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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성 Dec 08. 2019

자라우츠 - 데바

2019. 10. 13. 

자라우츠에서 헤타이아, 후마이아를 거쳐 데바로 가는 길이었다. 바다를 내다보며 시골길을 계속 걷는 유쾌한 날이었다. 후마이아와 데바 사이 길목에 영업 준비중인 식당이 하나 있었고, 식당 앞에 배낭을 내려놓고 한숨 돌리려했다. 식당 문 앞 하수구에서 낙엽을 치우는 청소를 하던 여자애가 나에게 말을 건다. 나보고 뭔가 마시고 싶냐고 묻더니 식당 안쪽 바bar로 데려가준다. 조금 있다 바텐더가 나타났는데, 주인이나 적어도 지배인쯤 되어보였다. 콜라 한잔을 내가 주문하자 바텐더는 무뚝뚝하고 간결한 동작으로 유리잔에 얼음을 채우더니 레몬을 한조각 올리고 콜라 한병을 모두 부어서 내어준다. 나는 잔을 들고 다시 식당 밖으로 나와서 그 여자애와 말을 계속했다. 영업 준비중인 식당에서 뭔가를 주문해서 마신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여자애는 청소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러더니 나에게 시드라를 맛보겠냐고 묻는다. 시드라는 사과를 발효시켜 만든 술이다. 여자애는 식당 안으로 다시 나를 데려가더니 커다란 숙성통에서 시드라를 따라주었다. 시드라는 공기와의 접촉면을 늘리기 위해 통과 잔 사이를 멀게 해서 길게 따르고, 딱 한모금 마실만큼만 따라내서 한 입에 털어넣고, 잔에 남은 것이 있으면 버린다고 한다. 여자애는 신나하면서 설명해주었다. 


시드라를 몇 잔 얻어마시고 내가 얼마냐고 물으니 여자애는 약간 당황한다. 여자애는 바텐더에게 물어보더니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웃으면서 말해준다. 아차. 여자애는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지만 자기 재량으로 이방인에게 시드라 몇 잔 정도는 내 줄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얼마라고 묻자 나는 손님으로 격하되었고, 여자애에게 손님에게 공짜술을 줄 만한 재량은 없는 것이다. 


식당을 떠나면서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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