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1p~200p
15p
우리는 기아, 역병, 전쟁을 막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고, 대개는 잘 막아낸다. (중략)
21세기 초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은 가뭄, 에볼라, 알카에다의 공격으로 죽기보다 맥도날드에서 폭식해서 죽을 확률이 훨씬 높다.
20p
2014년에 21억 명 이상이 과체중이었던 반면, 영양실조를 겪는 사람은 8억 5000만 명이었다. 2030년에는 인류의 절반이 과체중일 것으로 예상된다. 2010년에 기아와 영양실조로 죽은 사람이 총 100만 명 정도였던 반면, 비만으로 죽은 사람은 300만 명이었다.
30p
새로운 에볼라나 미지의 변종 독감이 전 세계를 휩쓸어 수백만명이 죽는 일이 다시 없을 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런일을 불가피한 자연재해로 간주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오히려 용납할 수 없는 인간의 실패로 간주하고 책임자들을 문책할 것이다. (중략)
인류가 전염병을 예방할 수 있는 지식과 도구를 가지고 있고, 그럼에도 어떤 전염병이 통제불능으로 퍼져나간다면 그것은 신의 분노가 아니라 인간의 무능 탓이라는 것이다.
31p
2012년 전 세계 사망자 수는 약5600만 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62만 명이 폭력으로 죽었다(전쟁에서 죽은 사람이 12만 명, 범죄로 죽은 사람이 50만 명이었다). 반면 80만 명이 자살했고, 150만 명이 당뇨병으로 죽었다. 현재 설탕은 화약보다 위험하다.
50p
죽음을 앞지르는 것보다 더 흥분되는 과학적 도전을 상상할 수 있을까? 영원한 젊음보다 더 유망한 시장을 상상할 수 있을까? (중략)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훌륭한 작품으로 승화시킨 우디 엘런 감독은 은막에서 영원히 살기를 바라느냐는 질문에 "나는 내 아파트에서 사는 게 더 좋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작품을 통해 불멸을 얻고 싶지 않다. 죽지 않음으로써 불멸을 얻고 싶다."
56p
1985년에 10만명당 아홉 명 정도의 한국인이 자살한 반면, 현재 한국의 연간 자살률은 10만 명당 서른여섯 명이다. (중략)
석기시대 사람은 하루 평균 약 4000칼로리를 사용해싸. 오늘날 미국인은 하루 평균 22만8000칼로리를 사용한다. 이렇듯 미국인은 석기시대 수렵채집인보다 평균 60배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그렇다고 미국인이 60배 더 행복할까?
59p
우리는 외부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에 반응할 뿐이다. 사람들은 실직해서, 이혼해서, 전쟁이 일어나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사람들을 비참하게 만드는 유일한 것은 몸에서 일어나는 불쾌한 감각이다.
거꾸로, 과학에 따르면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은 승진하고, 복권에 당첨되고, 진정한 사랑을 찾아서가 아니다. 오직 하나, 몸에서 일어나는 유쾌한 감각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61p
우리는 배가 고픈 불쾌한 느낌을 피하고 기분 좋아지는 맛과 황홀한 오르가슴을 즐기기 위해 음식과 연인을 필사적으로 찾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맛과 황홀한 오르가슴은 얼마 못 가고, 그런 감각을 다시 느끼고 싶다면 더 많은 음식고 연인을 찾아나서야 한다. (중략)
어떤 희귀한 돌연변이에 의해, 땅콩 한 알을 먹으면 행복한 감각이 영원히 지속되는 다람쥐가 탄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지만 그랬더라도 그 다람쥐는 지극히 행복할 뿐 아니라 지극히 짧은 생을 살았을 것이고, 그 희귀한 돌연변이는 그냥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66p
국가는 생화학적 행복 추구를 규제하고자 '나쁜' 조작과 '좋은' 조작을 분리한다. 원칙은 명확하다. 정치안정, 사회질서, 경제성장을 강화하는 생화학적 조작은 허가하는 것을 넘어 장려한다(예를 들어 학교에서 과잉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차분하게 하거나 불안해하는 병사들을 진정시켜 전투에 내보내는 것). 안정과 성장을 위협하는 조작은 금지한다.
73p
우리의 도구와 제도는 성경시대와 전혀 다르지만, 마음의 심층구조는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 공장의 책,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중략)
하지만 우리가 신기술로 인간의 마음을 재설계할 수 있을 때 호모사피엔스는 사라질 것이다.
