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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쑤루쑥 Aug 28. 2024

학군지의 베짱이.

큰 동심이는 몇 년째 장래희망이 종이접기 아티스트다. 시중의 웬만한 종이접기 책은 일찌감치 마스터하고, 지금은 웬만한 어른은 따라도 못할 온갖 걸 만들어낸다. 그중엔 거대한 한 장으로 가위질 없이 입체를 완성하는 '오리가미'도 있다. 처음엔 그냥 취미인가 보다 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종이접기를 좋아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진지하게 업으로 삼고 싶어 했다. 


김영만 아저씨 말고는 직업인으로 떠오르는 이가 없어 도대체 종이 접기로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라는 물음이 왜 안 나왔겠냐만. 아이 앞에서는 어렵사리 꿀꺽 삼키고 말았다. 그리고 알아본 게 종이접기 자격증이었다. 자격증이라곤 하나 내용은 아이에게 시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체계적으로 뭔가를 발전시켜 나간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나 보다. 그렇게, 방학 때마다 종이접기 공방에서 자격증을 이수하는 중이다. 


거기다 필요하다는 각종 색종이를 사준다. 매미날개보다 얇다는 선익지가 집에 있다. 전문가용 색종이가 집에 적잖이 공수된다. 무엇보다. 책상 앞에서 사부작거리며 저 좋다는 걸 할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학원 스케줄을 무리하게 잡지 않는다. 집에서는 현실적 고민일랑 꼴깍 삼키고 이런 식으로 나름대로 지원을 해주다 보니, 언젠가는 수학 학원 원장님으로부터 들은 얘기가 무척 남다르게 느껴졌나 보다. 종이접기는 취미로 하고 그 좋은 손재주로 치과 의사에 도전하면 어떻겠냐는. 왜 아니겠는가. '의치수약한'을 위해 초등학교부터 내달리는 동네에서. 


그뿐만이 아니다. 큰 동심이는 기타를 배우고 있다. 벌써 3년을 꽉 채워간다. 이젠 제법 멜로디가 연결이 된다. 기타를 받치려고 다리를 꼰 자세도 안정적이고, 손동작도 제법 화려하다. 주말이면 아이가 치는 기타 소리가 온 집안에 울려 퍼진다. 그러면 나는 신기해서 그때마다 폴짝폴짝 뛰며 촬영하는 관객이 된다. 


입시 레이스 중에도, 그 후에도 살면서 힘들어질 때 숨통을 틀 수 있는 즐길 거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본인이 좋아하는 걸 마음껏 탐색하고 몰두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아이가 어릴 때 충분히 누리게 해 주고 싶었다. 대신, 선행학습이 필수인 동네에서 사교육 투입 시간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부족한 건 감수해야 했다. 내가 관찰한 게 맞다면, 시작이 늦더라도 그리 어렵지 않게 따라잡을 수 있을 거란 판단도 있었다. 


누군가는 대단하다고 했고,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나도 걱정이 앞서기 시작한다. 이제 고학년이 되서일 거다. 중학생이 되면 지금의 예체능을 과감히 줄여야 할 거다. 그 자리를 아마도 국영수사과 중 어느 과목의 사교육이 채울 것이다. 그 또한 너무 늦지 않게 정비를 하려다 보니 부쩍 마음이 조급해지는 요즘이다. 예체능을 조금 줄이고 억지로라도 공부하는 습관을 들였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마음이 무거운 순간도 있다. 하지만, 공부도 스스로 발동이 걸리지 않으면 푸쉬하는데 한계가 있고, 되려 부모자식관계만 망치는 걸 많이 봐왔다. 잘한 것 같기도 하고 후회스럽기도 하고 이랬다 저랬다 하기가 눈 깜빡이는 것만큼 쉽고도 잦다. 학군지에서 베짱이를 키우는 기분이란 이런 것일 거다. 베짱이야, 너는 이 내 마음을 알간? 




사진: UnsplashDaniil Zameshae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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