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 15.
오늘 길은 깊은 산으로 계속 이어졌다. 계속 오르는 길이었지만 경사가 급하지는 않았다. 며칠동안 바다를 보면서 걸었더니, 바다가 없어도 아쉽지는 않았다.
오늘 숙소는 세나루차의 수도원(Monastery de Zenarruza)이다. 이곳에 도착하니 말하는 것을 그리 즐기지 않는 수사가 나타나서 방까지 데려다 주고 최소한의 단어와 몸짓으로 설명해준다. 그 사무적인 태도에는 약간의 비통함이 배어있었다. 괴로운 지상의 삶이 아직 보상받기 전이니 놀랄일도 아니다. 그의 나이는 예순 정도 되어보였는데, 꼿꼿한 허리와 힘있는 눈을 보아하니 지상의 삶이 아직도 한참 남아있을 것이다. 수도원의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서 다른 수사를 마주쳤을 때, 그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40년 정도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념품 가게 카운터에 앉아서 기도하듯 졸고있는 수사는 백살은 되어 보였다. 구부정한 몸통 위에 매달린 머리는 앞으로 쪽 빠져있어서 당장이라도 뚝 떨어져나와 바닥에 데굴데굴 구를것 같았다. 내가 인기척을 낸 뒤 그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는데 걸린 시간만 해도 상당했다.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 위에 의아하면서도 엄숙한 표정으로 단장하는 데, 나는 그 시시각각의 표정 변화 단계를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둘러봐도 되냐고 물으니 답은 안하고 씩 웃기만 한다. 엄숙함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사람좋은 웃음이 떠오른다. 그 웃음으로 해결했던 인간사가 얼마나 많았을까. 나는 가게를 천천히 둘러보려고 했지만 사실 볼게 별로 없었다. 살만한 것은 더욱 없었다. 엽서는 모퉁이가 다 바래져있었고 가리비모양 장신구는 먹고 버리는 가리비껍데기보다 못했다. 그래도 수도원에서 만든 트래피스트 맥주가 있기에, 맥주면 맛없어도 어느정도 먹을만할텐데 저 수사가 만든거라면 장담할 수 없겠는걸 하는 기분으로 한 병 골랐다.
내가 내민 돈은 오십유로짜리였는데, 그는 부탄의 종이돈을 보듯 한참 동안이나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한장인지 두장인지 구분하려는 듯 몇번이나 비벼본다. 그리고 돈통을 둔 곳으로 여정을 시작한다. 오미터 거리를 일분 정도 걸려 도착해서 돈통을 열어보더니 오른 손바닥으로 자기 이마를 탁 친다. 잔돈을 채워넣지 않은 것이다. 이마를 치는 이 동작은 대단히 빨라서 지금까지의 느린 동작들이 모두 일종의 수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머니를 다 뒤져 구겨진 오유로짜리 하나를 발견하고 대신 내어준다. 그는 천천히 일유로 동전 하나를 내준다. 다시 평온하고 느린 동작으로 돌아왔다.
맥주를 벨기에인 렌힐더와 나눠마신다. 렌힐더가 나에게 묻는다. 이 먼길까지 왜 오는가. 너네 나라에는 걸을만한 길이 없나. 나는 답한다. 뭔가가 허전해서 걷게 되었고 예전의 기억과 추억을 되살리고 싶어서 걷는다고. 한국에도 걸을 수 있는 길이 있지만 이곳과 같지는 않다고. 대화를 하다보니 그녀의 가족사를 듣게 되었다. 그녀의 남매, 남편, 자식이 자폐증이 있고, 최근에는 백혈병에 걸린 어머니도 돌보기 시작했다. 매일 출근하는 직장도 있다. 그녀는 당시의 현실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그만, 지금 산티아고 길을 걷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 같아, 라고 가족들에게 선언하고 이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녀는 선택지가 있다고 하면 결혼을 하지 않고 자식을 갖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얘기를 듣는 동안 잠깐 눈이 촉촉해졌다. 그녀의 가장 큰 걱정은 그녀가 죽으면 자폐가 심한 둘째 아들을 누가 돌보는지의 문제이다. 그녀의 여생동안 이런 걱정 없이 보낼 수 있는 날이 단 하루라도 올까.
저녁 미사 후, 수도원에서 엄청나게 큰 광주리에 한 가득 담긴 파스타를 주었다. 여덟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나누어 먹었는데, 반의 반도 비울 수 없었다. 밍밍했지만 따뜻했고, 어차피 다 먹지 못할테지만 압도적인 양이 눈앞에 있으니 마음도 넉넉해졌다. 주된 대화는 유럽의 이민자 문제와 북한에 대한 것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 작은 마을에서 처음으로 흑인을 보았다고 랜힐더가 얘기를 꺼냈고, 문신이 많은 이탈리아인이 말도 안되는 설명 - 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로 몰래 숨어들어온 이민자들인데 마피아에게 밉보여서 이곳 스페인까지 쫓겨왔다는 - 을 했다. 북한이 미국과 전쟁을 한 것 같으냐, 김정은은 어떤 사람이냐 이런 질문들을 나에게 하기도 했다. 나는 전장을 뚫고 지나온 스파이라도 되는 양 이건 대단히 중요한거라 전부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조금 알려주자면, 이라는 분위기로 몇마디 해주었고,유럽인들은 비밀 정보라도 얻은 것인양 고개를 진지하게 끄덕였다. 내심 감탄하는 눈치였다.
식사를 마치고 설겆이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오자 남편과 같이 걷는 부인이 자연스럽게 싱크대 앞에 섰다. 나는 설겆이를 내가 하겠다며 그녀를 제지했고, 그녀는 나를 보조한 뒤 설겆이가 끝나자 몇마디 칭찬을 해주었다. 거기에는 약간의 어색함이 배어있었다. 나는 그녀의 남편이 평생동안 단 한 번도 그녀를 위해 설겆이를 해준 적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