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이브 May 17. 2023

프랑스에서 절대 우연한 만남은 없다.

프랑스에서 우연히 만난 그는 나의 멘토가 되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사람과 사람 간에 경계가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니 프랑스 사람이라고 하긴 좀 그렇겠다. 내가 살고 있는 프랑스의 브르타뉴 지방 도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살가운 편이다. 내가 파리 같은 대 도시보다 소도시를 선호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미라고 할지, 정이라고 할지, 큰 의도 없이 우연찮게 만나 아는 사람이 되고 친한 친구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곳에서 6년 정도 살며 배운 것 중 하나가 우연한 만남이라도 모든 만남은 소중히 하자이다. 


한국에서 내 인간관계는 매우 협소했다.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다섯 손가락으로 다 꼽지도 못할 정도. 자주 만난다는 사람은 고등학교 친구 두 명, 유학선배 한 명, 가족뿐 그 외에는 예의상 이어가는 관계의 직장 동료나 교회 사람들이 내 인간관계에 다였다. 주말에는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는 집에서 혼자 쉬는 것을 선호해 여러 이유를 대며 약속을 취소하기 바빴던 것 같다. 그렇게 떠나보낸 사람들이 여럿이다. 내가 INFJ인 이유...

프랑스에 돌아오고서도 처음에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학 때 만난 친구 세명정도를 빼면 친하다고 할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 일 년 정도 살다 보니 이곳저곳 아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 동네가 작아서인지 아는 사람에 아는 사람을 타고 가면 꼭 공통의 지인이 있을 정도니 인간관계가 늘어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와 비슷하게 약속을 취소하려고 한 적도 많으나 동네가 작은지라 거짓말해 봤자 금방 들통이 나버리니 결국에는 억지로라도 약속에 다 나갈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아는 사람들이 꽤나 늘어나버렸다. 또 프랑스 유학당시 이곳에 적응하기 위해 밝고 해맑은 동양인 이미지를 만들어 코스프레를 하고 다녔는데 그 콘셉트가 이제는 두 번째 자아가 돼버려서는 프랑스어를 할 때는 내가 모르는 외향인이 되어버린 것도 이곳에서 아는 사람이 많아진 이유 중 또 하나가 되겠다. 

마지막 이유로는 동양인이 많이 없는 이 동네에 한국인으로 살다 보면 종종 길거리에서 말을 거는 사람들이 있는데 보통 90퍼센트는 내가 동양인이라는 것에 흥미를 가지고 접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반 유학당시에는 이러한 사람들을 꽤나 경계했지만 요즘은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려니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인스타그램 아이디까지 나누는 경우도 있다. 뭐 이후에 이상하면 차단하면 그만이니 하는 생각으로.

그래서 이곳에 살며 나의 폐쇄적인 성격이 조금은 나아졌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약속이 너무 많이 잡히는 주에는 반드시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타고난 내향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게 이제는 내 프랑스 삶에 우연하게 만나 이제는 내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있다. 


최근에도 재밌는 만남이 있었다. 최근이라고 할 건 아니고 작년 11월쯤, 한국인 직장 동료들과 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Pont-Aven이라는 옆동네에 놀러 간 적이 있다. Bois d'amour이라는 숲을 산책하고 있던 중 한 프랑스 사람이 다가와 어눌한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한국 사람이에요?"라고 물으며 말을 걸었다. 보통 듣는 "칭챙춍?"이 아닌 "안녕하세요"를 들으니 첫 만남은 호감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는 유튜버이자 잠수부였고 한국에 놀러 간 적이 있다고 했다. 다만, 보통 이 동네의 우연한 만남에서 자주 듣는 레퍼토리로 한국 여행을 갔다 온 이후 한국 사람만  보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프랑스인 1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잠깐 이야기를 하고 예의상 인스타그램 연락처만 주고는 헤어졌다. 그렇게 아이디도 기억 안 나는 팔로우 팔로워 +1 정도로 생각했다.


그렇게 기억에서 잊혀 갈 때쯤 올해 3월 초 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내가 사는 캥페르에 올일이 있으니 잠깐 커피나 하자는 제안이었다. 체류증 문제 이후 프랑스 삶에 안정기를 되찾은 나는 모르는 사람과의 만남에 어떠한 부담도 없었다 오히려 반가웠다! 흔쾌히 약속을 OK 하고 퇴근 후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솔직히 별 기대 없이 나간 자리였는데 생각한 것보다 훨씬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 


그가 그래픽 디자이너로 파리에서 일을 하다 10년간 여행을 다니며 잠수부가 된 이야기. 그리고 이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유튜브를 시작한 이야기까지. 먼저 그래픽 디자인을 했다는 공통점으로 시작해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분야와 경험에 대한 이야기, 마지막으로는 내가 이루고 싶은 목표와 비슷한 자신이 열정을 가지는 분야에 커뮤니티를 만들고 수입을 창출해 내는 이야기까지. 한국여행이나 한국인에 대한 관심은 뒷전이 된 채 잠깐 커피 한잔 하자고 한 게 세내 시간 동안 내리 이야기를 했다. 

그 이후 내 한국인 동료와 함께 만나 식사도 하고 또 그가 종종 캥페르에 올 일이 있으면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꽤나 친해졌다. 그가 이야기하는 지난 경험들과 시행착오들, 그리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를 부단히 밀어붙이고 그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와 불안들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그와의 대화는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내가 최근 체류증 문제 이후 프랑스에서의 삶이 다시 안정기로 돌아오면서 직장에서 받는 많지 않은 월급과 너무나도 익숙해진 장소와 사람들 속에서 너무 안주하고 있었던 건 아닐지, 내가 왜 이곳에 돌아오기로 마음먹었는지. 왜 이곳에 대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기로 했는지 등. 그와의 우연한 만남은 나의 삶에 다시 한번 도전을 주었다.


