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 14.
어제 데바에 들어서기 전, 초록 구릉이 겹겹이 내다보이는 곳에 시드라 무인판매대를 보았다. 와인병 크기 시드라를 몇 병 가져다놓고, 한 병에 이유로를 돈통에 넣고 마시라는 메모가 보였다. 호기심에 한병을 사서 땄다. 발효 냄새가 강하게 났다. 에이치와 나는 주거니받거니 병째 마셨고, 지나가던 큰 키의 네덜란드인 여자애 둘이 호기심을 보이길래 한모금씩 나눠주었다. 그런데 내 배가 부글거리기 시작하더니 결국 탈이 났다. 저녁식사는 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홍콩인 I가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한 것을 거절하지 못했고 결국 속이 한번 더 뒤집혔다.
다음 날 오전에 조금 걷다가 길가에 어제 먹은것을 다 토해냈다. 속은 편안해졌는데 몸에 힘이 남아있지 않았고 어지러웠다. 쉬고 싶은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찼다. 걷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물을 마시고 음식을 먹고 걷는다. 걷다가 지치면 쉰다. 그런데 몸이 안좋아지면 조금도 쉽지 않다. 평범하게 걷는 것은 훌륭한 능력이고, 그 능력을 갖추려면 어느 정도 운도 따라야 하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제 자라우츠 초입에서 한쪽 다리의 무릎 아래쪽이 없는 사람이 한발로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것을 보았다. 그는 두 손으로 스틱을 쥐고 마치 스키를 타듯 스윙을 했다. 길을 건너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인지 그는 굳이 차도 중앙으로 달리고 있었다. 뒤를 따라오는 차들은 감히 속도도 높이지 못하고 클랙션도 울리지 못했다. 그에게는 평범하게 걸을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걷기 위해 필요한 운이 다한 것이다. 그 대신 자기의 실존을 내걸고 스케이트를 탄다. 다한 운보다 몇십배는 큰 의지와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어제 그를 보았을 때 난 내가 그의 처지가 아니고, 길 한가운데서 스케이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했을 뿐, 그의 위대함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복통으로 인해 오늘 걷기를 포기하게 되자, 다리 하나로 도로 한복판을 내달린 그가 불사조나 다름 없다고 느꼈다.
결국 두어시간을 걸어 사킬로 정도 떨어진 이비리에서 멈췄다. 이곳은 인가도 거의 없고 식당도 상점도 없지만, 알베르게는 하나 있다. 그런데 도착시간이 너무 일렀다. 열한시가 좀 넘은 시간이니, 오후 세시까지 한참동안 버텨야 하는 것이다. 옷을 최대한 껴입고 알베르게 앞 벤치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의자 팔걸이 밑으로 두 발을 집어넣으니 누울만 했다. 그렇게 한시간 좀 넘게 뒤척이다가 허리가 아파서 일어나 멍하니 앉았다. 두세시간을 어떻게 더 버티지.
그런데 그 때 몸집이 좋고 목소리가 걸걸한 여주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오늘 문을 열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 아마 어제 손님이 하나도 없었을 수도 있고, 오늘이 일요일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이곳 위치상 성수기가 지나면 장사가 잘 되기 어려운 곳이다. 그런데 동네사람이 페레그리노 하나가 알베르게 앞에서 자고 있다고 귀띔해주었다고 한다. 당신을 위해 문을 열기로 했어요. 이곳 전체가 당신을 위한 곳입니다. 마음껏 쓰세요. 잔뜩 과장한 투가 오히려 듣기 좋다.
그녀가 혼자 꾸려가는 이 알베르게는 하룻밤에 13유로로 싸지는 않지만, 최대한 페레그리노를 배려한 것을 알 수 있다. 짐을 넣는 락카, 침대 맡에 둘수 있는 바구니, 화장실에 비치한 향(비록 아무도 불을 붙일 것 같지 않지만), 침대옆에 은은한 전등.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덩치도 좋고 고생도 어느정도 해본 것 같은데, 자상함과 함께 위엄이 느껴졌다. 그녀가 딸에게 말하는 것을 보면, 한껏 웃으면서 이야기하는데도 딸이 조용히 일어나 자기 장난감을 치운다. 저녁에 그녀는 한손에 담배를 들고 딸에게 나지막하게 이야기를 하고, 딸은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 시간이 더 지나 귀가할 때가 되자, 딸이 엄마 손을 꼭 붙들고 재잘거리면서 걸어간다. 나는 그들이 사라진 어둠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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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대화한 사람 중 독일인 레아나는 아버지가 한국인이다. 아버지. 이름을 물어보니 김이숙이라고 하는데, 본명인지는 알기 어렵다고 한다. 세살 무렵에 쇼핑몰에 버려져있었고 그를 발견한 독일인이 입양을 한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오늘로 두달째. 그녀는 아버지를 위해 이 길을 걷는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그녀에게서 그늘이 약간 느껴졌다. 아버지의 사망은 자녀를 한편 성숙하게 한다. 그러나 어떤 때는 꼼짝달삭 못하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를 깨닫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앞으로 그녀 앞에 놓인 기복이 적잖을 것이지만, 까미노를 걷는 시간만큼은 나같은 이방인에게 이야기를 털어 놓을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한, 그녀는 괜찮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