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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Feb 06. 2020

네가 내 고양이라 참 다행이야

집사는 처음이라

결혼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많이 지쳐있었다.

건강해 지기 위해 퇴사를 선택했지만, 이미 날이 바짝 서 있었고, 매사 신경질적이었다.

이런 나를 보며 남편은 '고양이 키워볼까?'라는 조심스러운 제안 했지만, 나는 나를 돌보는 것도 버거웠고 무언가를 책임질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거절했다. 대신 랜선 집사가 되기로 했다. 유명한 집사들의 SNS를 팔로우하고, 게시물을 보며 나도 모르게 '만약에 고양이를 키운다면 캣타워는 여기에, 밥그릇과 물그릇은 여기에, 음... 스크래쳐는 여기가 좋겠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결국 남편에게 고양이 입양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평소 고양이를 좋아했던 남편은 흔쾌히 동의했고 고양이 분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가정 분양을 받아야 한다고 해서 가정 분양을 알아보는데 정말 묘연이라는 게 있는지 운명처럼 입양 게시글에 올라온 고양이 한 마리를 보자마자 반해버렸고, 우리는 일주일 만에 새 식구를 맞이할 준비를 끝냈고 주말에 우리 고양이를 만나러 갔다.


꼬물꼬물 아기 고양이들 사이에 파란색 목걸이를 하고 있던 내 고양이 '야미'

수줍음이 많던 녀석, 엄마와 아빠 그리고 형제들 사이에서 억지로 떼어내는 것 같아 마음이 울컥했다.

동시에 이 녀석의 묘생이 행복할 수 있도록 따뜻하게 품어줘야 겠다라는 사명감이 들었다.  

붙임성이 좋은 야미 아빠는 떠나는 야미와 우리를 배웅해 줬고, 수줍음이 많은 엄마 고양이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건강하게 잘 먹고 잘 크라는 의미에서 야미라는 이름을  갖게 된 우리의 새 식구 야미는 이동장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삐약삐약 울어댔고, 차 안에서는 이동장에서 꺼내 달라고 작은 이빨로 이동장을 물어뜯었다.

모든 게 처음인 집사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고, 야미를 이동장에서 꺼내 살포시 안고 갔다.

860g의 작은 고양이가 드디어 우리 집에 왔다!

차 안에서는 그렇게 꺼내 달라고 아우성을 치더니, 막상 집에 도착하자

이동장이 가장 안전한 곳이라도 되는냥 나오지 않았고 안에서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살피기만 했다.

미리 사 둔 고양이 장난감을 신나게 흔들었고 야미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더니 맹렬하게 장난감 사냥을 시작했다. 맹수의 모습을 가감없이 드러내던 야미, 그 모습을 보곤 쉽게 집에 적응하겠구나 했는데....

이내 소파 뒤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나오지 않았다. 스스로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기에 혼자 쉴 수 있도록 내버려 두고 우리는 파스타를 신나게 볶아서 먹으려고 준비를 하는데, 어디선가 삐약삐약 소리가 나더니

소파에서 빼꼼 얼굴을 내밀고 있는 우리 야미

새우 볶는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 건지 나오자마자 오도독 오도독 사료를 먹더니 물도 챱챱 야무지게 마시곤

마치 처음부터 이 집에 살았던 것처럼 소파 위를 신나게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아기 고양이에게는 높은 소파를 낑낑거리며 올라가선 쿠션 냄새도 맡고 도도도 뛰어다니기도 하고,

집사들이 흔드는 장난감을 온 힘을 다해 사냥하기도 하고, 능숙하게 스크래쳐 위에 올라가서 발톱정리도 하고,우리 집에 온 지 반나절 만에 야미는 우리집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하지만, 문제는 다 괜찮다고 생각된 시점부터 시작됐다.

밥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야미는 먹었던걸 도로 게워냈다.

혹 아기 고양이라 사료를 씹어 먹는 게 힘들어서 그런건가 해서 사료를 물에 게워주거나, 사료를 잘게 부수어서 줬으나 야미는 그런 사료는 입에 대지도 않았다.

초보집사는 고양이 구토를 검색 해 보며 고양이 구토에 대해 열심히 알아봤으나 고양이에게 구토는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라고만 되어 있을 뿐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그래서 정말 괜찮은 줄 알았다.

하지만 오랜 시간 야미와 붙어있다 보니 구토의 횟수가 너무 잦았고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처음 야미를 데려간 동물병원을 재방문했고 그저 아기 고양이라... 고양이 구토는 잦은 일이라... 습식을 먹여보는 게 어떻겠냐라는 임시방편의 답변만 들었을 뿐 뚜렷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다른 동물 병원을 방문했고 야미의 영상을 보여드리며 증상을 자세히 설명하자 수의사 선생님께서는 곤란하다는 표정과 함께 '이런 경우는 정말 드물지만, 식도의 문제일 수 있어요. 고양이에게서는 거의 발생되지 않는 희귀한 질병이고 대형견에서 주로 발견되는 질병이에요.'라고 말씀하시며 '우선 부드러운 습식 캔을 급여하고 아이를 한 번 데려와 보세요'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우리 부부는 무거운 마음으로 야미의 습식 캔을 사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느 '아기가 아픈게 이런느낌일까? 고양이가 아픈데 집안이 우울한거 같아'라는 이야기를 했던것 같다. 고작 고양이가 아플 뿐인데 우리 일상은 어두워졌고 걱정이 가득해졌다.  

