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뺄 수 없는 나이.

by 쑥쑤루쑥

건강검진을 했다. 1년에 한 번 고구려 벽화 속 여인이 되는 날이다. 개량한복스러운 복장을 하고. 부품처럼 이 방 저 방을 옮겨 다니며 도장을 깨다 마지막 코스로 수면 내시경을 하고 나면, 1년 치 숙제 검사는 끝난다. 결과가 무척 빨리 나왔다. 병원발 등기 우편은 언제나 나를 긴장하게 한다. 올해는 또 어떤 커멘트가 떴으려나. 해가 갈수록 결과지에 깨알 같은 글씨가 빼곡해진다. 영락없이 올해도 새로운 숙제를 많이 받았다.


빛나는 성과는 단 하나. 내장지방 줄인 것. 하지만, 체중이 빠져버렸다. 그것도 7kg이나. 원인은 아마도 스트레스일 것이다. 지독한 불안은 잊을만하면 한 번씩 찾아와 몇 달을 내리 과호흡과 식욕부진을 선사한다. 프리랜서로 하는 일도 정기적인 스트레스 구간이 있다. 다음 한 해도 내 성격, 날 둘러싼 상황, 내 일은 그대로일 텐데 그럼 여기서 살이 더 빠지나. 안 돼!


친구를 만났다. 아이 둘을 낳고도 여전히 예쁘고 날씬한 친구다. 항상 건강관리에 진심이다. 한 달을 열심히 유산소 운동을 하고 체중계에 섰는데, 살이 전혀 빠지지 않았더란다. 알고 보니, 우리 나이는 열심히 운동해도 살은 잘 빠지지 않고, 심혈관계 질환 발병률을 낮출 뿐이라고 한다. 우리는 슬프게 웃어제꼈다.


노후에 도사리는 질병은 무수하지만, 예방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는 나이. 그러니, 그저 확률을 낮추기 위한 것에 방점을 찍고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건강관리의 최선인 나이. 가족력이 슬슬 두려워지는 나이. 이제는 살을 빼고 싶어도 마음대로 뺄 수 없는 나이. 건강을 위해 어느 정도의 체중은 사수해야 하는 나이. 그럼에도 지키려 마음먹는다고 다 지킬 수 있는 게 아님을 조금씩 알아가는 나이. 마흔은 그런 나이인 걸까.




사진: UnsplashDiana Polekh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