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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짓말의 거짓말 Nov 04. 2023

우리 인생에 바람을 초대하려면 by 파스칼 브뤼크네르

*인플루엔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15p

어린 시절의 오블로모프는 천사처럼 귀여운 아이였고, 부모는 그를 온실 속의 화초처럼 애지중지 키웠다. 게다가 그의 생은 벌써 소멸하기 시작했다. '나는 자신을 처음으로 의식한 순간부터 내가 죽어감을 느꼈다.' 


*오블로모프: 이반 곤차로프의 소설 '오블로모프'의 주인공으로 무기력증에 시달리는 인물. 


24p

위대한 책이 읽히고 또 읽히는 이유는 출간 시점보다 한참 뒤의 사건들마저 예고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27p

금지는 그들을 속박했지만 금지의 종식은 그들을 난처하게 했다. 봉쇄령이 떨어졌을 때는 진심으로 저주했던 그 악몽 같은 감금 생활을 이제 그들은 아쉬워하지 않을까? (중략)

강제 봉쇄보다 더욱 우려해야 하는 건 위험한 세상에 맞선 자발적 자기 봉쇄이다. 스스로 선택한 독방에는 벽도, 족쇄도, 경비원도 없다. 간수는 우리 머릿속에 있다. 


34p

실내 시대의 역설적 낭만은 한층 짙어졌고, 모태 같고 요람 같은 집의 위엄은 더욱 높아졌다. 바이러스는 그저 코로나19 바이러스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전부터 존재했던 "바깥세상 알레르기"를 포함한다. 


51p

인류학적으로 새로운 인간상이 나타났다. 웅크리고 있지만 고도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외부 세계도 타인들도 필요로 하지 않는 인간상이다. 현대 기술은 개방을 표방하면서도 실상은 감금 상태를 장려한다. 이제는 아르튀르 랭보의 유명한 시구 "진정한 삶은 부재한다"를 "진정한 삶은 삶의 부재다"라고 해석해야 할지도 모른다. 


59p

스마트폰은 집으로 세상을 가져다준다. 스마트폰 한 대면 메시지, 뉴스, 음악, 영화를 얼마든지 접할 수 있다. 이것이 대단한 진보임은 박박할 수 없다. 그렇지만 스마트폰은 세상을 내 손바닥에 올려놓음으로써 피상적으로 만든다. 세상이 내게 오기 때문에 나는 세상으로 나아갈 필요가 없다. 


62p

사람들이 화면에 중독되는 이유는 화면상의 사건은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 대리 수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적어도 스마트폰에서는 현실의 시뮬라크르를 꾸며낼 수 있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스마트폰은 위험하지 않은 전율을 제공함으로써 공허를 견뎌내게 한다. 그러나 그 풍부함은 가짜라는 데 비극이 있다. 


65p

그 사람이 왜 나에게 전화를 하지 않을까? 당신은 배터리가 방전됐거나, 전화가 안 터지는 곳에 있거나, 스마트폰을 도난당했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현실은 잔인하다. 그 사람은 그저 당신과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97p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설명하면서 서양 철학에 영원히 남게 될 정신의 무대 장치를 상정했다. 사람들이 동굴 속에 사슬로 묶인 채 시선은 동굴 벽 쪽으로 고정되어 있고, 마음대로 고개를 돌릴 수 없다. 그들의 등 뒤로 동굴 입구 쪽에는 횃불이 타오르고 있다. 횃불과 죄수들 사이에는 길 하나와 낮은 담이 있다. 그 길을 따라 사람들이 머리 위에 이런저런 물건을 지고 나른다. 불빛이 그 물건들의 그림자를 죄수들의 시선이 향해 있는 벽에 드리운다. 죄수들은 평생 실제 물건을 본 적이 없고 오로지 그림자만 보고 살았기 때문에 그림자들이 현실 이라고 생각한다. 그중 한 죄수에게 억지로 횃불을 쳐다보게 한다면 그는 너무도 환한 불빛에 "눈이 멀 것 같아서" 자기가 더 편안하게 느끼는 그림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가장 용감하고 대담한 자들만이 동굴의 환상에서 눈을 돌려 별이 빛나는 밤하늘, 태양, 천체 들을 감히 쳐다본다. 


113p

일반적으로 방에는 두 가지 운명이 있다. 자율적 삶의 서막이 되든가 숨 막히는 방구석으로 전락하든가 둘 중 하나다. 


146p

예를 들어 메타버스에서 나의 분신 중 하나가 저지른 범죄는 누구의 잘못인가? 나 자신? 아니면 나의 다양한 인격? 이미 가상현실에서의 성폭력 피해에 대한 고소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153p

증강현실 장비를 이용할 때는 줄거리 안으로 들어가게 되지만 영화나 연극을 볼 때는 신체적으로 줄거리 밖에 위치한다. 웹이 유일한 "밖"이고 물리적 세계는 이제 잉여물 혹은 출발점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 세계에 있지만 정말로 그 세계를 살지는 않는다. 우리는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 데도 없다. (중략)

천국의 면적은 딱 내 방만큼이다. 


156p

노출증이 심한 사람들이라면 애정 행각까지도 일상을 서슴없이 "라이브" 중계하기 바쁘다. 

이런 유의 행동에는 과시욕도 있지만 자기 삶을 영상화하면 장편 영화 같은 일관성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바람도 깔려 있다. 그로써 자신이 가슴 뛰는 모험 속에서 살고 있다는 환상을 유지할 수 있다.  


168p

슬리퍼 차림의 영웅, 모험가, 특파원을 상상할 수 있는가? (중략)

그래서 헤겔이 남긴 유명한 말을 항상 되뇌게 된다. "자기 시종에게까지 영웅인 사람은 없다. 영웅이 진짜가 아니어서가 아니라 시종은 시종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크록스, 가락신, 슬리퍼 차림으로 쇼핑을 하러 가는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말한다. 잠깐 나온 거예요, 금방 집으로 들어갈 겁니다. 


194p

서로 건드리지 않는 삶, 끌어안지 않는 삶이 무슨 가치가 있나? 도시의 예술은 무엇보다 자신을 구경거리로 내놓고 타인들이 제공하는 구경거리를 감상하는 것이다. 시선을 받고 평가당하는 것이야말로 공적인 삶의 본질적 부분이다. 카페테라스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만큼 즐거운 소일거리도 없다. 


197p

섹스의 포기라는 새로운 현상은 타인에 대한 알레르기의 징후다. 진짜 비극은 어느 날 사랑하고 욕망하기를 멈추는 것, 그리하여 우리를 다시 삶에 붙잡아놓는 마법의 이중적 원천이 고갈되는 것이다. 리비도의 반대는 금욕이 아니라 삶의 피로다.


231p

불행은 무한히 많지만 행복은 적어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창을 활짝 열어젖히고 싶은 확장의 행복, 반대로 창을 걸어 잠그고 평온을 누리는 수축의 행복이다. 


246p

고독은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려는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하지만, 거기에 무기력이라는 함정이 따라오기 쉽다는 점도 다양한 문학 작품을 인용하면서 지적한다. 저자가 가장 우려하는 점은 칩거에 익숙해진 인간이 정신적·신체적 무기력을 학습하는 것, 그리하여 '마음은 원이로되' 행동하지 못하는 오블로모프와 같은 인간이 급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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