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삶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다.

소소한 일상이 소중한 지금

by 윤이브

내 앞선 글을 읽었다면 내가 한 달 넘게 옴에 걸려 고생하고 이사를 간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동시에 오래되진 않았지만 좋은 시간을 보냈던 사람과도 이별을 고했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행정 문제들을 해결하며 2022년 마지막 한 달을 보내며 2023년이 왔다. 액땜이란 게 있는 걸까, 먹구름 같던 문제들로 둘러싸여 있던 시기를 지나니 참으로 사는 게 행복하다. 이 평범한 삶이 참 감사하다. 공동생활을 끝마치고 집을 이사하며 온전히 나만의 공간을 같게 된 것이 큰 역할을 한 것 같기도 하지만, 최근에 나는 내 삶이 사랑스러워 어찌할 바를 못하겠다.

KakaoTalk_20230110_220106289_08.jpg


왜들 그렇게 브이로그를 찍나 했는데, 나도 내가 사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보니 이 소중한 순간들을, 모습들을 간직해야겠다 싶어, 중고로 한국에서 사서 처박아두었던 카메라를 오랜만에 켜 혼자 있는 내 모습을 촬영했다. 혼자 보면서도 왠지 흐뭇하더라.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KakaoTalk_20230110_220106289_07.jpg

사실 크게 변하지 않은 단순한 삶이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저녁에 돌아와 밥 해 먹고 잠에 든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런 패턴이지만, 이 안에 내가 사랑하는 순간들이 있다. 나는 토요일에 시장바구니를 들고 장 보러 가는 내 모습을 좋아한다. 일주일 동안 먹을 빵을 고민하고 토마토 두 개, 아보카도 하나, 양파 3개, 대파 한 단 사는데 시장 할머니들의 수다를 참아가며 20분 줄을 서는 내 모습이 참 좋다.

KakaoTalk_20230110_220106289_06.jpg

가끔 시장을 나오는 동네 친구들과 마주칠 때가 있는데 (도시가 작은지라 시장에 가면 반드시 아는 사람 한 명은 꼭 만나게 돼있다.) 토요일 장은 아침에 서기 때문에 시장 근처 카페에 들러 아침 커피땡을 하고 각자 본 장을 들고 집에 돌아간다. 이 단순한 순간이 참 사랑스럽다. 아침 출근 전에는 커피를 여유롭게 마실 수 있도록 15분 정도 일찍 일어나는 내 모습이 기특하다. 아침에 집에서 나는 커피 향도 좋다. 종종 쉬는 날에 이상한 조합의 디저트를 만들어 차를 함께 마시는 것도 좋다.

KakaoTalk_20230110_220106289_04.jpg


주말 오후, 친구들과 맥주 한잔을 하며 여자 남자 사는 이야기 하며 뻔한 이야기 하는 것도 좋다.

KakaoTalk_20230110_220106289_05.jpg

퇴근하고 피곤하지만 집을 깔끔히 청소한 뒤 슬슬 저녁을 해서 와인반주와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는 여유도 좋고 저녁을 끝내고 살짝 쓸쓸한 기분이 들 때 갑자기 지루하고 이해 안 되는 책을 꾸벅꾸벅 졸아가며 글 선 따라 흘러가게 두는 시간도 좋다.

KakaoTalk_20230110_220106289_03.jpg


얼마 안 되는 내 작은 화분들에게 잊을만하면 물을 주고, 내 책상에 자주 읽지는 않지만 꼭 읽어 보이리라 하는 인테리어 아이템처럼 쌓여 있는 책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노래를 그리며 그림을 그리고 이런 순간들을 더듬어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순간을, 그런 마음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참 좋다.


일에 가면 운 좋게도 좋은 동료들이 있어 종종 수다를 떨 수 있고 각자 쌓은 점심을 같이 먹는 것도 좋다.

KakaoTalk_20230110_220106289_02.jpg

확실히 이곳에서의 삶은 조금 더 느리고 부드럽다. 지난 몇 달 이 소중하고 행복한 순간들을 잊고 살았는데, 결국은 힘들었던 일들이나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별이나 망설이던 순간, 배신당한 순간들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며 아 내 삶은 참 사랑스럽다 깨닫게 해 준 게 아닌가 싶다.


사실 겉에서 보면 그저 평범한 일상이다. 저녁 잠시 창문을 여니 고요히 비가 내리고 있다. 주변은 조용하고 내 손에는 따뜻한 차가 쥐어져 있고, 편안한 잠옷을 입고 한숨을 호- 하고 쉬니 "아, 참 좋은 정적이다. 오늘 저녁은, 참 좋은 저녁이다"라 느꼈다.

KakaoTalk_20230110_220106289_01.jpg

결국은 지나가는 이 순간들이 사실은 얼마나 참 감사한지, 이 만남들이, 이 슬픔들이 얼마나 참 아름다운지 잠시, 아주 잠시 생각할 수 있다면, 참 좋은 삶이다.


내가 사는 프랑스의 작은 도시 캥페르의 겨울은 사실 좀 고되다. 겨울 동안에는 탁 트인 파란 하늘을 보기 어렵다. 날씨는 우중충하고 바람이 많이 불어 우산이 매번 아작이 난다. 그래도 이런 날 중에 아주 잠깐 보이는 파란 하늘이, 잠깐 인사온 햇볕이 참 아름답구나, 아 참 좋다고 느낄 수 있으니 이 겨울도 나름 괜찮다 싶다.


퇴근길에 비바람이 심해 당연히 우산이 뒤집어져 망가졌다. (이번 겨울만 세 번째 우산이고 이제 더 이상 우산을 사는 것을 포기했다.) 비에 홀딱 맞고 돌아와 씻고 집을 청소하고 저녁을 해서 탁자에 올려놓으니 아 좋네, 밖은 춥고 날도 안 좋지만 지금 맛있는 저녁을 하고 예쁜 접시에 담아 따뜻한 담요를 덮고 소파에 앉으니 "아 참 부드럽고 좋네. 좋다"라고 생각했다.

KakaoTalk_20230110_220106289.jpg

잠깐이라도,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이런 순간들이 있다면, 그런 순간을 느낄 마음이, 여유가 있다면 좋겠다. 짓궂은 하루에도 반드시 작은 좋은 순간은 있는 법이다. 오늘 모두의 삶이 조금 더 사랑스럽다면 좋겠다.




Instagram @yoon_yves / @magazine_picnic

Blog https://blog.naver.com/heonzi

Contact heonzi123@gmail.com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