야미가 와서 너무 행복하지만, 한편으론 많이 아픈 게 아닐까, 많이 아픈 고양이를 데려온 거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고민이 시작됐다. 우리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야미는 여전히 발랄했고 귀여웠고 사랑스러웠다.

건사료를 먹을 땐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냥냥 거리며 힘들어하고 구토를 하곤 했는데,

습식사료는 만족의 기지개까지 켜가면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야미 식도 X레이 촬영을 했다.

수의사 선생님은 식도 문제가 맞는 거 같다라는 말씀을 해 주시며, 현재 식도가 붙어있기 때문에 건식사료를 넘기지 못하고 구토하는 현상이 반복되는 것이라며 습식사료를 주고 건식의 경우 조금씩 나눠서 급여해 보라고 말씀해 주셨다. 눈앞이 깜깜해진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안겨있는 야미를 쓰다듬어줄 수밖에 없었다.


좀 더 정확하게 확인을 하려면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 봐야 하고 본질적으로 고치기 위해서는 수술을 해야 하는데 큰 수술인 만큼 쉽지 않다는 이야기도 해 주셨다. 그리곤 처음 고양이를 키우시는데 아픈 고양이를 돌보기가 괜찮은지도 물어보시며, 신중하게 생각하라는 말씀도 해 주셨다. 남편과 나는 야미와 계속 함께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우리가 주로 나눈 문제들은

1. 사료 문제

지금 당장이야 습식사료를 주며 케어할 수 있지만 (당시 나는 백수였음으로),

장기적으로 관리가 될지와 비용의 문제, 우리가 여행을 갔을 경우 어떻게 하지?


2. 수술

큰 병원에 가서 검사만 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100만 원이 넘고 수술을 한다고 하면 그 비용은 더 늘어날 텐데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수술이 위험하다고 하는데 하는 게 맞을까?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미와 함께

건강한 고양이였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고양이를 다시 돌려보내야 하는지

다시 돌려보낸다면 거기서 제대로 된 케어를 받을 수 있을까?  


대략적으로 위 3가지 문제들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비용의 문제였고 그다음 문제로는 케어의 문제 마지막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할 수 있느냐 우리의 문제였다. 우리는 우선 야미를 분양해 준 가정에 연락을 했고 이런저런 자초지종을 설명드렸다.

분양자는 이미 고양이들이 많아 야미를 케어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우리도 다른 고양이들보다 많은 관심과 케어가 필요한 야미를 돌려보낼 수 없었고, 우리가 데려온 아이이고 이미 우리 식구니까 힘들더라도 끝까지 책임지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야미를 데려온 그날부터 야미의 묘생을 끝까지 함께 하겠노라 약속했음으로..

결론을 내리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우리는 가장 먼저 야미 습식 캔을 대량을 주문했다.(당시 야미는 집사들 밥보다 훨씬 비싼 밥을 먹었다)

그리고 수의사 선생님이 일러주신 대로 건사료를 소량으로 조금씩 급여했고 점차 그 양을 늘려갔다.

정확한 계량을 위해 전자저울도 샀으며 사진도 찍어가며 꼼꼼하게 기록했다.

다행스럽게도 야미는 조금씩 커갈수록 건사료를 먹고 게워내는 일이 줄어들었다(물론 매우 소량이긴 했지만)

예방접종을 가서도 꾸준히 수의사 선생님과 야미 경과에 대해 이야기하며 야미와 우리 부부가 행복하게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갔다. 우리는 소량의 건사료를 꾸준히 급여하기 위해 자동급식기를 주문했고 지금까지

야미의 밥 메이트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퇴근하고 현관문을 들어서면 언제나 졸린 눈을 하고 마중을 나오는 야미는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중문을 사이에 두고 냥냥냥 거리다가 중문에 들어서면 온몸을 비비고 때로는 배를 뒤집으면 열렬하게 집사의 귀환을 환영해 준다.(요즘은 쫌 컸다고 배를 뒤집진 않는다. 누가 고양이 아니랄까봐 도도하다.)


야미가 우리 집에 온 지 어언 512일

병원에 가면 또래보다 작다고 수의사 선생님이 걱정 어린 말씀을 해 주시곤 했는데,

그래서 분유도 사서 먹이고 습식 캔도 아낌없이 퍼줬었는데,

지금 야미는 또래보다 건장한 체격을 자랑하는 어엿한 성묘이며,(대략 5kg..?)

고양이 확대범

밥시간이 다가오면 자동급식기 앞에서 대기하는 먹보 고양이가 되었다.(이제 더 이상 구토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다시 직장인이 되었고 바짝 서 있던 날은 무뎌졌으며 야미를 짝사랑하는 야미 바라기가 되었고,

남편은 야미를 한번씩 놀려주고 트릿을 던져주는 게 일상이 되었으며, 우리는 아무리 피곤해도 야미 물 갈아주기, 낚시대 흔들기, 화장실 청소하기를 미루지 않는 천상 집사가 되었다.

만약 야미가 아프다는 이유로 야미를 외면했었더라면 지금 느끼는 행복은 느끼지 못했겠지.

야미가 다른 고양이들보다 잔병치례가 많은 고양이라서 우리는 야미가 밥을 잘 먹는것만으로도

화장실에서 건강한 맛동산을 만들어 내는 것 만으로도 더 큰 기쁨을 느끼며 행복한 집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야미가 우리에게 와 줘서 그리고 야미가 우리 고양이라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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