을 듣고 병원에서 나와 학교로 돌아오면서 눈물이 났다. 파혼 후 그렇게 잘 참아왔는데 몸이 이제와서 아픈 게 억울했다. 방학 때 진작 좀 아프지 바쁠 때 되니까, 새 사람 있는 것 보고 나니까 아프냐.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통증에 연구실에 올라가지 않고 주차해 둔 내 차에 올라탔다. 혼자 있는 김에 온라인에 남은 흔적을 정리하다 나는 그가 최근에 자주 들은 노래 목록을 발견했다.


우리 손 잡을까요. 지난 날은 다 잊어 버리고.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 주세요.


그가 무슨 심경으로 들었는지 나는 모른다. 새 사람의 마음 고백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나대로 듣고 또 엉엉 울었다. 그가 미운만큼 나는 아직도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가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해주면 모든 상처도 잊어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미련을 털었네, 어쨌네 하면서 고작 노래 하나에 무너지다니. 초라해서 한참을 끅끅거렸다. 그러다 배가 아프기도 하고, 옆 차의 인기척을 느끼고 머쓱함에 나는 울음을 그쳤다. ‘그래, 처음으로 사랑한 사람과 처음으로 헤어졌는데 이 정도는 아플 수 있지, 뭐’ 생각하고 아무 일 없었던 듯 차에서 내렸다. 어쩌면 내 마음은 생판 남의 눈치 보인다고 그칠 눈물 정도밖에 안됐을 지도 모른다.


다행히 내 멘탈만큼 위도 튼튼했다. 의사 말을 잘 듣는 나는 건강식과 처방약으로 금방 회복해서 학기말을 향해 다시 달렸다. 그러면서 지도교수님의 제안으로 갑작스레 지원한 연구원에 운 좋게 합격을 하게 됐다. 위경련으로 병원에 다녀온 날이 서류 마감일이라 나는 차에 앉아 울다 연구실에 올라가서 윗배를 문지르며 지원서를 제출했었다. 전혀 생각치도 못했던 분야의 연구원이기에 반신반의하며 면접을 다녀왔는데 학기를 채 다 마무리하지 못한 채 갑작스레 출근을 시작했다.


계획했던 것과 분야는 다르지만 현실 도피가 아니라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만한 큰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더 내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지름길에 올라탔다. 갖은 고생 끝에 얻은 직장을 때려치우고, 아빠의 폐암 소식을 듣고도 퇴사하고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던 오래된 단단한 신념을 실천할 수 있는 일.나에게 어떻게 이런 기회가 온 걸까, 가끔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그래서 돈을 얼마 주는 지는 상관이 없었다. 이전에 경험한 연구원 정도 받겠거니 했는데 이게 웬걸, 생각치도 못한 수준의 급여를 타고 있다.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 직장에서 지금까지 근속했다고 하더라도 받을 수 없는 수준의 페이와 그만큼 높은 직위. 기대 이상의 대우에 계약서를 쓰고 집에 가는 길에 기분이 째졌다. 연구 조교로 잡아두는 대신 바깥 세상에서 일해보라고 적극적으로 지원을 추천해주신 교수님께 감사한 마음이 넘쳐나 교수님 사랑한다고 운전하며 기뻐 소리질렀다. 그러면서 그 애와 그 애 어머니가 생각났다. 내가 이렇게 빨리 이 정도 벌 줄 알았으면 결혼했을까,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해봤다. 아니, 그 때는 또 다른 이유를 들어 날 거절했을테지. 서강대교를 건너 금의환향하며 소리쳤다.


너랑 헤어지니 일이 이렇게 잘 풀린다!




간만에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의 생각이 났다. 퇴근길에는 늘 생각이 났다. 크리스마스를 지나, 연말을 지나 새해를 맞이하면서 생각이 또 났다. 그를 생각할 때면 알지 못하는 그의 새 사람도 생각났다. 파혼의 아픔을 다 잊은 것도 아닐 거면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사실이 실망스럽긴 했지만 그의 곁에 누군가 있다는 게 그렇게 슬프지는 않았다. 행복이 마음먹기에 달린 줄 모르는 사람이라며 안타까움을 느끼는 건 내가 해야할 일이 아니었다. 그의 행복은 내 몫이 아니었으니. 새 사람을 정말 좋아서 만나든, 새로운 자신을 알아보려 만나든 내 알 바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 문득 그 사람을 만나는 게 그가 행복한 길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서로가 지닌 욕망을 실현시켜 주고 싶어했다. 그 노력이 완벽히 맞아 떨어지진 않았다. 나는 꿈만 꾸고 실천하지 않는 그를 계속 채찍질했고 그는 움직이지 않는 스스로에 괴로워했다. 그는 내가 꿈을 이뤄갈 수 있게 지지한다고 했지만 정작 내가 하는 연구와 내 이상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 의지가 되어주기 보다는 내게 의지해왔고, 그런 점에서 내게 미안해하고 늘 반성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기보다 어린 친구를 만나 ‘오빠 최고’ 소리를 듣는다면, 나를 만날 때보다 더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내 모습이 가끔 어이없어 일을 하다 혼자 웃기도 했다. 그러다 내가 좋아해 마지않는 선우정아의 신곡 ‘동거’를 들었고 나는 이제 정말로 내 사랑이 끝났음을 알았다. 노곤하게 잠든 너를 보고, 네 숨소리를 들으며 평화와 행복을 느낄 수 있었음에, 너의 모든 곳에 입맞출 수 있다고 생각하며 평생을 사랑하리라 다짐한 시간들을 추억으로 남겼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알았다. 나는 너를 언제나 사랑할 것이란 걸.


나보다 쪼그맣지만 지금처럼 차분했던 열 다섯의 너를. 다른 지역의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몸은 떨어졌지만 가끔 내게 전화를 걸던 열 일곱의 너를. 고백했다 차여서 술 먹고 엉엉 울던 나를 위로해주던 나보다 커버린 스물 네 살의 너를. 내가 이렇게 좋아질 줄 몰랐다며 너무 행복해서 무섭다고 말한 스물 다섯의 너를. 미래에 생길 아이보다 언제나 내가 제일 우선이라고 말하던 서른의 너를. 아빠가 돌아가셨을때 곁을 지켜줘서 고마웠다는 내 편지를 읽고 눈시울이 벌개진 서른 둘의 너를. 자아를 찾겠다고, 자기보다 좋은 남자 만나라고 꼭 안아주던 못돼쳐먹은 비겁한 너를. 헤어지고 뒤늦게 울던 찌질한 너를. 정리가 됐다면 언제가 되든 꼭 연락을 주길 바란다는 내 바보같은 마지막 문자에 답이 없는 너를. 늘 건강하고 잘 지내길,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라며. 너를 사랑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새로운 사랑을 다시 할 수 있길 바라며. 결혼 중지가 아닌 그냥 평범하고 흔한 헤어짐으로 인연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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