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좁디좁은 취향을 가진 이유
하트시그널4에서 출연자들이 사랑에 대해 각자 정의하는 장면이 나왔다. 꽃말에 빗대어 표현하되 자신이 누구인지 상대방이 추측할 수 있어야 데이트 매칭에 유리했다. 기다리며 인내하는 마음, 욕심나는 마음, 행복하게 해주는 싶은 마음 등 사랑을 대하는 출연자들의 성향을 엿볼 수 있었다.
이 대목에서 ‘사랑’이 내가 갖길 원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사랑에 대한 ‘정의’에서는 원하는 것을 대하는 가치관과 태도가 드러난다. 내가 사랑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어떤 말을 골라야 할까? 그동안 나는 어떤 것을 목표로, 어떤 행동을 고수해 왔지?
내가 말하는 ‘사랑’이란 연인 간의 관계를 포함해서 내게 소중한 것, 이루고 싶은 것을 대하는 태도로 넓은 의미의 ‘사랑’이다. 먼저 내가 어떤 존재를 ‘사랑’이라고 느끼는지 헤아려보면, 아무래도 이성과 논리의 영역을 넘어서서 감성과 직관이 반응을 해야 한다. 직관이 반응한다면? 나는 무조건 웃음이 나온다. 내 눈앞에 있지 않고 상상만 해도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가 버리는 불가항력적인 존재가 나에게 ‘사랑’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공간, 취미, 일의 한 부분까지 모두 생각만 해도 미소가 지어진다. 각각의 대상을 사랑하게 된 데에는 다양한 이유와 맥락이 있지만 명확한 공통점이 있다. 평소 수백 가지 이유와 당위성이 필요한 나에게 단 하나의 이유 없이 존재만으로 확실한 행복이 되어준다는 것이다.
가령 출근해서 한 마디를 나누더라도 내게 확실한 행복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산과 바다에 한 번 가려면 조정해야 하는 일정과 불편함이 훨씬 많지만 나는 늘 산과 바다에 다녀오면 사랑으로 가득 차있다. 매일 저녁을 마무리하는 요가는 아침부터 나를 웃게 하고, (회사 말고)일에 대한 나의 사랑은 소중한 자부심이다.
이렇게 사랑하는 대상을 대할 때의 나는 어떤 모습이지? 무조건적으로 나를 웃게 하는 대상을 만나면 그 대상에 대해 더 알고 싶다. 궁금한 게 너무 많고,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보고 싶다. 평소 나는 세상에 큰 관심이나 호기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물음표 살인마가 되어버린다.
이성 앞에 감정이 나서서 ‘이건 사랑이야!’ 외치면 그때 이성이 앞으로 나와 무조건적인 물음표 공격을 시작한다. 왜 내가 이 대상에 빠질 수밖에 없는지, 이 사랑은 내게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는지, 이 사랑을 지속해야 하는 수백 가지 이유를 만들어 스스로를 이해시킨다.
호기심에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집요하게 물음표 공격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장애물을 만나기도 한다. 이성이라는 녀석은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이유들이 쌓인다면 감성을 설득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줄곧 사랑해 왔고, 앞으로도 사랑할 자신이 있는 대상들을 떠올리면 감정과 이성이 모두 깃든 ‘책임감’이 생긴다. 들어오기 힘들다는 내 마음에 한 번 들인 이상 꾸준하게 사랑하며 함께 깊은 사이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다. 나의 인간관계와 취향이 좁디좁은 이유도 바로 이 책임감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럼 다시 하트시그널 이야기로 돌아가서, 사랑에 대해 내가 정의한다면? ‘견고함’이라는 꽃말을 가진 베로니카를 고르겠다. 본능이 반응하는 대상으로, 직관에 따라 마음을 시작하더라도 이를 유지하려면 감성과 이성이 힘을 합쳐야 한다. 짧은 순간의 설렘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긴 시간 동안 안착되면 비로소 ‘견고함’이 생긴다.
워낙 관심 있는 대상이 좁고, 새로움이라는 자극에 둔해서 이를 단점으로 여기기도 했다. 막상 내가 사랑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에 대해 적어보니 이것도 꽤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직관 아래 탄탄한 논리를 가진 나의 사랑은 누구보다 깊고 견고하니까. 시기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쉽게 흐려지거나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