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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짓말의 거짓말 Jun 01. 2023

나가사키 by 요시다 슈이치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요시다 슈이치의 책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책은 다른 작품과 비교해 별로였다. 수년 전 읽다가 중간쯤에 책을 덮었다. 이번 달에 후쿠오카로 휴가를 갈 예정인데, 후쿠오카 근교 여행지로 '나가사키'를 갈까 고민했던 차였다. 그러다 우연히 책 제목이 '나가사키'인걸 보고 다시 읽게 됐다. 몰락해 가는 야쿠자 집안의 유약한 소년의 성장기를 다룬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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슌은 초등학교에서 리카라는 여자애와 짝꿍이었다. 리카는 슌이 쉬는 시간에 하모니카를 불면 자기도 옆에서 따라 불고, 운동장으로 줄넘기를 하러 나가면 허둥지둥 그 뒤를 따라왔다. 어느 날 슌이 리카에게 "야, 너 내 여자 될래?"라고 물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둘이 줄넘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리카는 처음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었지만, 조금 후에야 알아들었는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슌은 줄넘기를 멈추고 "좋아, 이걸로 때려도 안 울면 내 여자가 되게 해주지"라고 말하고 나서, 채찍처럼 두 겹으로 모아 쥔 줄로 리카의 장딴지를 후려쳤다. 말할 것도 없이 리카는 고양이 같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허수아비처럼 한 쪽 발로 서서 깡충거리면서도 아픔을 꾹 눌러 참았다. 

수업 시작종이 울려 교실로 들어가는 복도에서 "이제 리카는 슌 여자 된 거 맞지? 안 울었잖아?"라고 물었다. 앞에서 걸어가던 슌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직 그 정도로는 부족해"라고 차갑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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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인간으로 태어나 무엇이 되든지 발가 벗겨놓으면 남는 건 업보와 정 뿐입니다. 다 거기서 거기란 말이죠. 안 그렇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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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어디가 닮은 건 아니지만 옷감에도 면이나 마, 실크가 있듯이 인간의 기질에도 종류가 있다면 틀림없이 두 사람은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사내들일 거라고 유령에게 말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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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는 그해 봄부터 학교에 가지 않고 빈둥거리며 지내는 듯했다. 리카는 자기 엄마를 '그 할망구'라고 불렀다. 예전에 다쓰히코의 외동딸 기요미가 그랬듯이 리카 또한 자기 엄마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바보 취급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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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돌아보는 점장에게 "예, 아까 하시려던 얘기"라고 슌이 중얼거렸다. 

"아, 젊었을 때는 무슨 일이든 스스로 결정하지 않으면 왠지 인생에서 진 것 같은 패배감이 드는데, 실제로는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더라는 말이지. 이봐, 내 말 같은 건 신경 쓸 필요 없어. 미무라 군이라면 뭐든 잘 해낼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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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손으로 가까스로 양쪽 신발 끈을 다 묶고 일어서는 슌의 팔을 부여잡았다. 

"안 될까? 도저히 용서하지 못하겠어? 치즈루도 이제 나이를 웬만큼 먹었어. 사내가 죽었으니 제 마음인들 오죽 아플까. 일가친척 하나 없는 외지에서 사내 없이 여편네 혼자 어찌 살 수 있겠니? 슌, 그래도 너를 낳아준 어미인데 한번만 눈 딱 감고 거둬주려무나." 

슌은 움푹 파인 눈으로 올려다보는 할머니의 눈을 외면했다. 눈을 아래로 내리깔자 단단하게 묶인 운동화 끈이 기묘한 형태로 일그러져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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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별채에 틀어박혀 일도 안 하고 사는 슌이 어처구니가 없긴 했지만 미워할 마음은 없었다. 그러나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으면, 쓸모없는 인간답게 조용히 지내면 좋으련만 무슨 미련이 남아 술집을 기웃거리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슌이 이따금 술집 왕래를 한다는 말에 유타는 또 다시 울화가 치밀었고, 한바탕 퍼부어대고 싶은 심정이었다. 

언제였을까, 늘 하던 말다툼 끝에 "아무것도 안 하고 사는 것도 꽤 어려운 일이야"라며 히죽거리는 슌의 얼굴에 유타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날렸다. 

세게 때리려 했던 건 아닌데 슌의 입에서 우두둑거리는 소리가 났고, 둘 다 얼굴이 창백해져 어색한 침묵만 흘렀던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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