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옴과의 전쟁(1) - 프랑스 병원 시스템 한 번에 마스터하기.
올해 프랑스에 돌아오면서 별 역경 없이 나름 잘 살아왔다. 조금 과장한다면 세상에 모든 운이 나에게로 집중된 것 마냥 좋은 일들이 넘쳐났다. 아마 초반에 너무 많은 운을 써버린 건지, 11월부터 안 좋은 일이 계속해서 터졌다. 그중 내 프랑스 생활에 근간을 흔든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옴' 이였다. 옴? 옴이란 건 속담에서나 들어봤다. "에이 재수 옴 붙었네" 그렇다. 나는 말 그래도 재수 옴 붙었다. 그것도 내가 살던 집에서.
내 프랑스 여행기를 쭉 읽어왔던 독자라면, 내가 혼자 사는 게 아니고 함께 사는 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프랑스에 돌아가기로 결정한 후 집 찾는데에 애를 쓰던 중 친구의 친구의 소개로 그 집에 들어갔다. 가족 말고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것에, 사적인 공간을 서로 존중하는 것에 나는 매력을 느끼고 나름 공동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다만, 공동생활은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삐그덕 거리기 시작했는데, 문제 상황에 종지부를 찍게 도와준 건 불행히도 옴이었다.
함께 살았던 친구는 내가 이사오던 날 자신이 지하 창소에서 보관하던 매트리스를 꺼내 내 방에 넣어주었다. 이사 첫날밤, 자고 일어났는데 무언가에 물려있었다. 나는 혹시나 베드버그가 아닐까 하고 물릴 때마다 매번 약을 찼고 청소를 했다. 그때마다 금방 잠잠해졌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크게 심각성을 두지 못했다. 여름에는 종아리와 팔에 꽤나 여러 개 물렸는데, 조금 간지러웠지만 그저 모기에 물린 것이거나 같이 사는 고양이벼룩에 물린 것이라 생각하고 매번 약을 쳤다. 이상하게도 물린 자국은 가을이 될 때까지 계속 내 피부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자국은 11월이 되자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내가 긁어서 그런 거려니, 금방 낫겠지 하고 옷에 쓸리지 않게 밴드를 붙이고 다녔다. 일상이 바빴기 때문에 곧 낫겠지, 낫겠지 하며 방치하던 어느 날, 순간 그 자국이 점점 커지다 못해 팔을 거의 덮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내가 아얘 방치를 했던 것은 아니다. 의사에게 진료를 받으러 가기도 했지만, 의사는 물린 자국을 긁다 보니 덧이 난거거나 2차 감염이 일어난 것일 수도 있다며 일주일치 약을 처방해 주었다. 착실히 약을 먹었음에도 일주일 이후 물린 자국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커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다행히 문제에 심각성을 깨닫게 도와준 것은 함께 일하는 동료들 덕분이었다. 동료들의 걱정에 "아 이거 꽤나 심각한 것 같다"라고 깨달았고 나는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에서는 내 피부를 보고는 별로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동네에 sos medcin으로 나를 연결해주겠다고 했다. 비 오는 날 버스를 타고 응급실에서 다시 sos medcin진료를 받으러 갔다. 만난 의사 역시 상처부위에 감염이라 생각에 항생제를 처방해 주었는데, 항생제는 전혀 효과가 없었고 오히려 그날 이후 팔과 다리 쪽에만 퍼졌던 자국이 이틀 만에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만화 나루토에서 사스케가 각성을 하면 검은색 무늬가 온몸을 뒤덮는데, 흡사 그 모습과 비슷했다. 결국은 이틀 만에 다시 Sos medcin에게 찾아갔고 의사는 나를 대학병원에 피부과로 연결시켜 주었다.
파리 같은 큰 도시의 사정은 모르겠지만 내가 사는 도시는 인구가 6만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도시 크기를 떠나서 프랑스에서 병원 약속 잡는 건 그렇게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먼저 Medcin traitant이 없다면 더욱 곤란하다. Medcin traitant 이란 한마디로 담당 주취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우리 동네처럼 병원이 그리 많지 않은 곳에서는 새로운 환자를 더 이상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야 병원 약속을 잡지 않아도 아프면 병원에 간다가 성립되지만, 프랑스는 아프면 병원 약속을 잡고 기다린다가 더 맞다.
그래서 도시를 이사하거나 하면 담당 주취의를 먼저 찾는 것이 중요한데, 나는 그걸 안 했다. 아니 사실 병원 갈 일이 없었다. 프랑스에서 5년간 유학을 하며 병원에 간 적은 단 한 번이다. 입국신고를 하기 위해 간단한 신체검사지를 내야 했을 때, 그때 한 번뿐, 나는 단 한 번도 (정말 운 좋게도) 프랑스에서 진료를 받을 일이 없었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프랑스에 온 지 6년이 넘어감에도 프랑스 의료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고 살았다.
