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더, 조금 더 미지의 세계로
얼마 전 참여한 디자인 컨퍼런스에서 에이전시가 진행한 비공개 프로젝트 과정을 공유하는 순서가 있었다. 초기 시안에서 클라이언트와 방향을 정한 후에 이들이 거치는 특별한 과정이 있었다. 바로 ‘Deep dive’. 확정된 방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일부러 정반대의 방향으로 작업해보고, 원래 있던 디자인 요소를 반전시키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표현 방법을 탐구하며 계속해서 시안을 추가했다. 시안 방향이 정해졌으니 디테일을 챙기며 마무리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이들은 정해진 맥락 안에서 한 번 더 깊게 프로젝트를 탐구하며 다양한 디자인을 실험했다.
Deep dive 과정을 통해 최종으로 나온 결과물 자체도 너무 좋았지만 이들의 태도가 마음에 깊게 남았다. 정답을 알고 있지만 일부러 오답으로 가보는 용기, 비효율 속에서 진짜 효율을 찾아보려는 무모함, 미완의 상태를 인정하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완성도를 끌어올리겠다는 자신감이 보였다.
더불어 내가 일하는 방식은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보게 됐다. 평소 체계를 갖추고 계획을 촘촘히 세워서 이를 준수하려고 기를 쓰는 편이다. 불분명한 방향성이나 불확실한 일정으로 인해 길을 잃고 허비하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대부분 이러다가 막판에 시간에 쫓겨 야근하거나 맘에 들지 않는 완성도인 상태로 내보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일정과 업무 범위를 무리해서 계획하지 않으려는 관성이 있다. 정해진 시간을 활용하는 작업 효율이 가장 중요하고, 초기에 내가 생각하는 정답은 어떻게든 밀어 붙이곤 했다. 속도와 효율이 중요하니 당장 오답이라는 생각이 들면 끝까지 거들떠보지 않았다.
내 방식에는 장점이 많지만 체계와 계획이라는 틀 안에 스스로 얽매여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내가 놓친 수많은 가능성들이 있지 않을까? 가보지 않은 길에서 발견한 것이 새로운 정답이 되거나, 정답이라고 생각한 길 바로 옆에서 진짜 지름길을 발견한다니. 이런 생각은 전혀 해보지 못했다. 내가 만든 작은 작업 세계 안에서만 움직이려고 하니 시야의 확장과 사고의 유연함이 점점 부족해졌던 것 같다.
요즘 하는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 일하는 디자이너 고경아를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레벨업할 지에 대해서다. 경험치가 쌓일수록 이에 의존하며 스스로에게 확신이 커진다. 확신은 일에 추진력을 주고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만 양날의 검과 같다. 그동안 나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존재가 있었다면 그 중 하나는 확신인 것 같다. 확신으로 가득찬 상태에서는 내가 내린 정답을 의심해 볼 여지가 생기기 않으니까. 그래서 나에겐 정답일지, 오답일지 모를 어딘가로 Deep dive 해보는 용기와 무모함이 필요하다.
앞으로는 Deep dive 라는 말 그대로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결과물을 위해 생각과 몸을 내던지는 경험을 더 해보고 싶다. 정답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하나의 정답으로 정해졌다면 그 속으로 깊게 뛰어드는 일. 나에 대한 확신은 다른 가능성을 탐구하는 용기로 활용해보기. 내가 레벨업을 원한다면 한 번 더 숨을 깊게 들이쉬고, 조금 더 멀리까지 뛰어드는 Deep diver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