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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경아 Jul 24. 2023

브랜드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3가지

나의 2023년 상반기를 돌아보며

올해는 20대의 마지막으로, 나이는 숫자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냥 보내기에는 아쉬워서 새로운 계획과 실천을 많이 해보고 있다. 상반기에 중요하게 생각하고 많은 시간을 투자했던 일들을 3가지로 정리했다. 공통점은 브랜드 디자이너에게 꼭 필요하면서 단기간에는 성취할 수 없는 것들이다. 내 자신과 직업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과 노력이 장기적으로 필요하다. 올해는 브랜드 디자이너로서 장기전을 시작하며 하나씩 제대로 준비해 보는 시기로 삼았다.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서의 건강

작년은 여러 이유로 살이 많이 빠진 한 해였는데, 이때 배운 건 신체 건강의 적신호가 정신 건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가벼운 몸이 되어서 좋았으나 점점 허약한 몸이 되어 코로나에 걸리고, 아토피는 다시 심해지고, (위염인 줄 알았던) 기능성 소화장애까지 겪었다. 당연하게도 업무 집중도는 현저히 낮아졌고 일을 비롯한 삶 자체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낮았다. 아프면 다 소용없다는 말도, 육체 건강이 정신 건강을 지배할 수 있다는 말도 맞았다. 그래서 올해는 다른 목표를 위한 건강이 아니라, 건강 자체를 목표로 세웠다.


나에게 맞는 식습관, 수면 시간, 활동 시간 찾기

건강하게 챙겨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데 매일 지치고 피곤하다면? 답은 나에게 있다. 운동 횟수, 식습관, 수면 시간 3가지를 매일 기록하고 그에 따른 컨디션을 분석했다. 하루 1시간씩 주 5회 운동하는 양에 비해 식습관과 수면 시간이 엉망이었다. 탄수화물과 소금을 극도로 제한하며 식단에 강박이 심했고, 당연히 필요한 영양소를 충분히 섭취하지 않아 늘 힘이 없었다. 여기에 새벽시간대 4~5시간의 수면은 지친 몸을 회복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나는 수면 시간이 컨디션에 심하게 영향을 끼치며, 최소 7시간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수면 시간을 바로 잡고 나니, 아침에 가장 빠르고 활발하며, 밤이 될수록 집중력이 바닥나는 아침형 인간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회사 업무 외에 필요한 개인 작업은 밤에서 아침으로 시간대를 옮겼다. 점심, 저녁 위주였던 식습관도 아침과 점심 위주로 바꾸고, 이제는 영양소를 생각하며 필요할 땐 탄수화물도, 소금도 챙겨 먹으려고 노력한다.


매일 기록한 수면 시간, 식습관 그에 따른 컨디션


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시간에 여유가 없어지면 자연스럽게 희생양이 되는 건 나의 건강이다. 특히 나는 운동이 습관화된 사람이니까 건강은 언제나 따라와 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이 강했다. 실제로 수면과 식사가 부족한 상태로 힘겹게 하루를 버티면서, 내가 강철체력을 가진 것 같은 비정상적인 희열감에 빠져있었다. 이제는 올바른 식습관과 수면 시간 그리고 내게 맞는 활동 시간을 잘 알고 활용해야 업무도, 삶의 다른 것도 잘 해낼 수 있음을 안다. 하루 이틀 지킨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정말 평.생 의식하고 관리해야 하는 건강에 대해 작년 하반기에 혹독한 수업료를 내고, 올해 상반기에 제대로 배운 것 같다.





브랜드에 대한 몰입, 끈기 있는 호기심


연초에 퇴사를 계획했었기 때문에 작년이 현재 회사에서 보내는 마지막 해가 될 줄 알았다. 회사에서 다시 보내게 된 올해는 전사의 이미지를 목표로 삼았다. 그냥 전사가 아니라 지옥에서 돌아온(?) 어떤 장애물에도 동요하지 않는 부처 같은 전사.(발렌시아가의 22 FW 컬렉션이 딱 떠올랐다.) 회사를 다시 다니게 된 데에는 나름대로 큰 결심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다른 것보다 작년에 내게 부족했다고 느꼈던 점을 보완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했다. 브랜드를 하나의 생명체로 상상하며 브랜드가 놓인 경제-사회적인 상황에 몰입하고, 브랜드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 끈기 있는 호기심을 발휘하는 것이다.


