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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브 Jan 11. 2023

내 삶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다.

소소한 일상이 소중한 지금 

내 앞선 글을 읽었다면 내가 한 달 넘게 옴에 걸려 고생하고 이사를 간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동시에 오래되진 않았지만 좋은 시간을 보냈던 사람과도 이별을 고했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행정 문제들을 해결하며 2022년 마지막 한 달을 보내며 2023년이 왔다. 액땜이란 게 있는 걸까, 먹구름 같던 문제들로 둘러싸여 있던 시기를 지나니 참으로 사는 게 행복하다. 이 평범한 삶이 참 감사하다. 공동생활을 끝마치고 집을 이사하며 온전히 나만의 공간을 같게 된 것이 큰 역할을 한 것 같기도 하지만, 최근에 나는 내 삶이 사랑스러워 어찌할 바를 못하겠다.


왜들 그렇게 브이로그를 찍나 했는데, 나도 내가 사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보니 이 소중한 순간들을, 모습들을 간직해야겠다 싶어, 중고로 한국에서 사서 처박아두었던 카메라를 오랜만에 켜 혼자 있는 내 모습을 촬영했다. 혼자 보면서도 왠지 흐뭇하더라.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크게 변하지 않은 단순한 삶이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저녁에 돌아와 밥 해 먹고 잠에 든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런 패턴이지만, 이 안에 내가 사랑하는 순간들이 있다. 나는 토요일에 시장바구니를 들고 장 보러 가는 내 모습을 좋아한다. 일주일 동안 먹을 빵을 고민하고 토마토 두 개, 아보카도 하나, 양파 3개, 대파 한 단 사는데 시장 할머니들의 수다를 참아가며 20분 줄을 서는 내 모습이 참 좋다.

가끔 시장을 나오는 동네 친구들과 마주칠 때가 있는데 (도시가 작은지라 시장에 가면 반드시 아는 사람 한 명은 꼭 만나게 돼있다.) 토요일 장은 아침에 서기 때문에 시장 근처 카페에 들러 아침 커피땡을 하고 각자 본 장을 들고 집에 돌아간다. 이 단순한 순간이 참 사랑스럽다. 아침 출근 전에는 커피를 여유롭게 마실 수 있도록 15분 정도 일찍 일어나는 내 모습이 기특하다. 아침에 집에서 나는 커피 향도 좋다. 종종 쉬는 날에 이상한 조합의 디저트를 만들어 차를 함께 마시는 것도 좋다.


주말 오후, 친구들과 맥주 한잔을 하며 여자 남자 사는 이야기 하며 뻔한 이야기 하는 것도 좋다.

퇴근하고 피곤하지만 집을 깔끔히 청소한 뒤 슬슬 저녁을 해서 와인반주와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는 여유도 좋고 저녁을 끝내고 살짝 쓸쓸한 기분이 들 때 갑자기 지루하고 이해 안 되는 책을 꾸벅꾸벅 졸아가며 글 선 따라 흘러가게 두는 시간도 좋다.


얼마 안 되는 내 작은 화분들에게 잊을만하면 물을 주고, 내 책상에 자주 읽지는 않지만 꼭 읽어 보이리라 하는 인테리어 아이템처럼 쌓여 있는 책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노래를 그리며 그림을 그리고 이런 순간들을 더듬어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순간을, 그런 마음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참 좋다. 


일에 가면 운 좋게도 좋은 동료들이 있어 종종 수다를 떨 수 있고 각자 쌓은 점심을 같이 먹는 것도 좋다.

확실히 이곳에서의 삶은 조금 더 느리고 부드럽다. 지난 몇 달 이 소중하고 행복한 순간들을 잊고 살았는데, 결국은 힘들었던 일들이나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별이나 망설이던 순간, 배신당한 순간들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며 아 내 삶은 참 사랑스럽다 깨닫게 해 준 게 아닌가 싶다.


사실 겉에서 보면 그저 평범한 일상이다. 저녁 잠시 창문을 여니 고요히 비가 내리고 있다. 주변은 조용하고 내 손에는 따뜻한 차가 쥐어져 있고, 편안한 잠옷을 입고 한숨을 호- 하고 쉬니 "아, 참 좋은 정적이다. 오늘 저녁은, 참 좋은 저녁이다"라 느꼈다.

결국은 지나가는 이 순간들이 사실은 얼마나 참 감사한지, 이 만남들이, 이 슬픔들이 얼마나 참 아름다운지 잠시, 아주 잠시 생각할 수 있다면, 참 좋은 삶이다.


내가 사는 프랑스의 작은 도시 캥페르의 겨울은 사실 좀 고되다. 겨울 동안에는 탁 트인 파란 하늘을 보기 어렵다. 날씨는 우중충하고 바람이 많이 불어 우산이 매번 아작이 난다. 그래도 이런 날 중에 아주 잠깐 보이는 파란 하늘이, 잠깐 인사온 햇볕이 참 아름답구나, 아 참 좋다고 느낄 수 있으니 이 겨울도 나름 괜찮다 싶다.


 퇴근길에 비바람이 심해 당연히 우산이 뒤집어져 망가졌다. (이번 겨울만 세 번째 우산이고 이제 더 이상 우산을 사는 것을 포기했다.) 비에 홀딱 맞고 돌아와 씻고 집을 청소하고 저녁을 해서 탁자에 올려놓으니 아 좋네, 밖은 춥고 날도 안 좋지만 지금 맛있는 저녁을 하고 예쁜 접시에 담아 따뜻한 담요를 덮고 소파에 앉으니 "아 참 부드럽고 좋네. 좋다"라고 생각했다.

잠깐이라도,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이런 순간들이 있다면, 그런 순간을 느낄 마음이, 여유가 있다면 좋겠다. 짓궂은 하루에도 반드시 작은 좋은 순간은 있는 법이다. 오늘 모두의 삶이 조금 더 사랑스럽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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