이번에 정말 한마디로 개고생을 했지만, 완벽히 마스터했다. 프랑스의 의료체계. 우리나라는 보통 피부가 안 좋으면 피부과에 가고, 귀가 안 좋으면 인이빈이후과를 가면 된다. 내가 한국에서 살던 곳은 또 유난히 병원이 많은 동네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은 피부과 약속을 따내게는 게 하늘에 별따기다. 너무 먼 날짜까지 약속이 차있기 때문에 결국 내가 피부과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다. 먼저 일반의 (그게 주취의가 되었던 아니던)가 자신이 판단하에 그 병을 전문적으로 치료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직접 해당 전문의에게 전화를 해 약속을 잡는 방법이다. 두 번에 일반 가정의와의 진료를 거치고, 두 번의 Sos medecin(주취의가 없거나, 약속을 잡지 못해 급한 경우에 진료를 볼 수 있는 medecin libéral들이 모인 병원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진료를 보고 나서야 피부과 약속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때까지 거의 삼 주간의 시간이 흘렀는데, 내가 만약 바로 피부과에 갈 수 있었다면, 그리고 이 병의 원인을 금방 알 수 있었더라면 이렇게 고생하진 않았을 거다. 그동안 화폐상 습진은 아닐지, 농가진, 포도상구균감염등 별별 병명을 다 들었고 두려움을 더했다.
전문의는 전문인가 보다. 피부과 의사는 바로 나의 상태를 보더니 한 번에 '옴'이라는 병명을 내렸다. 옴, 프랑스어로는 Gale이다. 아니 진드기가 사람 피부를 이렇게 만들어 놓는다고? 처음에는 의심했다. 또 지난 의사들처럼 헛다리를 짚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했지만 의사가 준 약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솔직히 약을 먹고 몇 주간은 간지러움과 고름으로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좀비처럼 살았지만, 약을 먹고 일주일 후 2차 약을 먹으니 상태가 드라마틱하게 나아지기 시작했다.
치료와 더불어 나는 이사를 결정했다. 같이 사는 친구에게도 내가 옴에 걸렸고 너의 매트리스를 버리고 너의 방을 포함해 온 집을 다 소독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너 역시 약을 먹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콧방귀도 안 뀌며 그건 매트리스의 문제가 아니라 너의 위생상태의 문제일 거라며 비아냥 거렸다. 같이 사는 친구는 내가 옴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동안 모로코로 바캉스를 떠났는데, 내 메시지를 받고는 마치 자신의 바캉스를 내가 망쳐버린 것 마냥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분노가 폭발하듯 차올랐다. 적어도 이건 장담할 수 있다. 나는 너보다 훨씬 깨끗하다. 네가 저녁마다 씻지도 않고 소파에 더러운 옷가지에 뒤덮여 있을 때 나는 매일 청소기를 돌렸다. 나는 아무리 피곤하고 술을 많이 먹어도 반드시 씻고 자는 버릇이 있다. 그런 나에게 네가 위생에 대해 논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몇 번이고 매트리스에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버려야 한다고 말했음에도 별거 아닐 거라며 굳이 매트리스를 버리지도 못하게 했다. 자, 내 할 도리는 다했다. 나는 내가 지내던 방을 다 소독했고 이불과 배게등을 모두 버렸다. 5일 내리 빨래방에 가서 모든 옷가지를 돌렸다. 빨 수 없는 것들에는 모두 소독약을 치고 비닐봉지에 봉쇄했다.
매트리스를 버리고 안 버리고는 너의 선택이다. 부디 내 조언을 귀담아듣고 나와 같은 지옥을 경험하지 않기를,... 아니 너의 안일함으로 같은 지옥을 경험하기를 속으로 바랬다.
나는 그 집에 도망치듯 나왔다. 그 집에 일분이라도 있는 것이 참을 수가 없었다. 잠시 짐정리와 청소를 하러 집에 들를 때면 온몸에 새로운 두드러기가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이사하기 전날까지 호텔에서 지냈다. (물로 호텔 이불 및 수건도 다 소독하고 빨래했다.... 진드기를 투척하고 나갈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이사했다. 이사를 끝마치고 일요일 정말 오랜만에 마음에 안정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진드기란 게 정말 무서워서, 전염력이 강하고 한마디라도 남아있으면 다시 2차 감염을 이르 킬 수 있기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거의 매일 청소기를 돌리고 한번 입은 옷은 반드시 빨래한다.
나의 경우는 진드기 옴이 굉장히 심하게 온 케이스였다. 보통 옴은 몸에 접힌 부위에 많이 생긴다. 가장 흔한 것이 손가락 사이, 겨드랑이 사이인데, 나는 그게 온몸으로 퍼졌다. 의사 말로는 옴은 사람마다 알레르기 반응의 심각성이 다르게 나타난다고 한다. 다행히 내 주변사람들에게 퍼지지 않았고 나만 옴에 걸렸다.
옴과의 전쟁, 한 달이 되어간다. 여전히 전쟁에 흔적이 내 피부에 남아있다. 그리고 여전히 종종 두드러기가 올라오는데 혹시나 여전히 진드기가 집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에 여전히 거의 매일 청소를 하고 스프레이를 뿌린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로션을 바른다. 상태가 좋아졌다 아니었다를 여전히 반복하긴 하지만 새로운 자국은 생기지 않으니 의사는 내가 진드기에서 나은 것이라고 했다. 옴에 걸린 후기를 찾아보니 피부에 남아있는 진드기의 찌꺼기로 몇 달이고 알레르기 반응이 올라올 수도 있다고 한다.
이건 옴과의 전쟁을 시간순으로 요약한 프롤로그다. 진드기로 한 달간 고생하는 와중에 정말 다양한 사건들이 또 한꺼번에 몰려왔다. 정말 재수 옴 붙은 한 달이었다. 폭풍처럼 요동친 이 한 달간의 사건들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이 사건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새로운 출발선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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