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6개월간 프랑스에서 백수로 지내며
프랑스에 돌아온 지 벌써 7개월이 돼간다. 처음 프랑스에 돌아올 때 추상적이지만 대략적으로 세운 목표가 있었다. 먼저 그림을 다시 그리는 것, 다시 프랑스에 돌아온 이유를 찾기 위한 이 여정을 꾸준히 글로 기록해 나가는 것. 이 두 가지를 계속 지속해나가기 위한 경제적 수단을 찾는 것. 그래서 적어도 6개월은 굳이 일을 찾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들에 몰두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6개월 동안 소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꾸준히 지속해 나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2년간 한국에서 일하면서 모아둔 돈이 조금씩 빠르게 통장에서 사라지는 것도 한몫했지만, 이 일들이 나에게 가져다주는 것이 개인적인 만족감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 나를 힘들게 했던 점 중 하나였다.
사실은 한국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가며, 일은 힘들었지만 일한 것의 대가로 돌아오는 월급이란 것이 있었고, 그 월급으로 종종 친구도 만나고, 가족과 맛있는 것도 먹고, 엄마 용돈도 좀 주고, 필라테스도 한번 끊어보고, 가끔 사고 싶은 것도 사며 나름 사회에서 어른 1인분의 몫은 하고 있었다.
다만 프랑스에 백수가 되어 다시 돌아오니 예술학교 학생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사회적 압박이 프랑스에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프랑스 사회 역시 한국처럼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슬슬 밀려오는 사회적 압박이 있다. 직장을 가지고 조금씩 돈을 모으고 가정을 꾸려 집을 사고 안정된 삶을 조금씩 만들어 가는 것. 이곳의 현실도 한국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프랑스에 돌아오고 바로 직장을 찾고 싶지는 않았다. 직장을 다니는 것의 함정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직장생활에서 쌓을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은 분명 큰 장점이지만 보통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진다. 어떤 일을 하던 그 대가로 돈이 들어오니 이 정도면 열심히 살고 있지 않나 하며 그 자리에, 조건에 안주하게 돼버리는 것이다. 물론 직장을 다니며 열심히 자기 계발을 하는 열정 만들어도 많지만 적어도 나는 당시 그렇지 못했다.
내가 이곳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 그 정도에 만족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적어도 6개월은 목표한 것들을 꾸준히 해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도 요구하지도 찾기도 않는, 돈도 안 되는 이 목표를 과연 내가 꾸준히 이끌어 나갈 수 있을지가 프랑스에 돌아오며 나에게 주는 하나의 도전이기도 했다.
나는 사회적 시선에서 보자면 번아웃이니 꿈이니 타령하며 20대 후반에 도피하듯 프랑스로 떠난 한량이지만 이런 생각이 나 자신에게 스며들지 못하도록 나 자신을 고용한 사장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매일 아침8시에 일어나 도서실에 나갔다. 오늘 반드시 끝내야 할 목표를 정하고 프랑스 직장인들처럼 7시간은 앉아 개인 작업을 했다. 솔직히 나를 감시하는 상사도 없으니 자리에 가만히 7시간 작업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엉덩이가 둘쑥둘쑥 자리에서 떠지기도 하고 집중이 안되니 휴대폰을 보기도 하고 친구가 맥주를 마시자 하면 조금 일찍 끝내고 맥주를 마시러 가기도 했다. 하지만 작업을 덜 한날에는 반드시 주말이라도 논 시간만큼 작업해 풀타임 업무 시간을 채워 넣었다.
하루하루 작업해나가며 그렇게 6개월이 지났다. 이 시간이 과연 나에게 무엇을 가져다줄까, 이 시간이 허송세월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며 불안했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하루에, 일주일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업하는지 스스로는 체감할 수 없었지만 그렇게 끊질기게 6개월을 일한 결과 다양한 소식들이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했다. 물론 거대하고 놀라운 소식들은 아니었다. 내 글과 그림을 응원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났고 처음 이곳저곳에서 제안도 받아봤다. 그림과 관련되어 조금씩 진행했던 일들 역시 조금씩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개인 사업자 번호가 나온 8월, 프리랜서로써 첫 일을 받을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6개월간 나에게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던 이 목표들이 어느순간 이곳저곳에서 동시에 소식을 물어오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꽤나 감동적인 8월이었다. 그리고 스스로와 약속했던 6개월이 지났다. 나는 마지막 목표였던 글과 그림을 지속 가능하게 해 줄 경제적 수단을 찾기도 마음먹었다. 그리고 9월, 나는 프랑스 캥페르에서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엥? 결국은 직장인이 되었다고로 끝난다고? 목표 타령하다 결국은 돈이 중요하다는 거야 뭐야" 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을 수 있겠다.
내가 한국에 돌아와 직장생활을 하며 뼈저리게 느낀 것이 있다. 원하는 것을 지속하게 하는 방법들에 돈은 빠질 수 없다. 다만 나는 돈을 위해서 살아가고 싶지 않다고 여전히 말하는 철없는 20대 후반이고 투자 같은 건 무서워서 하지도 못하는 고지식한 사람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지속해나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써 돈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는 내 목표에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한다. 과연 이 경제적 수단이 내가 목표한 글과 그림을 지속 가능하게 하며 공생할 수 있을지, 혹은 그것들을 잡아먹을지 또는 더 다양한 방향으로 이 목표를 이끌어 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나는 현재 스스로와 테스트 기간을 거치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더 내가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하루하루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또 다른 국면에 접어들며 나 자신의 관촬자로써 자신이 어떻게 변화하고 어떤 것을 느끼고 바라보고 전하고 말하게 될지 궁금하다. 시작한 직장 생활은 생각보다 즐겁다. 사실 6개월간 진행해온 일들을 어떻게 하면 더 발전시킬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이 직장 생활을 하는데 더욱 큰 동기가 된다. 앞으로 이 두세가지 일을 감당해낼 수 있는 체력을 지켜 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 생각이 든다.
프랑스에 돌아오고 힘든 순간들도 있었지만 좋은 일들이 참 많이 생겼다. 나는 내가 이곳에 왜 돌아와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이 프랑스 여행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단지 좋아하는 곳에서 다시 새롭게 시작하자라는 마음이었다. 그 좋아하는 마음이 스스로를 회복시키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이곳에 돌아오기까지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이곳에 돌아왔고 나는 스스로의 고집과 결정을 따르기 잘했다고 생각한다.
지난 에피소드들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대부분 후회가 없다. 내가 밀고 나간 일들에 따라온 힘든 일과 좋은 일들에는 후회가 없었다. 그것을 알기에 나는 프랑스에 다시 돌아오기로 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에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자신의 것을 해나갈 때 우리는 결국 결실을 맺을 수밖에 없다. 쓸데없는 일은 정말 하나도 없다. 자신이 스스로 해낸 모든 일에는 헛수고가 없다. 투자한 시간 대비 돌아오지 않는 다고 지금 포기하지 않기를, 모두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보다는 끈기 있게 지켜 나가길. 그리고 나의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게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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