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퀸 사이즈' 매트리스가 왔다

나는 원래 시리즈 3

by 거짓말의 거짓말

나는 원래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잠을 잔다. 군대 시절 해안 소초 근무를 할 때 2층 침대에서 생활한 약 1년과 캐나다 교환학생 때 약 10개월 정도 침대에서 잔 것을 빼놓고는 대부분 방바닥에 푹신한 이불을 깔고 그 위에서 잠을 잤다. 어릴 때부터 침대가 없었기 때문에 바닥이 더 익숙한 것도 있고, 침대에서 잠을 잔다고 해서 딱히 더 편하다거나 좋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침대가 바닥보다 좋은 것은 가끔 무릎이 아프지 않다거나 스프링의 반동이 필요할 때 정도인데...는 농담이다.


누가 내게 "침대에서 잘래 바닥에서 잘래?"라고 물어봐도 나는 정말이지 별다른 선호가 없다.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그 질문에 "너랑"과 같은 위험한 농담을 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정말로 아무데서나 자도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에 상대에게 선호하는 잠자리를 양보하고 남는 공간에서 자면 그만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대부분의 경우 호불호가 크지 않다. 설령 어느 정도 호불호가 있더라도 많은 경우 상대에게 맞춰주는 편이 더 편하다. 점심 메뉴를 정하거나, 술집에 가서 안주를 정할 때도 나는 내게 선택권을 주는 것보다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정해주는 편이 마음 편하다. 물론 침대에서 자는 것과 바닥에서 자는 것을 정하는 것은 이런 심리적인 안정보다는 육체의 편안함에 방점이 찍히겠지만, 나로서는 침대에서 자든 바닥에서 자든 다음날의 컨디션이라든가 피로도에 차이를 느끼는 것도 아니라서 정말로 어디서 자든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가 내게 "침대에서 잘래 바닥에서 잘래?"라고 물어보면 나는 "너는? 침대에서 자고 싶어 바닥에서 자고 싶어?"라고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종류의 되물음은 내가 배려심이 넘치거나 하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라기 보다는 기본적으로 남의 눈치를 살피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인류라는 종(호모사피엔스) 자체가 생존에 유리한 특정 행동 패턴과 성향을 체화해 진화한 것처럼 'H'라는 개체는 개체의 차원에서 '내가 하고 싶은데로 하기보다는 되도록 상대의 선호에 맞춰준다'는 일관된 흐름을 유지해 왔다. 상대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앞으로 내 수명을 얼마나 연장시켜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제는 이미 습관이 돼버렸기 때문에 딱히 의식하지 않아도 그렇게 돼버린다.


그러니까 나는 무릎이 조금 아프다거나, 허리가 조금 뻐근해도 상대의 반응을 주의 깊게 살피며 내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 과정에서 어떤 칭찬의 말을 듣게 되더라도 나는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고 더 열심히...


뇌를 거치지 않은 손가락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는데, 사실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지난주 월요일에 드디어 내 방에 매트리스가 도착했기 때문이다. 매트리스 주문일이 설 전인 1월 19일이었는데 도착한 날이 2월 3일이었다. 주문하고 거의 보름 만에 도착했다. 웬만해서는 불평불만을 하지 않는 나조차도 매트리스를 주문한 쇼핑몰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배송 독촉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10년 넘게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해 왔지만 배송 독촉 글을 남긴 것은 처음이었다.


배송일이 월요일이었는데 그 전주 토요일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매트리스 배송 업체 직원분이었다. 월요일 오후 4시쯤 배송 예정이니 그 시간에 집에 있어달라고 했다. 배송 당일 30분 먼저 집에 와서 다소곳하게 기다렸다. 시간이 되고 초인종이 울렸다. 집 초인종 소리를 처음 들어봤다. 생각과 달리 배송기사분은 1명이 아니라 2명이었다. '퀸사이즈'였기 때문에 대강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이 '퀸사이즈'라는 것이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컸다.


원래는 냉장고에 1+1으로 받은 유산균 음료수가 1개 남아있었기 때문에 배송 기사분에게 드릴 생각이었는데 배송기사님이 2명이나 오는 바람에 계획이 틀어졌다. 기사님이 매트리스를 설치하고 있는 동안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편의점에 가서 음료수 2개와 롤케이크 빵, 치즈 팡인가 하는 빵 2개를 사서 7600원을 결제했다. 매트리스 설치가 끝나서 착불 택배비 2만 원을 계좌 이체해 드리고, 편의점에서 사 온 음료수와 빵을 건네드렸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한 택배 기사가 쓴 글을 우연히 읽게 됐다.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고장 난 고층에 사는 사람이 2L 생수 24개를 시키면 한 번에 들고 올라가려고 엄청나게 고생을 한다는 거였다. 양손에 12개가 한계지만 다시 오르내리기에는 시간도, 힘도 더 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얼마 전 1층 편의점에서 2L 생수 6병을 사왔다. 앞으로도 생수를 온라인으로 주문해 먹을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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