'우리와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생명공학으로 뭇엇을 할까?'라는 질문에는 여러 가지 현명한 대답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와 전혀 다른 종류의 마음을 지닌 존재가 생명공학으로 무엇을 할까?'라는 질문에는 쓸 만한 대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76p
오늘날 과학자들은 구약의 신보다 훨씬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인공비료, 산업용 살충제, 유전자 조작 작물 덕분에 오늘날 농업 생산량은 고대 농부들이 신에게 바랐던 가장 높은 기대치를 능가한다. (중략)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도구만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능력에서도 고대의 신들을 능가하는 초인간을 창조할 것이다.
82p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나톨 프랑스와 아름답고 재능 있는 무용수 이사도라 던컨의 1923년 만남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다. 아마 실화는 아닐 것이다. 던컨은 당시 인기 있던 우생학 운동을 거론하며 "내 외모와 당신의 머리를 물려받은 아이가 태어난다고 생각해봐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프랑스는 이렇게 대꾸했다. "좋지요. 하지만 내 외모와 당신의 머리를 물려받은 아이가 태어나면 어떻게 될까요."
89p
결과적으로 마르크스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공산주의 혁명은 영국, 프랑스, 미국 같은 산업강국을 집어삼키지 못했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역사의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이것이 역사 지식의 역설이다. 행동을 바꾸지 못하는 지식은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행동을 바꾼 지식도 곧 용도 폐기된다. 우리가 데이터를 더 많이 보유할수록, 역사를 더 잘 이해할수록 역사는 그 경로를 빠르게 변경하고, 우리의 지식은 더 빨리 낡은 것이 된다.
95p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얼음부터 사막까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땅에서 경기를 했다. 하지만 지난 200년 동안, 축구와 테니스 같은 진짜 중요한 경기들은 잔디밭에서 열렸다. 물론 돈이 있다는 전제에서 그렇다.
123p
지난 몇십 년 동안 생물학자들은 버튼을 누르고 차를 마시는 사람 역시 알고리즘이라는 확고한 결론에 이르렀다. 사람은 자판기보다 훨씬 더 복잡한 알고리즘이지만, 그렇다 해도 알고리즘인 것은 확실하다. 인간은 차를 우릴 뿐 아니라 자신을 복제하는 알고리즘이다.
126p
자연선택은 번식확률을 평가하는 급속 알고리즘으로 격정과 혐오를 진화시켰다. 아름답다는 것은 곧 '성공하는 자식을 낳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어떤 여성이 한 남성을 보고 '와! 정말 장생겼다!'라고 생각할 때, 그리고 암컷 공작이 수컷 공작을 보고 '어머! 꼬리가 너무 멋져!'라고 생각할 때, 그 여성과 암컷 공작은 자판기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중략)
심지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조차 자신이 하는 결정 가운데 극히 일부만을 펜, 종이, 계산기를 이용해 결정한다. 배우자, 직업, 거주지 같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들을 포함해 우리가 내리는 결정의 99퍼센트는 감각, 감정, 욕망이라고 불리는 매우 정교한 알고리즘을 통해 이루어진다.
149p
상대성이론은 아무도 화나게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의 소중한 믿음 가운데 어떤 것과도 모순되지 않기 때문이다. (중략)
반면 다윈은 우리에게서 영혼을 박탈했다. 당신이 진화론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것이 영혼은 없다는 이야기임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 모든 것 밑에있는 '나'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그리고 바라건대 죽은 뒤에도) 똑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진화론은 내 진정한 자아가 분리되지 않고 변하지 않고 영원히 지속되는 본질이라는 개념을 거부한다.
159p
하지만 왜 인간은 배고픔과 두려움 같은 주관적 경험을 할까?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생물학자들이 아주 간단한 답을 내놓았다. 생존하기 위해 주관적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배고픔이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토끼를 잡기 위해 노력하지도, 사자를 보고 도망치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171p
철학자들은 이미 수천 년 전에, 자기 자신 외의 다른 존재가 마음을 지니고 있음을 확실하게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다른 사람들이 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도 그저 추정만 할 뿐 확실하게 알 수 없다. 혹시 내가 우주 전체에서 뭔가를 느끼는 유일한 존재이고, 다른 모든 인간과 동물든은 마음이 없는 로봇이 아닐까? 혹시 내가 꿈을 꾸고 있고,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내 꿈속의 등장인물이 아닐까? 혹시 내가 가상세계에 갇혀 있고, 내가 보는 존재들은 시뮬레이션이 아닐까? (중략)
오늘날 과학적 정설에 따르면, 내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내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활동의 결과이고, 따라서 '실제' 세계와 구별이 불가능한 완전한 가상세계를 위조하는 것이 이론상으로 가능하다. 이 시나리오가 실현 가능하다고까지만 인정해도 수학적으로 매우 섬뜩한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즉 실제세계는 하나뿐인 반면 가상세계의 수는 무한하므로, 당신이 하나밖에 없는 실제세계에 있을 확률은 0에 가깝다.