그러던 중 최근 내가 그림을 올리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사기를 당할뻔한 적이 있다. 내가 그림을 그려주면 300유로를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계정의 프로필 사진이 인상 좋은 서양 할아버지이고 자신의 강아지를 그려달라는 의뢰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돈을 안 받고 그림을 그려주겠다고 했다. 나는 간단히 그림을 그려 그림을 보내주었다.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은 그림이기 때문에 돈은 받지 않겠다고 했으나 굳이 굳이~ 나에게 돈을 보내겠다길래 그래 순수하고 돈 많은 할아버지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페이팔을 통해 돈을 보내겠다고 했는데 뭔가 느낌이 싸해 구글에 찾아보니 역시나 사기였다. 나는 이 이야기를 재미 삼아 그에게 했다. 

"처음에는 돈을 바랐던 건 아니었지만 300유로를 보낸다고 하는 순간 그 돈으로 쇼핑을 하는 나를 상상했어 하하" 


당연히 그도 나처럼 웃어넘길 거라고 생각했으나, 그는 진지하게 나에게 되물었다. "그렇다면 너의 그림으로 300유로를 벌려면 어떻게 해야 될 것 같아?". 나는 당황해서 "아... 뭐 그림 열심히 그리고 홍보해야겠지 뭐"라고 대충 대답했다. 속으로는 "아니, 그냥 나쁜 놈이네~라고 말하면 될 것을 왜 갑자기 저렇게 진지해지는 거야?"라며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매우 현실적인 방법들에 대해 제안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아는 일러스트레이터가 어떤 식으로 마케팅을 해서 돈을 벌고 있는지, 어떤 방법들로 홍보를 할 수 있는지. 처음에 나는 내 일을 왜 자기가 더 나서서 조언을 해대는지 왠지 개인적인 일에 참견당하는 기분에다 부끄럽기까지 했다.


 다만 전화를 끊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이렇게 진지하게 나 스스로의 일에 대해서 그처럼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그림을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내 글로 책을 내야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며 작업을 해왔는데, 어쩌면 나는 단순히 나 자신을 위한 만족에서 멈추고 있었던 건 아닐지. 


그다음 주 주말에 그가 나에게 제안을 하나 했다. "날씨가 좋으니 옆동네를 구경 가자" 옆동네에 가서 너의 그림에 영감도 얻고 그 그림을 어떻게 홍보할 수 있는지 함께 생각해 보자. 꿀 같은 주말, 아침에 낮잠이나 자고 오후에는 친구나 만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일도 아니고 내 일을 위해 이렇게 까지 해주는 게 고마워 억지로 그를 따라 나갔다. 그리고 엄청나게 끌려다니며 설명을 듣고 자료를 구하고 사진을 찍어댔다. 그날 저녁 나는 완전히 녹초가 되었는데, 그는 오늘 만들어낸 자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내 일인데 이렇게까지 신경 써줘서 고마워". 


그리고 그가 대답했다. "나는 오랫동안 시행착오를 겪었어. 그러다 우연히 어떤 고마운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해주었던 조언을 나는 다 실행하기로 마음먹었어.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야. 그래서 나도 그에게 배운 것들을 너에게도 돌려주고 싶었어"  


나는 그 순간 너무나 큰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또다시 큰 부끄러움을 느꼈다. 내가 모든 것을 너무나 가볍고 쉽게 여기며 살았던 것 아닐까. 만남도, 사람들의 조언도 그리고 가족들의 조언과 나의 목표도 삶도. 내 지난 글에서 누누이 이야기하는 거지만, 나는 사람들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것에 비해 인복이 참 좋다. 나 스스로는 변화할 수 없었지만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이끌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프랑스어가 하기 무서워 집에만 갇혀 모든 약속을 거절할 때 나를 포기하지 않고 집까지 찾아와 나를 밖으로 끊질기게 꺼내준 프랑스 친구들이 있었고, 내 민감함을 세상을 더 예민하게 바라볼 수 있는 감수성임을 믿게 해 준 교수님들, 내가 나 자신의 능력에 대해 인정하지 않을 때 나보다 더 나를 믿어준 가족들, 나라는 사람이 함께 있기에 너무 소중하고 귀한 사람이라고 믿게 해 준 가족 같은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 내가 놓으려 했던 인연을 끝까지 놓지 않고 잡아준 프랑스의 부모님 같은 전 남자 친구의 부모님, 그리고 국적은 다르지만 함께 이야기만 해도 마음이 닿는 중국, 베트남 친구들, 그리고 현재 내가 하고 이야기하고 그리는 것들에 가능성을 믿고 조언해 주는 사람까지. 


스쳐 지나갈 거라 생각했던 우연한 만남에 그가 내 멘토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나는 이곳에 살며 만난 사람들로부터 내가 정말 많이 변했음을 느낀다. 사실 너무나 고집이 센 내가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었던 것에는 이곳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 덕분이다. 그리고 이번 만남 역시 분명 나의 삶을 또는 나 자신에 깊은 무언가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삶이 뜻밖의 일들로, 모험들로 가득하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두려워 하지만 그런 외부의 뜻밖의 일들과 사건들을 자신의 삶으로 만들어 소화하고 해석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강하지만 부드러움을 가진 사람이다.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며 불안해하는 그가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써가며 나에게 준 조언들과 노력에 감사를 표하며 이 글을 받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이 글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에 한국어 수준이 되지 못한다.) 





Instagram @yoon_yves 

Blog https://blog.naver.com/heonzi

Contact heonzi123@gmail.com   


매거진의 이전글 프랑스에서 내 연애의 역사를 되짚어 보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