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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성 May 08. 2020

곧 아흔 살

아침에 사무실에서 진한 커피로 속을 달래고 가벼운 피아노 곡으로 머리를 달래는 중이었다. 그런데 탁하고 높은 톤에 자기 말만 하는 노인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오분 뒤에 직원이 내 방 문을 두드린다. 나이가 좀 많으세요. 나는 그 노인 얘기를 잠깐만 들어주고 오분 안에 내 커피와 피아노로 돌아오려고 했다.  


그런데 건네받은 노트에 적혀있는 그의 생년이 1927년이었다. 지금은 2020년. 7년 뒤면 2027년. 그 차이는 100년.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에게 태어난 해를 직접 물으니 1932년생이라고 한다. 가호적 신고를 할때 군역을 피하려고 친구가 그렇게 해버렸단다. 그래도 88년을 넘게 살아온 것이다.


나는 개인적인 호기심을 감추지 않고 이리저리 물었다. 고향은 어디세요. 황해도 장연군인데. 거기가 어디예요? 아마 해주에서 백오십리, 이백리 되나. 어렸을때 기억 나세요? 다른건 기억 잘 안나는데 다섯살 때 엽전같은 동전을 실에 꿰어서 목에 걸고 다닌건 기억나. 진짜 일본군 순사들이 칼차고 다녔나요? 아 그것도 그랬지. 젊었을때 무슨일 하셨길래 이렇게 정정하세요? 버스 운전. 대단하시네요. 그래도 하루하루가 달라. 사모님은요? 한살 어려. 잘 못움직여. 아드님은요? 둘째가 예순 다섯. 셋째가 예순. 대단하시네요. 손자가 서른살이야.


내가 감탄을 연발하니 기분이 좋아졌는지 싱겁게 웃는다. 웃는 표정이 소탈해보였다. 얼굴에서 욕심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는 언제죽을지 모르니까라는 말을 두어번 했다.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에서 욕심이 사라지는 것일까. 그리움이나 질투심도 사라지는 것일까. 혹은 고통없이 죽고싶다는 욕심이 다른 감정들을 압도하게 될까. 이런것도 욕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조금도 짐작이 가지 않았다.  


화장실이 어디냐고 묻길래, 그를 화장실 입구까지 데려다주었다. 나도 화장실 앞까지 가니 요의를 느껴서 나란히 서서 소변을 보았다. 먼저 갈께요, 찾아오실 수 있죠. 아 그럼. 상담을 마치고 내 명함을 건냈다. 글씨 보이세요? 음 이게. 나는 큰글씨로 내 핸드폰 번호를 적어주었다. 그는 그게 고마웠는지 씩 웃는다. 역시 그 소탈한 웃음이다.


그가 언제죽을지 모르는데라는 말을 언제부터 해왔는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 말을 할 수 있기를 빈다. 그리고 언젠가 그가 죽는순간이 올 때, 그의 지갑이나 서랍장에 연필로 내 핸드폰 번호가 쓰여진 명함이 그대로 있으면 좋겠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지만,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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