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반 운반으로 이뤄낸 일러스트레이터 타이틀
브런치에 정말 오랜만에 글을 쓰는 것 같다. 지난 글이 5월 16일 이었으니 말이다. 프랑스에 돌아온 이후 적어도 한 달에 한두 개씩은 정기적으로 글을 썼는데, 마지막글을 이후로 프랑스에서 아주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연히 뽕따벤에서 만난 케빈의 조언으로 5월 중순부터 기대반 의심반 짧은 릴스 영상을 제작해 작년 2월부터 시작한 @yoon_yves계정에 올리기 시작했다. 첫 목표는 영상 20개를 업로드하는 것이었다.
영상의 주제는 대부분 크게 3가지로 나뉜다.
1. 프랑스와 한국의 문화 차이
2. 브르타뉴 지방의 도시들 방문기
3. 프랑스에서 내가 겪은 사건들 또는 좋았던 순간들
이 영상은 사실 내 그림에 담긴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목적으로 만들었다. 아니 내 그림을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데에 목적이 있었다. 2022년 2월부터 일 년 반동안 인스타그램에 꾸준히 그림과 글을 올려왔지만 내 구독자는 150명 정도였다. 그것도 내 한국 친구들과 프랑스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1분 정도의 영상을 일주일에 두 개 정도씩 올리고 한 달 정도가 됐을 때 하룻밤 사이에 구독자가 몇백 명이 늘어있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운이 좋아 알고리즘을 탔던 것 같다. 조금 흥분했지만 이 바람도 한순간이겠거려니 마음을 다스리고 꾸준히 영상을 올렸다.
사실 사무실에서 하루종일 일을 하고 저녁에 돌아와 영상 편집과 그림을 그리는 리듬은 결코 쉽지 않았다. 저녁 18시에 집에 돌아오면 후다닥 저녁식사를 하고 간단히 집 청소를 한 뒤 19시 30분-20시부터 23시 잠이 들기 전까지는 앉아서 그림을 그리거나 영상을 편집했다. 1분짜리 영상 하나를 만드는 데는 보통 4-5시간이 소요됐다. 영상촬영 + 영상 그림 - 영상 글쓰기 - 영상 편집. 이렇게 두 달을 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슬슬 지쳐가던 때, 구독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루밤사이에 1000명이 늘어나는 날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많은 구독자가 유입되지는 않는다.)
내 영상과 그림을 응원해 주고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늘어나니 몸이 피곤해도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동시에 두려움도 있었다. 빠르게 불타오른 사랑은 금방 식어버리듯이 지금의 추세가 계속 가리란 법은 없다. 사실 작업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들은 이런 것이었다. 갑자기 유입된 사람들의 기대에 휩쓸리지 않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사무실 일을 끝마치고 쉬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었다. 다만, 내 일이라 그런지 쉬고 싶은 유혹은 일이 잘 풀릴수록 더 쉽게 떨쳐버릴 수 있었다.
구독자가 몇천 명 되었을쯤에는 개인적으로 로고 작업이 들어왔다. 내 옆동네에서 아이들 옷 가게를 하고 있는 여성이었는데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로고 제작을 문의했다. 이때는 내 주된 일 말고는 프리랜서로써 작업이 1도 없었던 상태였기 때문에 한 두 달 동안 계속 수정하고 디자인을 고쳐주고 했던 것 같다. 물론 그래서 신뢰를 얻었다.
구독자가 1만 정도 되었을 7월 중순, 내 만족을 위해 재미 삼아 그린 그림을 보고 케빈이 이거 팔면 잘될 것 같은데라는 말을 흘렸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프랑스 브르타뉴 지역의 전통복장을 입은 귀여운 캐릭터 엽서였다. 한국과는 다르게 프랑스는 여전히 엽서문화가 꽤나 활발하고 요즘에는 오래되고 촌스러운 엽서들이 꽤나 모던한 엽서들로 변해가는 추세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판매목적 없이 인스타그램에 내가 그린 그림을 업로드해보았다. 반응은 생각보다 좋았다. 귀엽다는 반응들이 많았고 종종 DM으로 이 엽서를 살 수 있는 곳이 있는지 물어봤다.