나에게 전사란 이런 느낌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답을 찾아서

지난 3월부터 회사에서 맡게 된 프로젝트가 있다. 브랜드 디자이너가 마땅히 해야 하는 우리 브랜드의 문제점을 찾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일. 연구-개발 성격을 갖고 있어서 처음 시작할 때 프로젝트의 끝을 아무도 쉽사리 상상하지 못했다. 문제점과 원인이 정확히 무엇인지조차 구성원들끼리 서로 생각하고 느끼는 게 달랐다. 그래서 브랜드 디자이너가 분석하고 정의한 문제점에 대해 구성원들의 공감대를 만드는 단계가 필요했다. 단순히 타 브랜드의 사례 조사를 넘어 하루종일 논문을 살펴보고 구글링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겨보는 날들도 있었다. 적당히 표면적으로 보이는 당장의 문제들만 짚고 넘어간다면 훨씬 빠르게 진행되었겠지만, 벽돌 하나부터 제대로 쌓아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우리 브랜드만의 답을 찾아 상상 속의 우주를 유영하고 있다.


고민하는 크기만큼 회의실 벽을 꽉 채운 시안들


우리 브랜드는 어떤 색일까, 어떤 질감이고 맛과 향이 있다면 어떨까. 고객이 기대하는 바와 이질감이 들지는 않을까. 5개월째 매일 같은 고민을 하다 보니 지치기도 하지만, 디자이너가 브랜드에 몰입할수록, 끊임없이 호기심을 갖고 상상할수록 브랜드의 목적지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은 내가 맡은 브랜드에 충실하자는 게 나의 모토이고, 작년에는 이게 부족했었는데 수치로 따지자면 올해 상반기에는 50% 정도? 상향된 것 같다. 하반기에는 80%까지 올라가길 바라며,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올해 안에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일단락되어 선보일 수 있으면 좋겠다.





’어떤‘ 브랜드 디자이너라는 뾰족한 정체성

브랜드의 정체성을 만드는 직업인만큼 나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것 또한 큰 화두이다. 현재는 회사 소속으로 브랜드를 담당해서 일하고 있지만 나의 성향상 일정 기간이 지나면 환경을 바꾸고 싶어 할 테고, 그러면 계속해서 내가 ’어떤’ 브랜드 디자이너인지 증명해야 하는 순간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


디자인 에이전시 소속으로 다양한 브랜드와 일하다가 패션 회사, 보험 회사로 환경이 다양하게 바뀌면서 고민은 더 깊어졌다. 내가 다른 브랜드 디자이너보다 잘할 수 있는 건 뭐지? 없다면 어떤 걸 잘하고 싶지? 작년 하반기에 운 좋게도 활자 디자이너들의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면서 깨달았다. 첫 번째 활자 ‘길상’을 마무리할 때 다시는 활자 안 그리겠다고 해놓고 두 번째 활자 작업을 시작한 걸 보면, 활자를 너무 좋아하는 나는 정체성을 타이포그래피로 만들고 싶었나 보다.


2780개의 고민을 담는 활자 작업

첫 번째 활자 ‘길상’을 작업하면서 뼈저리게 느꼈지만, 한글 활자를 디자인하는 일은 Adobe KR-9 기준인 한글 2,780자를 모두 그려야 하는 길고 고된 작업이다. 2,780개의 글리프 상자 속에 디자이너의 미적 감각과 상상력, 문제 해결 능력까지 담아내야 한다. 그래서 더욱 두 번째 활자를 그려보는 건 브랜드 디자이너의 정체성을 만드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활자는(넓게는 타이포그래피는) 시각적인 호감과 매력도를 넘어 브랜드에게 필요한 고객과의 정서적,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 수 있다. 목적에 따라 활자는 읽고 쓰는 기능에 충실할 수도, 이미지로서 브랜드의 인상을 만드는 역할이 될 수도 있다. 브랜드의 비전과 전략이 바뀌면 가장 먼저 새로운 로고를 공개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렇게 브랜드 디자이너에게 중요한 무기를 만들기 위해 두 번째 활자 작업을 시작한 셈이다.


나로 향하는 고민과 공부는 언제나 힘든만큼 재밌다.


참여 중인 활자 프로젝트 모임, 동료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다만 이번에는 여러 활자 디자이너들과 함께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프로젝트라서 ‘길상’처럼 나의 생각대로 그릴 수는 없다. 나의 고민은 프로젝트의 목적과 맥락이라는 가이드라인 안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처음에는 이 점이 더 어렵고 갑갑하게 느껴졌지만 스케치를 구체화하고 있는 지금은 오히려 브랜드 디자이너가 여러 제한 조건 안에서 디자인하는 일과 일맥상통하다고 느낀다. 회사 업무 외에 개인 시간을 내서 하는 작업인 만큼 지금의 애정과 호기심을 지키면서 지치지 않고 싶다. 이것도 하반기에는 활자를 소개할 수 있을 정도로 작업이 진행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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