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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테나 Mar 30. 2023

낯선 땅에서의 핫요가

인생에 요가 한 스푼 | 1. 호주에서 경험한 인생 첫 요가


호주 생활의 시작


 호주는 여름에 건조하고 겨울에 습하다. 그래서 기온은 더 높지만 그늘만 잘 찾으면 오히려 쾌적하고, 겨울은 비교적 스산하게 추운 것은 없다. 물론 난방시스템과 건축이 매우 달라서 집에서는 오히려 추웠던 것 같다.


 2014년 9월 처음 호주 멜버른에 도착했을 때, 호주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반팔을 입고 출국했는데, 도착하니까 너무너무 추웠다. 한국에서 미리 3개월 이상 살 수 있는 셰어하우스를 알아보고 스카이프로 화상통화하며 호스트와 대화를 나누고 집도 보고 하면서 머물기로 정했다. 출국 전 페이팔로 미리 디파짓(보증금)을 보내고, 공항에서 바로 셰어하우스를 갈 수 있도록 개인택시도 예약해 놨다. 모르는 것이 많을수록 계획으로 불안감을 상쇄시키기 좋았기에, 그리고 무수히 계획이 틀어지고 예상에 어긋나는 일이 부지기수로 있던 상황에서 플랜 B, C, D까지 세우며 일해 왔던 짬으로 이때만 해도 굉장히 J로 살았던 것 같다. 다행히 계획이 틀어진 것 없이 잘 진행되어 멘붕 오는 상황 없이 셰어하우스에 도착했다.


 내가 지낸 셰어하우스는 3층짜리 집이라 꽤 많은 사람이 모여 살았다. 1층엔 여자, 2층엔 거실과 부엌 그리고 호스트의 방, 3층엔 남자가 사용했다. 같이 사는 친구들은 이탈리아, 프랑스, 스웨덴, 일본에서 왔다. 모두 나처럼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장기여행 중이었다. 그중 프랑스, 스웨덴, 일본에서 온 친구가 여자였고 같이 지내다 보니 매일 밤 떠들며 '굿나잇-본뉘(불어)-잘자요-오야스미-굿낫(스웨디시)' 5중 인사를 즐겼고, 같이 놀러 가기도 하고, 서로가 일하는 곳에 방문해서 손님이 되어주기도 했다.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적당히 한 레스토랑에서 일을 구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점차 호주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루이스(스웨덴친구) : 제이스(당시 내가 쓰던 영어이름)! 오늘 일하러 안 갔구나. 오늘 계획 있어?

 : 응 오늘 쉬는 날이야! 뭔가 다른 걸 해보고 싶긴 한데, 아직 마땅히 뭘 할지 못 찾았어. 넌 오늘 뭐 해?

루이스 : 오 그렇구나. 난 오늘 땀 좀 뺄까 해.

 : 그래? 사우나라도 가는 거야? 호주에도 그런 게 있어?

루이스 : 여긴 그런 거 없지. 근데 핫요가 가면 후끈후끈하니까! 체험 가보려고. 너도 같이 갈래?

 : 오 핫요가! 들어보기만 했는데. 사우나에 앉아있기만 해도 어지러운데, 더운 곳에서 운동하는 거 괜찮을까? 요가도 해본 적이 없어서 궁금하긴 하네.

루이스 : 너~무 좋아. 조금만 움직여도 땀나니까 그냥 운동했을 때 보다 개운하더라고!

 : 그래? 나도 그럼 도전해 봐야지. 같이 가려면 어떻게 해야 돼? 등록 같은 걸 해야 하는 거야?

루이스 : 내가 센터에 물어볼게, 친구 한 명 더 데리고 간다고! 체험 비용이 있으니까 그것만 준비하고, 편하고 스트레치 잘 되는 옷 입고 가면 돼.

 : (그때의 나 = 레깅스를 평상복으로 입고 다님) 옷은 문제없지. 시간 알려줘! 그전에 준비하고 있을게.




핫요가?


 이때만 해도, 27살이 될 때까지 운동이란 걸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 없는 나에게 요가는 인도나 발리 같은 곳을 가야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종종 페이스북(그때는 인스타가 없었다)에 요가 관련된 것들이 뜨긴 했지만, 멋지게 또는 기이하게 포즈를 취한 백인들이 사진에 있었고, 뭔가 동양의 오리엔탈리즘에 빠지듯 즐기는 듯한 모습처럼 보였다. 어릴 적부터 몸이 유연한 편이었던 나는 해볼 만도 하다고 느끼긴 했다.


 근데 영어로 들으면서 더운 곳에서 정신 차리고 뭔가를 할 수 있을까? - 이 생각을 하니 갑자기 현기증이 몰려왔다. 가서 왠지 동양인이 없을 것 같은데 못 따라가고 눈에 띄면 너무 창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지... 안 가겠다고 할까... 근데 또 지금 아니면 혼자 찾아서 경험할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와랄라랄라라라랄라 모르겠다아라랄ㄹ라ㅏ라라' 하고 레깅스 슉 입고 시간 맞춰 나섰다.