많은 문의는 아니었지만 엽서 50장이라도 팔아보자는 생각에 예약판매를 계획했다. 프랑스 플랫폼을 이용해 3주 정도 온라인에서 진행하였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200명이 주문하고 700장이 팔렸다. 이번주에 겨우 200명에게 모든 엽서 발송을 끝마쳤다. 좋은 경험이 됐지만 다시 해야 될지는 의문이다.(수익대비 고생이 너무 컸다.) 캠페인이 끝나고 퇴근 후에는 모든 주문 내용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봉투에 담고 모든 주소를 등록하고 우체국에도 회사 등록을 해서 한꺼번에 좀 더 손쉽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최대한 빨리 엽서를 보내주기 위해 컨택한 인쇄 업체를 꽤나 닦달했던 것 같다.
저번주 주말에는 캥페르 도시에 한 가게에 엽서를 들고 가봤다. 혹시 내 엽서를 판매할 생각이 있는지. 나는 내가 진행한 예약판매가 어떤 성과를 냈고 내가 어떤 작업을 소셜네트워크에 올리고 있는지 등을 설명했고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그날 그 자리에서 엽서를 시험 삼아 5 모델을 20장씩 구매하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우리 집에서 먼 가게가 아니었기 때문에 당장 엽서 100장을 들고 뛰어갔다.
이 외에도 내 팔로워 중 한 여성이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까르푸 마켓에 내 엽서를 판매하고 싶다는 의뢰가 와서 직접 엽서를 전해줄 겸 만나러 가기도 했다.
구독자가 늘어나고 내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아주 조금씩 또 다른 제안이 오기 시작했다.
내 영상에서 내가 책을 내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영상을 보고 두 개의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꾸준히 브런치에 글을 올렸던 이유도 내 이야기를 담은 책을 내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다만 한국에서 출판하는 것보다 어쩌면 프랑스에서 출판이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매주 올리는 영상과 그림, 의뢰받은 그림 등으로 현재로서는 책 준비에 손도 못 대고 있는 게 현재 풀어내야 할 문제 중 하나다.
그렇다고 친구들과 만나지도 않고 일만 한 건 아니다. 내 그림과 이야기의 대부분은 내 일상에서 나오기 때문에 내가 현재 사랑하는 일상과 친구들, 만남들을 끊어가면서까지 일하는 건 뭔가 잘 못 됐다고 생각한다. 내가 프랑스에 돌아온 이유도 내 일(안정적인 수입원)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부수입)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한국에서 일만 하며 피폐해져 그림을 아얘 손에 놓았던 때를 생각하면 다신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개인적으로 그림을 그려달라는 의뢰도 한 두 개 정도 있었다. 인터뷰 제안도 들어왔다. 지역 신문 Telegramme과 인터뷰가 있었고 Korea.net과 KBS Radio에서도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프랑스에 처음 돌아올 때 돈을 많이 모아 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해진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백수로 프랑스에 돌아와 매일 도서실에 나가 브런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던 작년은 하루하루가 불안의 연속이었다. 아무것도 이뤄놓지 못하고 다시 한국에 돌아갈 거라는 생각. 이 시간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불안. 내 나이는 이제 스물여덣인데 이곳에 지금 돌아온 건 너무 무모했다. 그런 생각을 했다.
올해 초 체류증 문제가 있을 때 매일 저녁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부디 저에게 일 년의 시간을 더 주세요. 너무 놀기만 했나 봐요.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뭔가 이뤄놓고 돌아가고 싶어요. 저에게 일 년을 더 주신다면 저 정말 열심히 살게요. 또 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세요"
꾸준히 만들어놓은 것들이 쌓이고 운이 겹겹이 겹쳐 올해 여름, 내가 프랑스에서 나 자신을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라고 말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엽서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니 사실 몰아치던 올해 여름의 리듬을 살짝 몇 주간 놓았다. 사실 여전히 불안하다. 단순히 내가 운이 좋았던 것 아니었을지. 다만 이번 경험으로 꽤나 많은 것들을 배웠다. 올해 여름의 경험들이 분명 나를 더 넓은 세계로 이끌어 줄 것이라 믿고 꾸준히 해나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년에는 반드시 책을 내고 싶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것들을 경험해서 그것을 그림으로 녹여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작업물들이 나를 또 다른 경험으로, 프로젝트로, 성공으로 이끌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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