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체류증을 신청하며 깨닳은 점
캥페르 경시청에서 나의 프랑스 체류증 신청이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전화를 받은 후 일주일, 내가 낼 수 있는 추가적인 서류들을 준비했다. 외국인 체류 문제 관련 변호사와의 상담은 짧았지만 꽤나 도움이 되었다. 변호사 말로는, 애초에 거절시킬 서류였다면 경시청에서 나에게 직접 전화를 하지 않고 바로 거절 통보를 했을 것이라며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했다.
그 밖에도 내가 프랑스에 돌아와 1년 동안 어떤 작업을 했고 어떤 일을 했는지 증명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와 함께 보낼 긴 장문의 편지를 썼다. 편지의 내용은,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내가 프랑스에서 석사까지 한 전공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또 내가 프리랜서로써 어떻게 충분한 수입을 얻고 있고 앞으로 어떠한 전망이 있을지 등에 대해서 대략적인 비즈니스 플랜도 함께 작성했다. 솔직히 이런 편지를 과연 경시청 사람들이 주위 깊게 읽어줄까 반신반의하며 썼지만 내가 읽기에 꽤나 일목요연하게 잘 썼기 때문에 그냥 같이 보내기로 결정했다. 아티스트 단체에서 써준 편지도 함께 넣었다. 회사에서 써주기로 한 편지는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시간이 더 지체되 완전히 내 서류가 거절당하기 전에 준비된 서류 먼저 경시청에 보냈다.
프랑스 행정은 느리기로 유명하다. 아주 느리다. 기본 한 달에서 세 달이 걸린다. 보통 운전면허 교환을 위해서는 6개월에서 최대 1년이 걸릴 정도. 이 때문에 많은 외국인들이 프랑스에서 체류하는데 행정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빠질 때가 많다. 나 역시 서류를 제출하긴 했지만 언제까지 답변을 준다는 말이 없었기 때문에 또 하염없이 불안해하며 기다려야겠구나 생각했다.
내 소식을 들은 지인들이 나에게 많은 연락을 해주었다. 내 상황을 물어보고 또 여러 조언과 방법 등을 제시해 주었다. 매일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는 특별히 더 감사하다. 내가 작년 말 옴에 걸려 몸이 아팠을 때도 그렇고 이번 체류증 문제에서도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챙겨주었다.
사실 이번 체류증 신청은 나에게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 같은 것이었다. 2019년 프랑스에서 학업을 끝마치고 더 이상 이곳에 남아있을 방법이 없어 돌아가야 했을 때 결심한 게 있었다. "다시 이곳에 돌아올 것이다. 그때는 학생의 신분으로서가 아니라 나의 능력으로 이곳에 남아 보이겠다"라고 다짐했다. 2022년 2월 이곳에 돌아올 때 주변사람들에게는 1년만 이곳에 있고 돌아갈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내가 이곳에 스스로의 능력으로 남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다만 이번 체류증 문제를 겪으며 한 가지 느낀 게 있다. 나는 결코 나 스스로만의 능력으로 이곳에 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애초에 도움을 요청하고 받는 것을 매우 꺼려하는 성격이다. 사람 만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한다. 하지만 프랑스에 6년간 외국인으로 이곳에 살며, 웬만해서 혼자 해결하려고 해도 안 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도움을 요청하고 받을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에 처음 왔을 때는 언어가 늘기 위해서 또 이곳에 적응하기 위해서 억지로 사람을 만나야 했다. 신기하게도 사람 만나는 걸 그렇게 싫어하던 나인데, 프랑스에 산지 6년이 지난 지금, 나는 꽤나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관계를 소중히 유지해 나가는 것에 기쁨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만난 사람들이 이제는 내가 이곳에 남아있는 이유가 되었고 이곳에 나의 위치를 만들어 주었다.
사실 그냥 단순히 말해서 이번 체류증 문제 계기로 나는 사람들에게 감동받았다. 나를 위해 써준 편지들과 조언, 그리고 내가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감동받았다. 내가 프랑스에 사는 게 좋은 이유는 그런 정을 이곳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참 운이 좋은 사람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가족도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종종 했다. 너는 사람 안 좋아하는 것에 비해 이상하리 예전부터 인복이 좋다고.
이웃과 인사하고, 친구를 만들고, 연인을 만나고 또는 누군가를 우연히 잠깐 만나 관계를 맺고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고 나의 이야기를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사실은 그게 별거 없는 인생에 본질이 아닐까.
서류를 보낸 후 이주 정도가 흐른 어느 날, 경시청에서 전화가 왔다. 기술적인 문제로 다시 지문을 등록하러 경시청에 오라는 것이었다. 다음날 경시청에 가서 지문을 찍는 날 슬쩍 물어봤다. 지문을 다시 찍으라니, 혹시 내 서류가 어쩌면 통과됐다는 소리인가 하고. 경시청 직원은 그렇다고 했다. 1차적으로 확인이 났으니 한 두 달 정도면 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체류증을 받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서류를 보낸 후 한 달, 나는 프리랜서로써 프랑스 체류증을 받았다. 물론 1년짜리 체류증이지만 그래도 뜻깊다.
올해 이곳에 1년 더 남아 있게 될 것 같다. 이번 체류증 사건은 나에게 좋은 전환점이 돼주었다. 조금 지루하다고 느꼈던 최근 일상과 만남이, 매일 보는 얼굴들이, 반복되는 하루가 사실은 얼마나 나에게 과분하고 값진 것인지 다시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다시 주어진 이 일 년은 새해처럼 새로운 출발 같다.
나는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마음으로 현재 다양한 도전을 계획하고 있다. 올해 이루고 싶은 목표들이 있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 나를 긍정적으로 변화하게 만든 이곳에서의 삶에 대해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내가 이곳에서 받은 도움을, 감사를 더 많은 이들에게 베풀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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