Bikram Yoga studio @Clarendon st, South Melbourne, 2014

10년 전 경험이라, 남아있는 사진이 몇 장 없다.

어쩔 수 없다. 당시에 iPhone 5를 사용했고 구글 드라이브와 외장하드에 사진을 저장하는 일을 반복했는데, 남아있는 사진이라곤 건물 전경뿐이다.  

구글맵으로 찾아본 Bikram Yoga Studio, 2023

예전 요가원들이 그랬듯, 전면 거울벽이 있고 큰 창들은 굳게 닫은 채 난방을 와랄랄 틀어놓은 핫요가 스튜디오 였다. 지금은 없어졌는지 구글맵에 영구폐점이라는 말과 함께 4장의 사진만 남아있다.







 문을 열고 2층(호주는 Level 1 이 2층이다. 1층은 보통 Ground를 말하는 G로 표기한다)으로 올라갔다. 스 튜디오 매니저님이 친절히 맞아주셨다. 어떻게 왔는지 나를 신기하게 생각하면서도 다른 첫 수강생들과 동등하게 수업의 내용, 수련실과 탈의실 위치, 매트 사용법, 수업 후 매트 청소 등을 알려주셨다. 확실히 한국에서 친구들과 이런 경험을 하면 같이 간 친구와 매번 눈 마주치며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네'하는 얘기를 하기 마련인데, 역시나 외국친구여서인지 각자 뚝딱대며 수련실로 입성했다.


 체험하게 된 수업은 빈야사 수업이었다. 근데 정말 신기했다. 나처럼 20대처럼 보이는 사람부터 60살은 되어 보이는 흰머리 날리는 할머니까지 있었는데, 할머니를 보는 순간 쫄았다. 젊은 사람들과 할 정도라면, 분명 고수처럼 느껴졌다. 인스트럭터가 들어오고, 수련실 문이 닫혔다.


(몸의 기억만 일부 있는데, 지금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빈야사 수업을 영어로 하면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Inhale, exhale. Take your breath deeply, hold 1, 2, 3, and exhale as long as you can..."

"Inhale, stretch your arm to ceiling, and exhale banding your back to front to touch your toes with two hands...." Blah Blah.


 움직임에 대한 영어단어들 중에 들리는 것은 '머리, 어깨, 무릎, 발' 그리고 '마시고, 내쉬고, 들고, 내리고 비틀고' 정도였다. 한국인은 역시 눈치 짬밥이라 앞, 뒤, 옆사람 보며 눈치껏 따라갔다. 전면 통거울이 날 살렸다. 그렇게 정신없이 한 시간을 달렸다. 한 20분쯤 지나니 온몸에 열이 올라오면서 얼굴이 터질 것 같았고, 종종 현기증이 올라왔다. 와. 이게 뭐지. 되게 신기한 움직임이었다. 보통의 운동들은 한 두 부위를 집중적으로 쓰게 하거나, 아니면 달리기와 같이 유산소성 운동들만 알던 나에게, 이렇게 온몸을 쓰면서 근육운동과 호흡을 같이 하는 운동이 있다는 것이 너무 신세계였다. 몸을 베베 꼬거나 이상한 동작만 하는 줄 알았는데, 흐름이 있는 운동이라니. 그리고 마지막에 누워서 쉬는 것도 운동이라니!



루이스 : 수업 어땠어?

 : 와.. 나 좀 충격 먹었어. 사진으로 본 요가는 이상한 자세만 하던데, 완전 아니네? (요즘말로) 빌드업해서 쿨링 하는 것까지 최고였어. 만약 내가 운동을 해야 한다면 요가를 할 것 같아.

루이스 : 좋다! 꽤 잘 따라왔구나 나는 스웨덴에서도 종종 했어서 익숙했거든. 뭔가 처음 시도하는 거라 어려워할까 봐 나도 걱정이 좀 됐는데 잘 즐겼다니 기분 좋네.

 : 근데 더워지고 나니까 체온이 계속 높아서 숨이 너무 차더라구. 핫요가 아닌 그냥 요가였음 더 좋았을 것 같아. 어차피 움직이면 덥잖아!

루이스 : 맞아. 근데 추울 때 핫요가만 한 게 없지. 어디 가서 3킬로를 뛰어도 이렇게 온몸에 열과 땀이 나지 않을걸?! 아. 그리고 우리가 땀을 많이 흘렸으니까 수분보충이 중요해. 내가 코코넛음료 사줄게 이거 마셔봐. 이온음료 마셔야 미네랄 보충이 되는데, 그런 건 설탕이 너무 들어서 안 좋아. 꼭 기억해.

(보통 외국애들은 자기 필요한 것만 사고 남은 신경 안 쓰는데, 너무 스윗했다...)



 그러더니 요가원 한편에 있는 냉장고에서 코코넛워터 2병을 사서 하나를 나에게 줬다. 그렇게 불태운 첫 핫요가와 코코넛워터 한 잔.... 너무나도 삶이 충만해지는 느낌이었다. 오죽 잊혀지지 않는 경험이었으면, 1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도 이걸 글로 쓸 수 있을까. 아직도 요가를 마치고 날 때면, 그때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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